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생 정봉은 <갤러그>와 함께 고교 시절을 보내고 <보글보글>로 7수의 설움을 달랜다.

1965년생 정봉은 <갤러그>와 함께 고교 시절을 보내고 <보글보글>로 7수의 설움을 달랜다. ⓒ tvN


<응답하라 1988>에는 김정봉(안재홍)이 오락실에 가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정봉은 오락실에 죽치고 앉아 '보글보글(Bubble Bobble)'이나 '갤러그'의 끝판을 깨버린다. 이런 오락실 풍경은 극 중 1965년생인 정봉이나 1971년생으로 설정된 '덕선 패거리'뿐 아니라 1983년생인 성진주(김설)에게도 매우 익숙한 광경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은 조금씩 다르다.

우선 정봉은 이 두 가지 게임을 오락실에서 원 없이 즐긴 세대다. 그는 1981년에 출시된 갤러그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다. 1986년 보글보글이 출시되었을 때는 이미 22세로 오락실에서는 퇴출당한 세대다. 마음만 먹으면 정봉처럼 '끝판'을 깰 때까지 동전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게임을 할 만큼 여유가 있지만, 그럴만한 열정은 더는 없다.

'덕선 패거리'는 조금 다르다. 오락실에서 그들의 전성기는 갤러그보다 보글보글과 겹친다. 그러나 그들의 오락실에는 갤러그와 보글보글의 열풍이 교차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최택(박보검)처럼 갤러그에 넋을 놓기도 하고, 성덕선(혜리)처럼 보글보글에 매달리기도 한다. 고교생인 이들에게는 오락실로 달려갈 만한 열정도, 실제로 오락을 즐길만한 여력도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진주의 세대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진주의 세대'는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 오락실에 상주한다. 그러나 실제로 동전을 넣고 오락을 한 시간보다 '언니 오빠들' 등 뒤에서 서성거리며 눈으로 즐긴 기억이 더 많다. 오락 한 판 할 돈 50원이 없던 그들에게 동전 한 닢이나마 용돈으로 쥐어질 무렵에는 '스트리트 파이터'나 전투기 슈팅 게임이 대세가 되었다. 보다 여유가 생길 즈음에는 PC방과 '스타크래프트'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이들은 '전자오락'은 눈으로 즐기고 '게임'은 PC방에서 배운 첫 세대다.

진주의 세대, 그리고 그보다 어린 세대에게 <응답하라 1988>은 전자오락과 같다. 전원이 '팟'하고 켜질 때 어린 가슴을 환기하던 기묘한 이물감과 오락실 밖의 세상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총천연색 발랄한 음향이 주던 설렘, "Insert Coin"이라는 글씨 아래 1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데모 플레이에 맞춰 조이스틱을 움직일 때, 아니 조이스틱에 이끌려 움직일 때의 허망한 흥분감, 동전을 들고 와 자신을 밀쳐내는 어른에게 느끼는 묘한 질투심과 기대감의 교차.

진주의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갤러그와 1980년대는, 막상 조이스틱을 조작한 생생한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그리운 과거다. 언니 오빠들의 어깨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던 휘황찬란한 오락실 모니터처럼 아련하고 막연하게 남은 것이 1988년인 것이다.

1988년을 추억하는 각자의 방식, 봄과 가을

 1968년생 보라의 청춘은 한국 사회의 겨울과 봄, 다시 겨울을 두루 겪는다.

1968년생 보라의 청춘은 한국 사회의 겨울과 봄, 다시 겨울을 두루 겪는다. ⓒ tvN


<응답하라 1988>은 딜레마를 안고 시작했다. 그동안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 시청자는 진주세대였다. 진주세대는 1997년과 1994년의 감성은 너끈히 공감할 수 있었지만 1988년에는 너무 어렸다. 때문에 <응팔>은 진주세대에게 드라마의 시대를 이해시키거나, 드라마와 접점이 떨어지는 정봉세대와 덕선세대를 TV 앞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응팔>이 프롤로그로 '시청지도서'까지 편성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기우였다.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가 그러했듯 시청자들은 <응팔>에서 '내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었던 시절을 그대로 재현한 복고드라마'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88년을 주름잡은 전자오락에 대한 거리감과 감성이 각각 다르듯 정봉세대와 덕선세대, 그리고 진주세대는 제각각의 방식으로 <응팔>를 즐겼다.

