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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2월, EBS <다큐프라임> 6부작 교육대기획 '시험' (아래 '시험')의 '서울대 A+의 비결'(4부)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성적이 4.0이 이상인 우등생들의 성적 비결을 조사해봤는데, 그 비결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강의 전체를 받아 적고 외우는" 전근대적인 방식이라는 내용이었다. 방송은 이를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 무비판적·수용적 학습태도로 규정했다.

4부를 접한 시청자들은 한국 교육의 폐단이 잘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PD저널>에서도 '시험' 6부작의 장후영, 이미솔 PD를 인터뷰하며 "시험이 갖는 측정오차의 문제를 통해 이를 맹신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작품"이라 호평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이 가진 근본적 문제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라는 기대를 품고 EBS '시험' 6부작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시험' 6부작을 모두 보고 난 뒤의 느낌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후 예고편에 '낚인 것' 같은 아쉬움이었다.

한국 시험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적절했으나

'시험' 1부와 2부는 한국 사회의 '표준화 시험'이 지닌 문제점들을 제시했다. 1부 '시험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는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중국과 인도의 대학입학시험을 비교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시험은 논문 형식으로 써야 하는 논술과 구술이 병행되며, "정치는 모두의 일인가?"와 같이 인류 사회의 본질에 관해 물음을 던진다. 이를 통해 학생이 '의심하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아시아 국가에서는 대학입학시험이 '계급 사다리'로 기능하고 있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핵심으로서 시험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제 의식은 2부로 이어진다. 한국의 시험으로 초점을 돌린 2부 '시험은 기술이다'는 "시적 감수성이 없어도 수능에는 다 맞추게 할 수 있다"는 수능 강사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한국식 '표준화 시험'이 각종 '기술'에 의해 잠식된, 불안정한 평가 도구에 불과함을 드러낸다.

미국 교육부 차관보였던 다이엘 라비치는 일명 '줄 세우기 식 시험'인 표준화 시험이 학생 간 성적 격차를 줄일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성적 분포를 파악해보니 가족의 소득 수준이 높은 학생의 점수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훨씬 높았다고 밝혔다. '표준화 시험'이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결국 학생들을 줄 세운 것이다. 1부와 2부는 이렇게 학문이 아닌 기술과 부모의 경제력으로 결과가 좌우되는 '표준화 시험'의 불평등을 지적한다. 우리가 아는 시험이 그리 공정하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방송은 거기서 멈춘다. '기술과 돈'이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이미 상식에 가깝다. EBS '시험'은 이를 입증할 뿐이었다. 오히려 "시험은 차별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을 상기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나마 1부와 2부는 '표준화 시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잘 나열했다고 볼 수 있다. 2편을 보고 천편일률적이고 불평등한 한국의 시험으로부터 전체 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길 기대한 시청자는 3부부터 6부까지의 '수박 겉핥기'식 전개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한국 교육의 구조적 문제 외면한 '수박 겉핥기'식 전개 아쉬워

EBS '시험' 3부 '나는 대한민국 고3입니다' 방송 화면 갈무리
 EBS '시험' 3부 '나는 대한민국 고3입니다' 방송 화면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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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나는 대한민국 고3입니다'는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고3 학생의 일상을 생생히 보여준다. 고3 학생 일부는 "자살을 생각했다"는 충격적인 고백까지 하지만 '시험'은 이를 스케치하는 데서 멈춘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일상을 전달한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5부 '누가 1등인가'는 '표준화 시험'에 능한 이른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진정한 문제해결 능력에서도 뛰어난 것은 아님을 실험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방송은 OECD가 개발한 역량 평가 모델인 '데세코 프로젝트'로 학생 9명에게 도구 활용능력, 이질적 집단과의 상호작용, 자율적 행동 등 역량을 평가하는 실험이 진행했다.

하지만 9명의 학생은 실험 대상으로 적절치 않았다. 9명 중에는 수능 만점자 2명, 수능 전 과목 9등급을 맞은 학생 1명이 있었고, 나머지 6명은 모두 IT·연극·문학·영화 등 각 분야의 특출한 학생들이었다. 실험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학생은 '전 과목 9등급'인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기존의 교육제도에 동의하지 않는 교육철학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수능을 보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는 탈북자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10대에 홀로 인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경험으로 수준급 인도어 실력을 지니고 있다. '공부를 못하는 평범한 학생'은 절대 아닌 것이다.

이 실험이 의미가 있으려면 실험군이 공부 잘하는 학생, 못하는 학생, 평범한 학생까지 고르게 구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각 분야에서 특출한 학생들을 골라 실험한 결과를 보고, 과연 대다수의 평범한 학생과 부모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일상을 관찰한 6부 '공무원 탄생, 300일의 기록'은 아예 주제와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오히려 인사혁신처에서 만든 본격 '공무원 홍보방송'에 가까웠다. 과도하게 많은 수의 청년이 공무원 시험에 목매는 현상의 배경과 '표준화 시험' 방식을 벗어나지 못 하는 시험 형식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글씨가 깔끔하고 또박또박하면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부분 등 공무원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후반부에는 공직자로서의 사명과 도덕성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면접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필운 안양시장의 주장을 덧붙였다.

작년 5급 공채 최종면접에서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할 수 있게 된 요인은?', '자유민주주의를 준수하는 행동과 저해할 할 수 있는 행동'과 같이 사상검증 수준의 질문이 출제돼 논란이 일었다. 방송은 이처럼 '사상검증'이 각종 취업 시험에서 만연한 현실에서면접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시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은 지적하지 않았다.

'표준화 시험'에 질문 던져 놓고 답은 시청자에 맡긴 격

EBS <다큐프라임> 교육대기획 '시험'은 학생들에게 정답만을 요구하며 줄을 세우는 '표준화 시험'의 문제를 도전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6부까지 이어진 기획은 구체적인 비판점과 해답은 내놓지 못했다.

제작진은 "시험이 우리가 가치를 부여한 것처럼 권위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여러 사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사회적 구조가 그렇게 기형적인 시험을 만들었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미 곪아터진 우리 교육제도를 치유할 해답은 시청자 스스로 발견할 수 없는 난제이다. EBS '시험'을 보며 명쾌한 진단과 해답을 기대한 시청자들은 참담한 현실을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태그:#민주언론시민연합, #EBS,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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