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포스터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포스터 ⓒ (주)도키엔터테이먼트


미사키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아버지를 30년간 만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8년 전에 어선 사고로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던 해안 옆 배 창고를 '요다카 커피'라는 이름의 카페로 리모델링 한 후 아버지를 기다리며 살기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미사키는 싱글맘 에리코와 그녀의 딸과 아들인 아리사와 쇼타를 만나게 됩니다.

치앙시우청 감독의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의 초반부 장면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어머니가 자주 집을 비우면서 거의 방치에 가까운 상태에 놓인 어린아이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급식비 문제로 인해 장녀 아리사가 학교에서 겪는 일련의 일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할 정도입니다. 또한, 곤궁한 상황에서 내렸던 도덕적이지 못한 선택이 주홍글씨처럼 따라붙는 것도 사실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한 줄기 희망을 찾습니다. 미사키는 이웃의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리코가 부재한 동안 미사키는 두 아이를 살뜰하게 보살핍니다. 이때, 커피가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원두를 분류하는 방법부터 시작해 커피에 물을 내리는 방법까지, 미사키는 아리사에게 커피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장인정신은 물론 정직한 노동의 가치와 따뜻한 위로까지 함께 얻게 됩니다. 낯선 이웃을 경계하던 에리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사키는 에리코와 자녀들이 안정된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미사키 역시 에리코의 가족과 만나게 되며 삶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미사키는 부모님의 이혼 때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부채의식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깊습니다. 이로 인해 살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낮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걸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리코와 두 아이들은 적막한 기다림 속에 사는 미사키에게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가족이 되어 줍니다. 영화는 서로 다른 슬픔과 고독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만나 영향을 주고받으며 점차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이때 영화의 사려 깊은 연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나가사쿠 히로미는 자기 삶의 무게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도 주위를 돌볼 줄 아는 미사키 그 자체로 보입니다. 한 인터뷰에 의하면 치앙시우청 감독은 나가사쿠 히로미를 캐스팅하기 위해 배우가 임신과 출산을 마치고 영화 촬영에 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합니다. 배우의 연기는 감독의 기다림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사사키 노조미는 영화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인물 중 한 명인 에리코를 충실하게 연기해 냅니다. 각기 아리사와 쇼타로 분한 사쿠라다 히요리와 호타모리 카이세이의 연기는 영화의 현실적인 면모를 살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 또한 매우 훌륭합니다.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은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손길로 만든 커피처럼 좋은 향기와 여운을 가진 작품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무렵이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하상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aprilmono.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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