동전을 가득 쌓아놓고 게임을 즐기던 정봉세대에게 1988년은 청춘이 살아 숨 쉬던 시대였다. 그들은 시대의 주인으로서 민주화를 주도하고 문화를 즐겼다. <응팔>은 정봉과 성보라(류혜영)를 통해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자그마치 7수 끝에 대학 진학에 성공한 정봉의 삶은 입에 풀칠할 수 있는 한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486세대의 진취성을 보여준다.

또한 대학생활 내내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고 '미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서슬 퍼런 증오를 불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독학으로 율사의 꿈을 이룬 보라의 삶은, 1987년을 기점으로 민주화의 열정을 넉넉하고 여유로운 꿈으로 변화시켜나가던 정봉세대의 희망을 보여준다. 이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새파란 봄, 청춘이란 것이리라. 정봉세대는 <응팔>을 통해 한국의 봄을 반추했다.

덕선세대에게 1980년대 후반은 사회진출에 대한 설렘으로 들떠있던 시절이다. 아니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의 열기로 드디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는 희망에 온 사회가 들떠있던 시절이었다. 보증 빚에 시달리던 성동일과 이일화, 찢어지게 가난해 연탄 살 돈도 없던 김성균과 라미란이 온몸으로 버텨낸 암흑기의 안개도 1988년 올림픽 축포와 함께 걷혀간다. 이처럼 덕선세대는 지독한 '수험생활'을 거친 한국 사회의 절망과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회에 진출한다. '최무성'과 '김선영'의 자식을 향한 유별난 집착은 오락실에서 조이스틱을 잡고 앉은 덕선세대의 등을 보며 고생 끝에 맞이한 수확의 가을을 고대하던 사회의 시선을 나타낸다. 덕선세대는 <응팔>에서 가을의 넉넉함을 추억했다.

너무 어렸던 진주세대는 1980년대의 관조자였다. 1983년생인 진주도 마찬가지다. 진주에게 1988년은 눈깔사탕 먹고 외눈으로 구슬 겨누던 동화 속 세상이다. 그 봄, 그 가을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뿐 삶에 대한 생생함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응팔>에 열광했다.

덕선과 택, 정환의 가슴 절절한 애정 때문일까? 바람결에 주워들은 이문세와 변진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아니다. 기존 시리즈에서 반복한 '삼각로맨스'와 '공감'만으로는 이제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부족하다. 진주세대도 어찌 됐건 1980년대를 추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정봉세대와 덕선세대의 어깨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던 전자오락의 추억처럼.

진주세대에게 2016년의 대한민국은 혹독한 겨울이다

 1982년생 진주는 쌍문동 공동체가 몰락된 겨울을 살아가고 있다

1982년생 진주는 쌍문동 공동체가 몰락된 겨울을 살아가고 있다 ⓒ tvN


봄과 가을은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특히나 겨울을 살아가고 있다면. 진주세대에게 2016년의 대한민국은 혹독한 겨울이다. 덕선세대는 한국사회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관문에서 사회에 진출했다면, 진주세대는 한국사회가 고꾸라질 위기의 순간에, 혹은 실제로 고꾸라진 황량한 사회에 진출했다.

2001년에 대학에 진학했을 진주는 1997년 외환위기로 악화한 노동환경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심화한 취업난 사이에서 고뇌했을 것이다. 정리해고의 압박은 심해지고 임금은 제자리걸음이며 이직은 그야말로 도피일 뿐이다. 진주보다 어린 2000년대 중후반 학번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진주세대에게 <응팔>의 무대는 가난하고 황량하지만, 이웃의 정이 있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살아본 적도 없지만 돌아가고 싶은 유토피아'에 가깝다.

그 희망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성동일 이일화 가족의 변천사다. 고졸 은행원인 성동일은 결국 정리해고를 종용받는 50대 초반까지 은행에서 일하며 퇴직금 2억 원을 받는다. 강남은 이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올랐던 시절, 성동일 이일화 가족은 김성균 라미란 가족을 따라 판교로 이사를 떠난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성동일이 성공한 투자를?

사실 그동안의 시리즈에서 성동일은 실패의 아이콘이었다. 삼성전자와 한미약품에 대한 주식투자를 만류하거나, 이제는 부당하게 조롱의 대상이 된 '시티폰'에 주식을 투자하는 등 미래를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 우월한 입장에서 비웃는 재미가 있는 것이 성동일의 '투자'였다. 따라서 성동일이 판교 재개발 과정에서 보상금으로 목돈을 챙길 것이 예상되는 이 설정이 낯선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는 그런 시대였다.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부풀어 올랐고, 종자돈이 조금 있으면 재개발이나 주식처럼 '대박'도 노려볼 수 있었다. 지금처럼 여윳돈이 넉넉한 부유층만이 아니라 '3만원 들고 상경했다'는 '미옥'(만옥, 이민지)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도 심심찮게 성공하는 세상이었다. 대박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극중에서 거론된 '고작 17% 은행 금리'면 성실하게 돈을 모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것도 가능했다. 집을 사느니 전세를 택하고 자영업자 셋 중 둘은 망해나가는 오늘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유토피아다. 진주세대는 1988년대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의 간극에 유토피아로 설정된 '과거의 미래'를 채워 넣은 것이다.

