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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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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거리의 변호사'라고 불리는 그가 정치참여를 선언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지난 2014년 11월 13일 쌍용차 노동자들의 해고무효 소송에 대법원 결정이 있던 날, 권 변호사는 기자 몇몇과 자신의 서초동 사무실에서 술을 마셨다. 이날 대법원은 고등법원의 '해고무효'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권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로써 나는 사법정의에 희망을 버린다"라고 썼다. 그리고 많이 취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취중진담'을 쏟아냈다. "이제는 정치로 싸우겠다"라고 수차례 말했다. 같은 말을 또하는 술버릇이 아니었다. 그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노동위원장으로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몸을 부딪쳐왔다.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경찰에 연행된 것만도 수차례다. 힘없는 노동자들이 기댈 수 있는 큰 나무였다. 그런 그의 좌절에 기자들은 안타까워했고, '정치 참여'에도 걱정이 앞섰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권 변호사는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사이 검찰은 그를 구속하려 애를 썼다.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집회에서 항의하던 그를 경찰이 연행했다. 이후 세월호 참사 집회 건으로 추가 기소가 됐다. 또 정부의 노동개혁(권 변호사는 노동개악이라고 부른다)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인도 위에서 '표적 연행'이 되기도 했다. 두 번의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저렇게 자기를 던져야 할 곳이 많은 사람이 과연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지난해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구성된 '국민모임' 창당 설명회에서 그와 마주쳤다. '진보적 대중정당(또는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국민모임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하려나보다 생각했다. 국민모임은 정의당-노동당 등과 통합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결국 권 변호사의 정치노선은 '진보정당'으로 수렴되는 듯했다.

시민혁명당,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대안정당

그러나 총선을 앞둔 최근 들려온 소식은 뜻밖이었다. 정치권에서 새 인물을 영입할 때는 그 사람의 명성과 전문성, 도덕성 등이 기준이 된다. 권 변호사는 딱히 부족함이 없다. 기성 정당들이, 특히 진보 정당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 어딜 가더라도 비례대표 후보가 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어디를 선택했을지 궁금해질 때 즈음, 그가 들고 온 건 '시민혁명당'이라는 낯선 이름이었다.

"기존 정당체제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새로운 판을 짜는 고민을 했다. 진보정당들이 정의당과 통합되기는 했지만 기존의 제한적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민들이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되는 정치질서가 고착돼 있다. 시민들이 직접 정치의 주인이 되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야권의 분열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민이 대상인 정치에서 주인인 정치로 바뀌지 않으면 이 판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지난 19일 서울 을지로에 차려진 '시민혁명당 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권 변호사가 꺼내놓은 이야기다. 뭔가 기시감이 들었다. 요즘 어딘가에서 정말 많이 듣는 말이다. 안철수 의원이다. 그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추진하면서 내세운 명분도 '양당체제와 기존 정치질서 극복'이다. 사실 안 의원만이 아니다. 총선을 앞두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신당들 대부분이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안철수 의원도 기존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질서를 닮아가고 있다. 탈당한 국회의원을 끌어들이고, 명망 있는 누구를 영입하고, 기성 정치인을 중심으로 이합집산 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 정치인들만의 무대다. 거기서 여전히 시민은 관객일 뿐이다. 그런 점은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들을 정치의 주인으로 세우려 한다. 그게 시민혁명당의 지향이다."

그렇다면 권 변호사가 말하는 '시민이 주인' 되는 정치는 무엇일까? 그는 이탈리아의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 스웨덴의 해적당(Piratpartiet) 등을 예로 들었다. 모두 유럽에서 주목 받는 '대안정당'들이다.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광범위한 의사 수렴 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 단순 유권자운동에 머물지 않고 성공적인 의회진출을 이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누군가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동안의 정치였다. 내가 이런 걸 할 테니 찍어달라고 했다. 그럼 시민들이 대상화 된다. 방식이 달라야 한다. 시민들이 직접 자기 의사를 밝히고 결정에 참여하고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 직접민주주의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의 문제다. 시민 대부분은 독점자본주의의 피해자들이다. 이념을 떠나 손을 잡아야 한다. 유럽에서 불고 있는 새로운 정당들의 바람을 봐야 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흐름이 있다. '파견업종 확대', '기간제 4년 연장'이라는 내용이 담긴 기사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는 걸 봤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일반 시민들이 희망버스로 연대하는 걸 봤다. 대부분이 '조직 되지 않은 시민'들이다. 우리 사회에 조직된 시민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기존 정당은 조직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전체 시민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다. 시민혁명당은 그 틀을 바꾸고자 한다."

