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89)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212차 정기 수요집회를 찾은 2000여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1000명)의 사람들을 향해 한 번의 쉼 없이 말했다. 할머니의 이마 중앙엔 핏자국이 맺힌 반창고가 붙었다.
6일 오후 12시께부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은 수요집회가 진행된 간이 무대부터 300여m에 이르는 평화로가 끝나는 길 너머까지 남녀노소 시민들로 가득 찼다. 1992년 1월 8일 부터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 방한을 계기로 시작돼 오늘로 꼭 24주년을 맞은 수요집회는 단일 주제로 벌여온 집회 중 세계 최장기 집회로 꼽힌다.
이날 수요집회에는 '100억줄테니 야스쿠니 신사 철거 어때?' '박근혜는 위안부 문제에서 손 떼라' 등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 합의 결과로 나온 위안부 문제 협상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은 손팻말도 곳곳에 섰다.
"제 나이가요, 89살입니다. 운동하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저도 앞장서겠습니다."
발언 끝에 엉거주춤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는 이용수 할머니.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이용수 할머니가 앉은 자리 옆에는 다른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 불끈 쥔 손, 발꿈치가 들린 발. '위안부 소녀상'으로 알고 있는 동상과 꼭 닮은 모습이었다. 대한민국 거주자로는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태를 실명으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를 형상화한 조형물이었다. 평화의 소녀상에서 발꿈치가 들린 발은 고국에 와서도 마음 편히 정착하지 못한 할머니들의 삶을 상징한다.
지난 1997년 12월 26일 세상을 떠난 김학순 할머니는 1994년 6월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 위안부 문제를 제소해 일본 법정에서 위안부 문제를 직접 밝히기도 했다. 곁에 앉은 이용수 할머니는 하얀 합성수지로 세상에 다시 나온 김학순 할머니의 손을 몇 번이고 쓰다 듬었다.
이번 수요집회에 김학순 할머니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함께 온 사람은 김운성, 김서경씨다. 이들은 '위안부 소녀상'으로 알려진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작가 부부다. 이번 김학순 할머니 조형물도 이 두 부부의 손으로 빚었다.
수요집회가 끝날 무렵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서경씨는 "김학순 할머니상은 조금 더 화가 나신 모습"이라면서 "소녀상은 당당하고 조용히 앉아있는 모습이지만 할머니는 눈을 부릅뜨시고 쳐다보시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아래는 김서경씨와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 작가 "진정한 사과라면 평화의 소녀상 일본에 세우겠다고 해야"
- 오늘 수요집회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조형물과 사진 찍는 어린 친구들이 많더라. 언제 어떻게 제작한 건가? "2014년 9월 즈음이었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 아베 총리에게) 정말 화가 많이 났다. (김학순 할머니 조형물의 기본 틀은) 경기도 고양시 여성사 박물관에 있다. 소녀상 대신 김학순 할머니를 형상화했다. 김학순 할머니 조형물에 비친 그림자는 소녀의 모습이다. 나머지 의미는 (평화의 소녀상과) 같다."
- 이번 한일 외교 합의안에는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도 거론되고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이번 합의 결과 중 가장 분노하시는 부분이기도 한데. "소녀상은 저희 손을 빌어 만들어지긴 했지만 온전히 저희 것은 아니다. 할머니들이 이어온 20여 년의 수요 집회가 없었다면 (소녀상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다. 할머니들의 수십년 고통이 없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거다. 몇몇 사람들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우리한테 의뢰해서 만든 거라고, 정대협 돈으로 만들어진 줄 안다. 아니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금에 동참해 세상에 나온 거다.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건 조형물을 철거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국민 자존심을 묵살하는 처사다. 다른 나라에 이런 사례가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이 제대로 사과하고 반성한다고 하면 저 소녀상을 '일본에 세우겠다'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 같이 보호하고 보전해야한다고 말하는 게 맞다. 부화뇌동, 아니 (철거하자고) 앞장서는 정부가 (우리는) 어이가 없는 거다. 도대체 왜그러는 건지 의심스러운 부분도 많고."
- 이번 한일 외교 합의 결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처음 수요집회를 시작할 땐 238분의 할머니가 함께 하셨다고 한다. 이제 46분만 남아계신다. 이름 못 올리신 수많은, 약 20만 명이라고 하던데 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이건 함께 분노하고 같이 공감해야 할 문제다.
(합의 결과를) 불가역이라고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피해자를 빼놓고 협상했고 (배상 등) 합의 결과를 제대로 도출하지 못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일이 될 수도 있고 내 딸의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여기서 해결이 안 되면 안 된다. 이 문제를 덮어버리면 후대에 다시 번복될 수 있다."
- 최근 위안부 항의 시위를 연 엄마부대봉사단의 대표가 자신의 딸이나 어머니가 같은 일을 당해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 거다"라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어떻게 그런 소릴 할까. 정말 그럴까? 더 분노해서 더 앞에 나올 것 같다. 그 분들은."
- 평화의 소녀상, 처음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했나."내가 당했더라면, 내 딸이 당했더라면. 그 생각에서 출발한 거다. 석 달간 작업하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런 부분도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기도하듯이 (작업) 했기 때문에 (시민과) 통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 위안부 피해자 문제, 왜 관심을 가져야할까."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세상 밖으로) 안 나오셨다면 밝혀지지 않았을 문제다. 전 세계에 (전쟁 중 일본군에) 당하신 분들, 28개국 정도 있는데 이렇게 '내가 위안부였다' 이야기한 분은 없었다.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진 곳도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걸 입막음하려는 일본도 어이없고 동조하는 한국도 어이없다. 독일은 (사과해야 할) 상황 상황마다 제대로 된 사과하지 않나. 제대로 기리고 오래 보전하면서 마음에 새기고. 그런 노력들이 이 땅에서도 함께 이뤄진다면 우리의 미래도 보장될 거다."
-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인가."(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는) 지역에서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연말, 연초라 이번엔 정말 쉬어보려고 했는데(웃음). 정말 나라에서 큰일을 많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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