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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일부터 프랑스 전국에서 비닐봉지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가 현재 3월로 시행이 연기된 상태다. 한편 지난 2015년 11월 4일, 프랑스 최초로 무포장 100% 유기농 식료품 판매장이 파리 중심가에 들어섰다. 파리 환경회의가 개최되는 기간을 전후로 연말까지 두 달간의 실험 운영을 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운영 기간이 두 달 연장되었다.

먹거리 문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하는 행동하는 슈퍼마켓 '비오콥21'의 지난 두 달 결산은 어땠을까? 파리 회의를 뜻하는 불어 발음 '콥21'을 따서 '비오콥 21'(Biocoop 21)이라 이름 붙은 이 매장에 지난 1월 14일 아침에 조용히 방문했다.

'비오콥21'이 슈퍼마켓과 다른 점, '포장된 물건 없다'

레프블릭 광장에서 끽해야 5분 걸었을까? 상쾌하게 하늘색으로 칠해진 모퉁이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담한 가게 안에 초록·주황·노란 빛의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뒤에 파스타·쌀·곡류 등이 담긴 '사일로'(곡식을 보관하는 원통형 창고)들이 알록달록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은은한 카페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수프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65m²의 면적에 생필품이 모두 갖춰져 있지는 않았지만 주된 먹거리는 그런대로 갖춰져 있었다. 채소·과일·빵·치즈·달걀·파스타·쌀·밀가루·비스킷·식용유·포도주·꿀·커피·수프 등뿐 아니라 빨래·청소 및 설거지 세제도 있었다. 이 가게가 다른 슈퍼마켓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어느 하나도 포장된 물건이 없다는 것!

일반 슈퍼마켓이나 하이퍼마켓(식품 위주의 대형마트)에서는 채소·과일도 비닐봉지에 3~4개씩 낱개 포장되어 팔리기 때문에 장을 봐오면 비닐 포장·플라스틱·스티로폼 등이 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가 수북이 쌓인다. 하지만 비오콥 21에서는 시장에서 장을 보듯이 소비자들이 각자 담을 봉지나 그릇을 갖고 와서 담아간다. 그러므로 포장으로 버려지는 쓰레기가 '제로'다.

용기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매장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는 이 가게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담을 것들의 재질은 하나같이 종이·유리·얇은 면 등이다. 투명한 비닐이 부분적으로 들어간 종이 봉지의 경우 생분해되는 식물성 비닐로 되어있다. 플라스틱 용기는 해초로 만들어서 생분해되기 때문에 퇴비 통에 넣을 수 있다.

고기와 치즈의 경우, 아무리 냉장고에서 보관한다고 해도 위생상의 문제 때문에 비닐 팩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 비닐 팩도 자연분해가 된다. 원하는 만큼만 덜어갈 수 있는 무포장 매장이 프랑스 전국에 15개 되는데 그중 100% 유기농 매장은 비오콥21이 유일하다.

다음은 매장 담당자 알렉시스와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비오콥21 매장 담당자 알렉시스(가운데)와 점원들.
 비오콥21 매장 담당자 알렉시스(가운데)와 점원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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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파리 10구 시청에서 비오콥에 먼저 제안을 해왔어요. 그래서 저희가 프로젝트를 구체화했죠. 레프블릭 비오콥이 가까워서 그곳 직원을 파견 보내서 시작되었어요."

- 시에서 보조금을 받았나요?
"아니오. 시에서 보조금을 주지는 않았고, 프로젝트 지원은 해줬죠. 예를 들면, 이 자리를 임대했어요. 임대료는 시장가예요. 그리고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서 두 달을 더 연기해줬어요. 이게 만일 개인 부동산이었다면 이 바닥의 임대료도 훨씬 비쌌을 거고, 임시 프로젝트였던 계약을 두 달 연장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예요."

- 비오콥21이 미디어에 소개됐잖아요. 혹시 시에서 홍보를 도와줬나요?
"아니오. 언론사들이 자체적으로 취재를 많이 나와줬어요. 그 덕분에 '비오콥'이란 이름이 언론에 많이 나와서 비오콥이 알려지게 되었어요. 원래 저희 비오콥이 광고를 안 하잖아요. (웃음) 기사 보고 호기심에 구경하러 오는 사람도 많았고, 구매하는 소비자도 많았어요. 도둑질하거나 우리 가게에 없는 걸 찾는 까다로운 손님도 없지 않았지만요."

포장 사라지니 제품 가격 낮아지고 '원하는 양' 구매 가능

- 많은 손님이 각자 담을 그릇이나 봉지를 가지고 오던가요?
"아쉽게도 80% 정도는 그냥 오세요. 하지만 근처에 살아서 정기적으로 오시는 분들은 각자 용기를 갖고 오십니다. 어떤 분은 저희 가게에서 담아간 종이 봉지를 모아두셨다가 들고 오셔서 그 종이 봉지에 다시 담아가는 분들도 계세요.