그의 말은 일면 새로지만, 몹시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정치다. 그래서 의문이 든다. 시민이 주인 되면 '좋은 정치'가 보장되는 것일까? 정당이 뚜렷한 목적이 없이 단지 시민들의 참여만 확대한다고 해서 의회 진출이, 나아가 정당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집권'이 가능할까? 권 변호사가 예로 든 유럽의 정당들도 바람을 일으키며 다수의 의석을 확보했지만 아직 '집권'에 성공하진 못했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누군가가 정의에 입각해 뭔가 변화를 추구했다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와 시민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지금은 정치와 시민이 섞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 그것으로 인해 시민이 핵심 권력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지난 2014년 4.16참사 이후 시민 600만 명이 세월호 특별법에 서명했다. 그게 어떻게 됐나?"

여야가 각자의 법안을 놓고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벌였다. 법안은 또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전국을 돌며 시민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한 청원 법안이다. 권 변호사는 "600만 명이나 참여한 법안이 국회에서 검토조차 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적어도 일정 정도의 시민이 요구하면 반영되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국회 심의를 의무화하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나도 후보로 출마, 야권연대 한다"

시민혁명당 온라인 정치 플랫폼 오픈 

권영국 변호사가 추진하는 시민혁명당은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시민혁명당은 22일 온라인 정치 플랫폼인 '움직여'(http://movenow.kr/)를 정식으로 오픈한다. 이들은 '움직여'를 통해 정당의 이름부터 로고, 당헌과 당규 그리고 총선에 내세울 정책과 후보까지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투표하는 등 온라인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 2015년 9월 23일 경찰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강제해산에 항의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 강제연행되는 권영국 변호사 지난 2015년 9월 23일 경찰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강제해산에 항의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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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변호사의 구상을 실현하는 데에 더 큰 문제는 '방법'에 있다. 바로 '소선구제'라는 벽이다. 유럽국가들은 비례대표제의 비중이 높고, 결선투표도 보장된 곳이 많다. 우리는 승자독식의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정당들은 유명인사를 영입하고 특정 지역에 전략공천하는 등의 전술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의 견고한 양당체제가 탄생했고,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안철수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시민혁명당도 후보를 낸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에는 후보를 준비하고 있다. 나도 수도권에 출마할 생각이다. 다른 당에도 우리의 생각에 공감하는 후보가 있을 수 있다. 지금은 영향력이 미비하지만 앞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 야권연대를 위한 자리도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단기간에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정치의 미래상을 세우는 작업이다. 최소 대선까지는 매우 끈기있게 가야 한다."

기자가 권 변호사의 과거 발언 몇가지를 꺼냈다. 그는 언젠가 현대자동차 사옥 앞에서 사내하청 문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면서 "내가 반드시 노동부 장관이 돼서 너희의 불법행위를 심판하겠다"라고 말했었다. 또 언젠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골적으로 집회를 방해하는 경찰을 향해 "내가 반드시 법무부 장관이 돼서..."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무엇이 되고 싶을까?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 걸까?

"정의로운 정치인이 되고 싶다.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조직한다고 해서 사회 문제에 타협적으로 다가간 것은 아니다. 노동의 문제, 국정교과서 문제, 세월호 참사 등 문제의식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에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정의로부터 멀어져 있다. 적어도 권력으로 인권을 유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고를 탕진하는 권력자는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권 변호사가 동의할지 모르지만 인터뷰를 하는 동안 떠오른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거리의 변호사'에서 정치인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의 최대 화두는 '정치개혁'이었다. 또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말했다. 주류 정치에 있으면서도 항상 어려운 선택을 했다. 권 변호사는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가 최대 화두다. '조직되지 않은 시민의 참여'를 말한다. 새로운 정치 실험이라는 점에서 그의 선택도 어렵다.

'시민혁명당'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유의미한 정치세력이 될 수도, 한 번의 참신한 시도에 그칠 수도 있다. 권 변호사는 "권영국이라는 사람을 보지 말고,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지향점이 같다면 지지해 달라"라고 당부한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시민혁명당의 활동 만큼이나 정치인 권영국의 행보도 주목한다. 노무현을 닮은 듯 다른 그의 길이 궁금하다.


태그:#권영국, #시민혁명당, #문재인, #안철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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