2016년, 붕괴된 쌍문동 유토피아의 주민은 뭐라고 응답할까

 덕선세대는 1988년 '선진 대한민국'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덕선세대는 1988년 '선진 대한민국'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 tvN


장하성 고려대학교 교수는 현세대를 일컬어 "역사상 최초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는 '부모보다 못 사는' 진주세대가 불운한 예감을 품고 태어난 시대이자 마지막 호황기의 시작점이었다. 진주세대는 언니 오빠의 등 뒤에서 얼쩡거리며 동전이 없어서 조작할 수 없는 오락기를 돋움발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세대라는 것은 사실 그렇게 무 자르듯 분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동일의 세대를 중심으로 정봉, 덕선, 진주의 세대는 북적대는 이 사회에 어우러져 살고 있다. 누군가는 부유하고 누군가는 가난한 것이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하다. 세대로 구획했지만, 그들은 공동체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드는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간다. 장하성 교수가 지적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라는 것은 결국 시대와 공동체 전체의 퇴보를 의미하는 셈이다. 성동일 세대의 부가 계속 축나는 가운데 부를 물려받아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키워야 할 정봉과 덕선 세대는 쪼들린다. 한창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나거나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자식을 보며 한숨 속에 '임금피크제'의 칼날을 받는 터다. 진주세대는 초라한 성동일 세대와 정봉, 덕선 세대를 바라보며 공동체의 붕괴를 체감하며 모든 것을 포기한다.

따라서 <응팔>이 설정한 유토피아의 본질은 쌍문동의 네 가족을 공동체로 설계한 데 있다. 기존의 시리즈부터 등장인물들의 삶을 공동체에 가깝게 그려왔지만, 성동일과 이일화 가족 아래에 젊은 주인공들이 모여드는 구성에 불과했다. 그러나 <응팔>은 네 가족의 부모 자식 관계를 모두 드러내며 저녁 시간만 되면 서로 반찬을 나누느라 분주하게 골목을 오가는 가족 공동체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렸다. 이들이 설정한 '쌍문동 유토피아'는 고난 앞에 강하다.

쌍문동 유토피아는 아내를 잃고 술과 시름에 죽어가던 최무성을 안팎으로 품고, 그는 다시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의 폭력적인 행동 때문에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던 김선영을 돕는다. 선우가 아버지를 잃었을 때나, 동일이 수십 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라미란이 폐경으로 우울할 때도 온 동네가 나서서 도움을 준다. 그들의 유토피아는 온 세대와 이웃이 나서서 가장 연약한 구성원에게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있다. 각자도생의 삶을 사는 2016년 우리 사회의 '진주'가 그리워할 법한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쌍문동 유토피아는 곧 붕괴한다. '겹사돈'과 '판교 이웃 사촌'이라는 설정을 걷어내고 보면 이 과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서로 의지하며 살던 그들은 아파트를 사서 곧 쌍문동을 떠나며 자연스럽게 파편화된다. 공동체 해체에 대한 아쉬움은 내 집 마련에 대한 기대감을 이기지 못한다. 과거 한 공동체에 속했던 그들은 이내 각자의 아픔을 각자가 감당하고, 울음소리 하나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공간에 고립된다. 간혹 만나 옛 추억을 되새기지만, 추억은 추억일 뿐. 그들은 이제 서로에게서 어딘지 거리감 느껴지는 아파트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아파트 밖에서도 구획된(apart) 공간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현실에는 아직도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이들이 혼재해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에게는 '기댈 언덕'이 없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대와 이웃 공동체는 더는 서로의 어려움을 감당해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세대와 이웃이 이해관계에 얽혀 극한 대립을 하게 된다. 작년 한 해 회자하였던 "아버지가 자식의 직장을 빼앗는다", "정규직이 비정규직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구호는 공동체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말이었다.

오늘날 '현실 속 쌍문동 유토피아' 사람들은 이 잔인한 구호에 무어라고 응답할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택현 시민기자의 '4인칭 시점' 블로그(http://blog.naver.com/4thperson)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응팔 어남류 혜리 류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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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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