달걀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처음에 저희가 종이 곽을 마련해뒀는데, '그렇게 팔면 제품가격에 종이 곽이 포함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계셨어요. 결국 달걀을 사는 분들은 다들 알아서 종이 곽을 가져오셔서 저희가 준비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 프로젝트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손익계산이 안 되면 운영이 힘들 텐데요.
"다행히 홍보가 많이 된 덕택에 주중, 주말 꾸준히 손님들이 와서 두 달 연장하기로 결정한 거죠. 근데 언론 기사에 '12월 말까지 운영'이라고 나가서 1월 들어 손님이 확 줄었네요(웃음)."

- 각자 담아가는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떤 점이 힘드셨어요?
"'사일로'를 수시로 채워야 하기 때문에 일손이 들고요. 각자 담는 과정에서 간혹 흘리는 게 있어서 손실이 발생하죠.

식용유의 경우, 프랑스에서 법으로 규제하는 게 있어서 아주 까다로웠어요. 프랑스 법상 기름은 '리터 법'으로 판매하게 되어있는데, 구매 다음날 다시 오셔서 '집에 가서 보니까 1리터가 안 되더라'고 따지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식용유를 부피가 아닌 무게로 팔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습니다.

다른 건 소비자가 직접 담아가게 하지만 식용유와 포도주만큼은 법에서 규제하는 바를 지켜야 해서 저희 직원이 직접 서비스해요. 기름병마다 '무게로 팔 수 있도록 허가받았음'이라는 표시를 일일이 붙여야 하는 게 번거롭죠.

자주 마시는 우유도 마시고 싶은 만큼만 팔 수 있으면 좋은데요. 위생상의 문제 때문에 생산과정에서 병에 미리 담아야 해서 취급할 수 없는 게 안타깝죠."

빨래, 설거지, 청소 세제도 리필할 수 있다.
 빨래, 설거지, 청소 세제도 리필할 수 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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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에 흘낏 보니 한 젊은 손님이 커피를 갈아서 봉지에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커피가 다 쏟아지기 전에 봉지를 너무 일찍 꺼내는 바람에 주먹만큼을 흘렸다. 그 손님은 직원을 불러 '커피 가루를 흘려서 미안하다'고, '이걸 어떻게 담아 계산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괜찮다고 답했다.

포장 없이 어떻게 물건을 사갈까? 집에서 용기를 가져오는 경우, 용기의 무게를 재고 무게가 인쇄된 스티커를 붙인다. 물건을 담아서 계산대에서 용기의 무게만큼을 빼고 계산한다. 세제의 경우, 서로 다른 세제가 섞이지 않도록 반드시 똑같은 세제가 담겼던 용기에 '리필'해야 한다.

커피의 종류가 다양해서 놀랐는데 모두 '공정거래' 유기농 커피였다. 볶은 원두를 그 자리에서 무료로 갈아서 가져갈 수도 있다. 달걀도 낱개로 사 갈 수 있고, 꿀·식용유·포도주도 원하는 만큼 사갈 수 있다. 포장이 사라지니 제품 가격이 그만큼 낮아지는 건 기본!

"용기 청소는 식초로... 세제 필요 없어요"

야채, 곡류, 커피, 비스킷, 파스타 등 100% 원하는 만큼만 덜어서 살 수 있다. 한 소비자가 필요한 만큼을 담아 무게를 달고 있다. 이 손님이 장을 보고 나갈 때, 인터뷰를 청했다.
 야채, 곡류, 커피, 비스킷, 파스타 등 100% 원하는 만큼만 덜어서 살 수 있다. 한 소비자가 필요한 만큼을 담아 무게를 달고 있다. 이 손님이 장을 보고 나갈 때, 인터뷰를 청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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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커피를 흘린 사람과 다른 30대 초반의 소비자가 보였다. 천으로 된 시장바구니 두 개에 물건을 가득 담아 가게를 나가려는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 이곳에 자주 장 보러 오세요?
"네, 개장했을 때부터 1주일에 한 번씩 오고 있어요."

- 어떤 점이 좋아서 주기적으로 오시나요?
"채소와 과일 가격이 저렴하고 신선해요. (일주일에 두 번 서는) 시장에서 파는 거랑 비교해보면 가격이 비슷한데, 시장에서 파는 건 유기농이 아니거든요. 가격대 품질 면으로 봤을 때, 저렴하고 우수한 거죠. 그리고 슈퍼마켓에서 파는 채소와 과일들은 멀리 스페인에서 오지만 이곳 물건은 지역농산물이라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아서 좋아요."

참고로, 비오콥21에서 파는 채소·과일·빵 생산지는 반경 150km 내에 있다.

- 여기서 어떤 걸 사고, 어떤 걸 안 사나요?
"채소·과일·파스타·곡류·커피 등을 사고요. 빵이랑 치즈는 제가 평소에 잘 가는 가게가 있어서 거기서 사요(미안해서 웃음). 식용유는 엄마가 어디서 짜오는 기름이 있어서 병에 담아 저랑 나누기 때문에 살 일이 없어요. 그것도 포장 없이 사는 거지요. 용기 청소는 무색 투명한 식초(vinaigre blanc)로 다 해서 세제가 필요 없어요. 냄새는 나지만(웃음)."

