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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달력.
 2016년 달력.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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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갑자의 33번째인 병신년(丙申年)은 어감은 좋지 않지만 우리 역사에서 중대한 일이 많이 벌어진 해다. 그래서 꽤 '삼삼'한 해였다.

서기 원년 이후에 최초의 병신년은 서기 36년이다. 그 이후로 총 33차례의 병신년이 있었다. 금년은 34번째 병신년이다. 그간의 병신년에는 대외관계와 관련하여 민족의 운명에 득이 되는 사건이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보면 득이 될 때가 많았다.

참고로, 육십갑자에 기초한 연도는 음력 설날부터 시작하는 게 원칙이다. 이에 따르면, 금년 병신년은 음력 설날인 2월 8일에 시작한다. 하지만, 요즘은 육십갑자 상의 연도를 양력 1월 1일부터 계산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굳어져 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올해 병신년은 1월 1일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고 2월 8일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다.

발해 건국, 고려 통일... 역사상의 굵직한 사건 많았던 병신년 

병신년에 벌어진 사건 중에 대외관계와 관련된 게 많다고 했지만, 꼭 그런 사건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사회통합이나 정권의 향방과 관련된 사건도 있었다. 고려 시대인 1176년에는 천민인 망이·망소이가 지금의 충남 공주에 소재한 명학소에서 반체제 반란을 일으켰다. 신분해방을 목표로 고려를 깨고자 했던 기층민중의 이 반란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반역 사건으로 처리되었다.

조선 후기인 1716년에는 다수세력인 서인당 출신의 노론당이 최초의 단독적인 정권 장악에 성공했다(병신처분(丙申處分)). 노론당은 1722년 정권을 내줬다가 1725년 다시 탈환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장기집권했다. 이들의 장기집권이 조선왕조 멸망에 기여한 측면도 적지 않았다.

대한민국 시대인 1956년에는 사사오입 개헌(1954년)에 의한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사사오입 개헌의 목적은 이승만 대통령에 한해 3선 제한을 없애고 무제한 입후보를 가능케 하는 데 있었다. 국회 재적 의원 203명의 3분의 2인 136명이 찬성해야 개헌안이 통과될 수 있는데, 135명만 찬성하는 바람에 부결이 선포됐다. 그런데도 집권 자유당은 '203의 3분의 2는 135.3이니 소수점 이하 3을 없앤 135를 의결정족수로 보아야 한다'면서 부결 선언을 취소하고 가결을 선포했다.

이 사사오입 개헌에 의한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해가 1956년 병신년이다. 이승만에게 위협적인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선거 직전 급사하고 나서 치러진 선거에서, 대통령에는 자유당 이승만이 당선되고 부통령에는 민주당 장면이 당선되었다.

이렇게 병신년은 국내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해였지만, 국제 정치적으로는 훨씬 더 중요한 해였다. 굵직한 것만 예로 들면, 696년을 들 수 있다. 이때는 고구려가 사라진 지 28년 뒤였다. 이 해에 대조영은 당나라 땅 영주에서 거란족·말갈족과 함께 영주 민란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당나라를 약화시킨 그는 698년 '고구려 II' 발해를 건국했다.

696년 이후로 네 번째 병신년인 936년에는 훨씬 더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수십 년간의 '민족분단'을 해소하고 고려 왕건이 진정한 의미의 삼국 통일을 달성했다. 668년에 있었던 신라의 통일은 불완전한 것이었지만, 936년에 왕건은 상대적으로 완전한 통일을 이뤄냈다. 

'상대적'이란 표현을 쓴 것은, 탐라 같은 나라는 여전히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지 위주의 역사관에 빠져 있는 우리는 탐라 같은 섬나라를 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탐라는 때로는 제주를 벗어나 전라도 일부까지 영유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해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다의 강자였다. 그런 탐라까지는 통일하지 못했지만, 왕건은 한반도의 육지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완전한' 통일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다.

종묘 소실, 아관파천... 병신년의 굴욕

왕건 초상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왕건 초상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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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통일로부터 다섯 번째 병신년인 1236년은 몽골의 제3차 침입을 받고 있을 때였다. 몽골은 1231년에 제1차 고려 침공을 감행하고 1232년 재차 침공을 감행한 데 이어, 1235년에는 제3차 침공을 감행했다. 이런 상태에서 고려 정부는 호국의 염원을 담은 팔만대장경 판각을 시작했다. 임시수도인 강화도에 대장도감이라는 관청을 실시하고 대장정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 뒤로도 몽골은 네 차례나 더 침공했다. 약 30년간 총 7차례의 침공이 있었다. 고려는 매번 침공을 물리쳤다. 하지만 전쟁을 수행하던 무신정권이 몽골과 고려왕실의 합공으로 몰락하면서, 고려는 몽골의 간섭을 받는 나라로 전락했다.

