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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보기]문재인, 김종인 선대위원장 영입 "경제민주화의 상징"
ⓒ 정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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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대 총선 바둑'에서 집을 잃고 있었다. 천정배, 안철수, 김한길 등 호남과 수도권에서만 17석이 떠났다. 문 대표는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분열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자신의 구상대로 나아갔다. 새로운 인물 영입으로 난국을 돌파하던 그는 '김종인'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것은 최소 다섯 가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경제민주화와 박영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4일 오후 국회 당 대표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김종인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를 확정한 뒤 한 기자회견에서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종인 박사를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 문재인, 김종인 선대위원장 전격 영입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4일 오후 국회 당 대표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김종인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인선문제를 확정한 뒤 한 기자회견에서 "선대위를 조기 출범시키고 김종인 박사를 당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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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표는 14일 더민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노태우 정부) 영입을 발표했다. 문 대표의 표현대로 "모셨다"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 과거 군사정권부터 정부 요직과 국회의원을 여러 차례 맡았고, 지난 대선에서는 상대 후보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인물이다.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이라고 하지만 그의 역사는 더민주와는 대척점에 있었다.

당내와 지지자 사이에서 많은 비판이 제기될 수 있음에도 문 대표가 김 전 수석 영입에 공을 들인 것은 그만큼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당 대표로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유능한 경제정당'이라는 슬로건에 힘을 실을 수 있다. 김 전 수석이 과거 보수 정권에 몸 담았다고 하더라도, 한국 경제 문제에 있어서 최고의 명망가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성도 아직 유효하다. 김 전 수석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우게 만들었다. 당시 대선의 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가장 뜨거운 주제다. 김 전 수석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경제민주화 가치를 버렸다고 강하게 비판했으며,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자아비판도 여러 차례 밝혔다.

이것은 김 전 수석 영입으로 나타나는 표면적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김 전 수석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가 다시 현실정치에 나서면서 더민주를 비롯해 정치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전 수석은 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향후 행보가 주목 받고 있는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정치적 멘토로 통한다.

지난 9월 새정치민주연합 재벌개혁특위 박영선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특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9월 새정치민주연합 재벌개혁특위 박영선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특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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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원내대표는 현재까지 분열되고 있는 야권의 균형추 같은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탈당해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으로 합류한다면 수도권에서 상당한 동반 이탈이 예상됐다. 문 대표 측에서도 박 전 원내대표의 거취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정치적 멘토인 김 전 수석이 당에 들어오면서 박 전 원내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게 된 상황이다.

일단 문 대표 측은 김 전 수석 영입으로 박 전 원내대표를 붙잡을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당 관계자는 "박 전 원내대표뿐 아니라 탈당하려는 의원들도 명분을 잃었다"라며 "문 대표가 물러나고 호남 민심을 돌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번 영입으로 문 대표는 사실상 2선 후퇴를 선언한 것이고 이후 호남 인사가 추가로 들어오면 그런 주장은 나오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런 명분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봤을 때 박 전 원내대표가 김 전 수석에게 등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당내 입지가 줄어든 박 전 원내대표가 국민의당으로 가 안철수 의원과 경쟁 구도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김 전 수석이 당 일선에 나선 것을 기반으로 박 전 원내대표가 당내 입지를 넓힐 가능성이 더 크다.

친노, 보수, 그리고 호남

김 전 수석 영입은 더민주를 향한 '친노당' 비판을 희석하는 효과도 갖는다. 김 전 수석은 지난 2004년 17대 국회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냈다. 당시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과 대립했었고, 이후 지난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는 "친노무현(친노) 세력은 더 이상 설 땅이 없어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김 전 수석을 문재인 대표가 영입 했다고 해서 그를 '친노'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당내 소위 '친노'로 분류되는 주류 세력과 대립할 가능성이 크다. 김 전 수석은 과거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시절에도 '경제민주화' 강령 제정을 반대하는 당내 주류와 충돌한 바 있다. 특히 문 대표가 2선으로 물러나고 김 전 수석이 공천을 관장하게 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전 수석의 영입은 여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에 나서자 부동층과 보수 지지여론이 안 의원에게 쏠렸다. 그러나 더민주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문 대표 개인에게 단단한 지지가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경제계, 법조계, 군과 관료 출신 인사들, 그리고 김 전 수석까지 영입하며 외연을 넓혀 '합리적 보수'의 여론을 흡수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더민주 혁신위원을 지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야권 정당은 좋은 보수인사를 영입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밑에서 일한 사람 중에도 좋은 사람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보수 정권의 실정, 4대강 사업이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철저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김 전 수석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기비판을 했다"라고 말했다.

더민주의 최대 과제인 '호남 여론'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전 수석은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다. 김병로 선생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다. 김 전 수석은 서울 태생이지만 집안의 뿌리가 호남에 있다. 그가 밖에 있을 때는 그런 점이 부각되지 않았지만, 당에 들어온 이후에는 호남에서 존경받는 인물의 후손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

물론 김 전 수석이 호남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단순히 혈연적 관계 때문은 아니다. 김 전 수석이 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당 전반에 무게감이 생겼다. 문 대표는 이를 통해 '호남정치복원'을 주장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과 통합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천 의원에게 김 전 수석과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기거나 당대 당 통합 이후 공동대표로 추대할 가능성이 크다.

더민주 관계자는 "애초 선대위는 '경제'와 '호남'이라는 키워드로 구성하려고 했다"라며 "김 전 수석이 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경제'라는 퍼즐은 맞춰 진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호남을 대표할 수 있는 세력, 또는 인물과 손 잡아야 한다"라며 "그것은 천정배 의원과 통합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새로운 인물이 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어쨌든 박근혜를 만든 사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지난 2012년 10월 29일 오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의 만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지난 2012년 10월 29일 오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의 만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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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 전 수석 영입이 문 대표와 더민주에게 낙관적인 전망만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김 전 수석의 이력이 가장 큰 문제다. 그가 비판을 해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박근혜 정권 탄생의 1등 공신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과거 군사정권에서부터 정권의 주류 인사로서 사회와 경제 전반을 주물러 왔기 때문에 그 책임의 범위가 상당하다.

당장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문 대표의 영입 발표 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희, 추미애 최고위원이 강도 높게 김 전 수석 임명을 비판했다. 유 최고위원은 "김종인 개인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을 만들고 정권 탄생에 막대한 기여를 한 사람"이라며 "그런 사람을 가지고 지지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특히 더민주는 한 차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지난 2014년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이상돈 교수를 영입하려 했을 때도 박근혜 정권 탄생에 기여했다는 이력이 논란이 돼 결국 무산됐다. 당시 문 대표는 이를 수용하려 했지만 소위 '친노' 세력은 반발했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중적 잣대가 적용된 것은 분명하다.

이 같은 우려에 문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당내와 지지자들에게 비판이 있을 수 있다"라며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소득불평등 해소이고, 이를 위해 반드시 경제민주화가 실현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 전 수석을 모시는 게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라며 "우리 당을 안정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수석의 선대위 체제는 빠르면 내주 정도에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총선기획단 구성부터 김 전 수석이 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문 대표는 김 전 수석의 파트너를 세우고 당 통합에 비전을 보여줘야 당내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 문 대표가 몇 수를 내다보고 '김종인'이라는 포석을 깔아 놓았는지 주목해 봐야 한다.


태그:#문재인, #김종인, #안철수, #박근혜, #더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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