- 식초로 청소하신다는 걸 보면 이미 환경문제에 예민하신 것 같은데요. 가까이 살면 용기는 직접 들고 오시나요?
"한번 담아간 종이 봉지를 모아서 다음에 가져와야지 하는데, 맨날 까먹어요(웃음)."

- 비오콥21이 2월 말에 문을 닫으면 앞으로 어디서 장을 보실 건가요?
"정말 아쉬워요. 가까운 데서 양질의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좋았는데... 다시 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조금 떨어진 비오콥 레프블릭 매장에 가끔 가겠죠."

환경오염에 자원 낭비, 비닐봉지 거부 운동의 이유

손님이 미리 봉지를 준비하지 못한 경우, 매장에 구비된 재활용 종이 봉지를 이용할 수 있고, 위에 보이는 용기를 사서 담아가고 다음에 다시 쓸 수도 있다. 해초로 만들어 생분해가 가능한 파란 플라스틱 통은 비오콥21을 위해서 주문생산된 것이라고 한다.
 손님이 미리 봉지를 준비하지 못한 경우, 매장에 구비된 재활용 종이 봉지를 이용할 수 있고, 위에 보이는 용기를 사서 담아가고 다음에 다시 쓸 수도 있다. 해초로 만들어 생분해가 가능한 파란 플라스틱 통은 비오콥21을 위해서 주문생산된 것이라고 한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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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를 위해서 비오콥에 대한 설명을 첨가해야겠다. 하긴 프랑스인이라 하더라도 비오콥에 대해 잘 모르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비오콥은 프랑스 전국의 유기농 매장으로, 연대와 친환경을 통해서 상거래를 하자는 취지로 2005년에 생겨났다. 일반 슈퍼마켓 체인과 다르게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며 각각의 매장이 독립적인 운영을 해서 각 매장이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다.

유럽연합의 유기농 인증마크 'AB'는 해당 식품 성분구성 중 95%가 유기농이면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비오콥에서 파는 식료품은 100% 유기농을 고집한다. 개장할 때부터 비오콥에선 비닐봉지를 나눠주지 않았다.

그린워싱(친환경, 유기농을 상징하는 녹색(green)과 세탁(white washing)의 합성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주려고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마케팅)으로 수익을 늘리고 수익금을 투기에 붓는 타 유기농 체인들과 구별되는 비오콥의 또 다른 변별점은 궁극적으로 환경을 생각한다는 점이다. 은행이 아닌 생산자와 연대하고, 환경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지역 농산물을 우선으로 삼는다. 유전자 조작식품을 취급하지 않으며, 유기농 식품의 공정한 가격을 위해 힘쓴다는 점도 있다.

너도나도 쓰는 가볍고 질긴 비닐봉지가 환경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최근에 프랑스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한 해 500억 개의 플라스틱 봉지, 즉 비닐봉지가 생산된다고 한다. 비닐봉지 1톤을 생산할 때마다 5774KWh의 전기와 180리터의 석유가 소모된다. 한 사람당 한 해 평균 350~500개의 비닐봉지를 쓰며 사용시간은 평균 20분, 고작 1%만이 재활용된다.

비닐봉지가 자연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0년이다. 매년 바다에서 건져지는 비닐봉지가 자그마치 2만4천 톤이다. 깊은 바다에서도 비닐봉지를 찾아볼 수 있는데, 물속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해파리인 줄 알고 거북이가 삼키는 경우도 있다. 만약 동물이 삼키면 소화도 되지 않을 뿐더러 늘어나되 찢어지지 않는 비닐이 내장을 망가뜨려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죽어가는 해양 포유동물이 연간 10만 마리나 된다. 인간이 해변에서 먹고 놀다 버린 비닐봉지를 먹이인 줄 알고 삼켜서 죽는 물새도 100만 마리나 된다. 비닐봉지가 햇빛에 의해 미세한 중합체 분자로 분해되면 바다가 오염되고 해양 먹이사슬을 교란시킨다.

지난 19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발표에 따르면, "지금처럼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사용하고 버리면 매년 800억~1200억 달러의 플라스틱이 폐기된다. 금전적인 면은 차치하고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2050년에는 '무게대비'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필자가 비닐봉지를 쓰지 않은 지 5년 정도 된다. 위 통계에 따라 만일 하루에 5만 명의 소비자가 매일 비닐봉지를 거부하면 한 달 동안 150만~200만 개의 비닐봉지를 안 쓸 수 있다. 비닐봉지를 생산하는 데 소모되는 석유가 덜 필요하게 되고, 바다와 해양동물을 오염과 죽음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당신도 비닐을 거부하는 운동에 동참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태그:#비오콥21, #COP21, #유기농, #친환경, #전환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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