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은 성공했지만 이철희 소장은 떠난다. 7일자 방송을 마지막으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과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JTBC <썰전>에서 함께 하차했다. 제작진은 새로운 패널을 섭외해 공백기 없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어찌됐든 <썰전>은 또한번 위기를 맞게 됐다.

종합편성채널 출범 이후 시사 토크 프로그램은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프로그램의 질이 높다기보다 이런 포맷이 종편 형편을 고려할 때 적절한 제작 방식이기 때문이다. 제작비, 노하우, 충성도 높은 시청자 등 어떤 면으로 비교해봐도 공중파보다 불리한 위치에 서 있는 종편은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 효율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토크 프로그램은 패널 출연비와 세트만 있으면 제작이 가능하다.

<썰전>, 틈새를 파고들다

 JTBC 대표 프로그램 <썰전>

JTBC 대표 프로그램 <썰전> ⓒ JTBC


기존 시사 토크 프로그램은 어렵고 딱딱한 평론의 영역에 있었다. 전문가들이 출연해 근엄한 표정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것이 이들 프로그램의 인상이다. 종편은 복잡한 사안을 쉽게 설명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점으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자극적인 주제와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범벅된 이들 프로그램들은 막말 논쟁, 종북몰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검증받지 않은 '자칭 전문가'들의 범람을 불러왔다. 공정성을 저버린 '정치 뒷담화'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썰전>은 틈새시장을 노렸다. 지루한 정통 시사 프로그램과 쉽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다른 종편의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성공을 거뒀다. 종편이 시사 프로그램의 장벽을 낮춘 사이에 재미를 등에 업고 빈틈을 영리하게 공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사 프로그램의 전문성과 예능의 감각을 적절히 겸비한 결과다.

세 사람이 마주보는 화면 연출은 집중력 있는 토론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한 발상이었다. 막말이 난무하는 기존 프로그램과 비교해 김구라-이철희-강용석이 보여주는 신사적인 분위기는 <썰전>의 격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었다. 스피디한 편집과 자막도 기존 시사 프로그램에는 없는 것이었다. 젊은 시청자를 지루하지 않게 하면서도 자막으로 한번 더 짚어주어 흘려듣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정리했다. 동시에 매 주제마다 '한줄평'을 도입해 간결하고 통찰력 있는 요약을 제공했다. 김구라의 균형 있는 진행에 힘입은 바도 크다.

이 소장은 <썰전>으로 정치에 자신의 이름을 또렷하게 박아넣었다. 프로그램을 하차한 이유도 "정치권에 이름이 자주 거명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얼굴을 찾는 야권에서 이 소장은 적임자일 수밖에 없다. 복잡하고 전문 지식이 필요한 문제를 명쾌하게 풀어주는 동시에, 강용석·이준석 등 여권을 대표하는 두 패널에 맞서 현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그램 초반, 강용석 변호사에 대항해 상식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이 소장의 호감도를 높인 큰 요인이었다.

사이다, 이철희

 <썰전> 마지막에 밝힌 이철희 소장의 올해 소원. 그의 정치 진출로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썰전> 마지막에 밝힌 이철희 소장의 올해 소원. 그의 정치 진출로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 JTBC <썰전> 화면 갈무리


다른 종편과 결을 달리하는 이 소장의 발언은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다고까지 평가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임기가) 유독 긴 것 같다"고 말하고, 이준석 전 위원장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번 합의의) 이해당사자'라고 표현하자 "위안부 할머니들은 피해당사자"라고 정정하기도 한다. 매 회 방영 후에는 패널들의 발언이 포털 메인을 장식하기도 할만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이 소장의 역할 덕분에 <썰전>은 종편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이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선택할 수 있는 시사 프로그램이 됐다.

이 소장은 <이철희의 정치 썰전>으로 최근 펴낸 자신의 책 제목을 정할만큼 '썰전'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이지만 비교적 부드러운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이 소장에게는 있다. 자신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프트하게 정치 현안을 바라보는 것이 의미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장점은 토론 프로그램이나 시사와 예능의 경계가 모호한 곳에서도 무리 없이 발휘될 수 있었다. <썰전>의 성공에 힘입어 케이블, 종편, 지상파를 가리지 않고 활동영역을 넓히는 것이 가능했다.

이철희 소장의 오랜 활약과 프로그램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든 패널들의 잇단 프로그램 하차로 '<썰전>은 정치 등용문'이라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다음 패널이 누가 되든지간에, 해당 인물이 정치와 연관 있다면 프로그램을 발판 삼아 정치권 진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강용석 하차 이후 두번째 위기를 맞는 <썰전>의 미래가 만만치만은 않아 보이는 가장 큰 요인이다.

지금까지 <썰전>을 통해 왕 같은 대통령과 결별한 야권에 '화가 많이 났음'을 숨기지 않았던 이철희 소장, 그는 어디로 갈까. 과연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을 택할까, 안철수의 새정치를 택할까. 그의 선택이 무엇이 됐든, 그 역시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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