그렇게 해서 1260년대부터 본격화된 민족적 굴욕을 청산하겠다며 공민왕이 나선 해가 1356년 병신년이었다. 이 해에 왕은 그 유명한 반몽골 정책을 수행했다. 친몽골파도 내쫓고 옛 땅도 수복했으며 옛 제도도 회복했다.

이때까지는 대외관계와 관련해 병신년에 벌어진 사건들이 민족적 자존심을 고양시켜주는 편이었다. 대조영이 당나라를 약화시킨 것, 왕건이 상대적으로 완전한 통일을 이룩한 것, 제3차 몽골 침입 중에 팔만대장경 판각을 시작한 것, 공민왕이 반몽골 정책을 실시한 것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조선 건국 이후의 병신년은 우리 입장에서 좀 떨떠름할 만했다.

조선 건국 204년 뒤인 1596년은 임진왜란이 한창일 때였다. 이 해에는 종묘가 일본군에 의해 불태워지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국가 사당인 종묘는 국가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한양 시내에 불이 나거나 쿠데타라도 발생하면 왕들은 가장 먼저 종묘부터 신경을 썼다. 그런 종묘가 일본군에 의해 불탔으니, 이만저만 치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비교적 최근인 1896년 병신년에도 개운치 않은 일이 있었다. 고종 임금이 일본군의 감시하에 있는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공사관에 의탁하는 아관파천이 있었다. 일본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목적하에 벌어진 일이지만, 일국의 군주가 외국 공사관에 몸을 의탁하는 것은 국가의 체모를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조선에서 벌어진 청·일 양국의 대결인 1894년 청일전쟁 발발 직전부터 일본은 조선 정국을 장악했다. 이런 상태에서 아관파천이 발생했다. 아관파천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속에서 1896년 러시아와 일본이 두 건의 정치협정을 체결했다. 베베르-고무라 각서, 로마노프-야마가타 의정서라는 두 건의 협정을 통해 합의된 것은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 안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세력균형으로 일본의 간섭을 덜게 되어 여유를 갖게 된 고종이 추진한 것이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칭호다. 하지만 2년 만인 1898년 이 세력균형이 깨지고 러시아가 물러나기로 하면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체결된 것이 1905년 을사늑약이다. 이렇게, 조선 건국 이후의 병신년은 대외관계와 관련하여 그다지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2016년 병신년, 기회가 와도 잡기 힘든 상황 

러시아공사관 터. 서울 중구 정동에 있다.
 러시아공사관 터. 서울 중구 정동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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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이후의 첫 병신년인 1956년에는 앞서 소개한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이승만 입장에서는 불법 개헌을 해서라도 3선에 성공했기 때문에 다행한 해였을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는 찜찜한 해였다. 이때부터 두 번째로 맞이하는 대한민국 시대의 병신년이 바로 금년이다.

만약 우리가 그간 잘했다면, 2016년 병신년은 우리의 운명을 업그레이드하는 해가 될 수도 있다. 과도기 세계질서를 틈타 통일의 숙원을 이룩하는 해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2016년이 행운을 준 해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간의 시간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도 민족적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어느 시대든 간에 통치자가 국가의 목표를 성취하려면, 자국 스스로 국가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강대국의 위성국이 된 나라는 강대국을 위해 살아야 하므로, 결정적 순간에 자신을 위한 선택을 내릴 수 없다. 대한민국은 제3국이 볼 때 미국의 '2중대'에 가깝다. 그래서 결정적 순간에 자신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없다. 2중대의 사명은 결정적 순간에 주인을 위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살 수 없다.

통치자가 국가의 목표를 성취하려면, 국가 목표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은 아버지의 명예회복과 아버지 시대의 재평가에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세계가 시끄러운 이 와중에도, 어쩌면 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한 유신 시대의 재평가가 무사히 성사되기만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통일 같은 민족적 과제는 뒷전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 

통치자가 국가적 목표를 이루려면, 국내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노사정 합의에서 드러나듯, 대한민국 통치자는 노동자·서민을 소외시키고 나라의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민족의 운명을 업그레이드하는 데에 온 국민의 힘을 결집시킬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대한민국은 기회가 와도 행운을 잡기 힘든 나라가 되어버렸다. 대조영과 왕건과 공민왕 같은 사람들의 시대에는 최소한의 의지와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병신년의 행운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2016년 병신년에도 민족의 운명이 크게 개선되리라는 전망을 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태그:#병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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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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