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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교회 앞 사거리. (바탕지도는 1946년 미군정청이 제작한 지도임.)
 종교교회 앞 사거리. (바탕지도는 1946년 미군정청이 제작한 지도임.)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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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천의 물길이 흐르는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따라 200미터쯤 올라가면 작은 네거리가 나온다. 네거리 곳곳에 범상치 않는 이름을 가진 건물들이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물은 좌측에 지난 2004년에 건설된 18층짜리 오피스텔 건물로 그 명칭이 '용비어천家'이다. 최신 건물은 물론 기존 건물들 조차 자기 이름을 외래어로 바꾸는 경향이 강한 요즘 세태에 비하면 참으로 독특한 이름임에 틀림없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듯이 <용비어천가>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그 첫 시험으로 만들어진 한글문헌이며 악장(樂章)의 이름이다. 이곳 빌딩 명칭을 이리 거창하게 정한 것은 바로 이곳이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의 집 터이기 때문이다.

한글학자 주시경의 집 터에 건설된 빌딩, 훈민정음 창제 후 첫 시험으로 쓰여진 한글문헌 <용비어천가>를 빌딩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글학자 주시경의 집 터에 건설된 빌딩, 훈민정음 창제 후 첫 시험으로 쓰여진 한글문헌 <용비어천가>를 빌딩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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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 선생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대중화시키는 데 가장 앞장선 학자이다. 먼저 '한(큰, 많은, 넓은, 바른, 하나)'+'글'이라는 말도 그가 만든 명칭이다. 그러니 세종대왕은 '한글'이란 말을 몰랐고, 그는 훈민정음을 창제했을 뿐이며, 한글은 주시경이 만들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한글이 갑오개혁 때 비로소 공식적인 나라의 글자로 인정되었지만 15세기에 창제된 글자이기에 수 백 년이 지난 근대에 상용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주시경은 국어 음운 연구와 국어 문법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인물로 그야말로 황무지에서 국어학을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광화문 <한글학회> 입구에 설치된 주시경 선생 흉상. 이곳부터 북쪽으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까지 난 길이 '한글가온길'이다.
 광화문 <한글학회> 입구에 설치된 주시경 선생 흉상. 이곳부터 북쪽으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까지 난 길이 '한글가온길'이다.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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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 이후 후대에 이르러 한글의 창제 원리가 명확히 밝혀진 것은 1943년 간송 전형필에 의해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부터다. 하지만 주시경은 이 해례본이 발견되기도 전에 영어의 알파벳 원리를 이용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풀어내고 한글의 문법 체계를 세웠다. 따라서 우리는 한글을 생각할 때 세종대왕만을 생각하지만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쉽게 널리 쓸 수 있게 된 것은 주시경의 공로가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서울시장애인복지회, 누나가자꾸만져요' 어떻게 읽지?

참고로 한글은 본래 띄어쓰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국한문혼용체로 사용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한글의 대중화를 막는 커다란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예컨대 남편이 아내에게 "서울가서방을구하시오"라고 편지를 보냈다고 생각해 보자. 방(房)을 구하라는 것인지, 서방(書房)을 구하라는 것이지 헷갈릴 것이다.

안철수 신당 창당실무준비단은 8일 오후 서울 마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명을 '국민의당'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선정위원회는 "대한민국의 비전은 국민 속에 있기 때문에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 모든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이끄는 진정한 국민의 정당이 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표현하는 이름"이라고 당명 선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 안철수 신당, '국민의 당'으로 당명 확정 안철수 신당 창당실무준비단은 8일 오후 서울 마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명을 '국민의당'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선정위원회는 "대한민국의 비전은 국민 속에 있기 때문에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 모든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이끄는 진정한 국민의 정당이 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표현하는 이름"이라고 당명 선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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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창당한 안철수 의원의 신당조차 띄어쓰기를 안 하고 '국민의당'으로 당명을 정했다. 당명이 고유명사이니 합쳐서 써야 하는 것 같다. 물론 '국민(國民)의 당(黨)'이란 의미지만 붙여 쓰면 조사 '의'를 '정의당'처럼 '의(義)'자로 받아들이거나, '의당(宜當)하다'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참고로 '국민의 정부'는 띄어썼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독자들의 흥미를 위해 띄어쓰기로 문제가 되는 예를 더 들어 보면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서울시장애인복지회', '누나가자꾸만져요' 등이 더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았다면 현재처럼 대중화되지 못한 채 국한문 혼용체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띄어쓰기 전의 한글표기(좌)와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를 처음 사용한 문헌인 존 로스의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중) 그리고 띄어쓰기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독립신문>(우)
 띄어쓰기 전의 한글표기(좌)와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를 처음 사용한 문헌인 존 로스의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중) 그리고 띄어쓰기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독립신문>(우)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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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뜻밖에도 우리 한글의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사용한 문헌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877년 영국인 목사 존 로스가 쓴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이다. 그후 이러한 띄어쓰기를 본격화하며 대중화시킨 것은 주시경이 교정을 본 <독립신문>이고, 1933년 조선어학회는 띄어쓰기를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반영하였다.

지금 이곳에는 비록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그 어떠한 흔적도 없지만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있게 한 그의 공로를 생각하며 그가 이곳에서 살며 한글을 연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

한편 우리는 한글이 얼마나 뛰어난 언어임은 익히 잘 알고 있다. 언어연구학으로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언어학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 가운데 1위로 뽑은 것이 한글이다.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에서도 최고의 문자라는 평가를 하였다. 더욱이 유네스코는 문맹 퇴치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이나 단체에 1989년부터 매년 '세종대왕상'을 수여한다. 그만큼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글자임을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세계 유명인사들이 한글에 대하여 남긴 다음 말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 (소설가 펄벅)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 (영국 언어학자 제프리심슨)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 (영국학자 존맨)

하지만 이러한 칭찬은 우리 현실 속에서 1년 365일 가운데 딱 하루, 한글날(10월9일)뿐이다. 한글은 여전히 천대받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하다 못해 상품명에서조차 한글로 쓰면 값싸고 촌스러운 것으로, 외래어로 쓰면 비싸고 품위있는 것으로 변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인간 삶을 지배한다' 따라서 언어는 인간의 모든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다음과 같은 주시경 선생의 말을 되새겨야 할 듯싶다.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려지나니라." - <보중(보성중학) 친목 회보> 제1호(1910.6.10)

한 번쯤 걸어볼 만한 '한글가온길'

한글가온길, 2012년 이름을 얻은 길로 도로변 곳곳에 한글관련 조형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한글가온길, 2012년 이름을 얻은 길로 도로변 곳곳에 한글관련 조형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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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은 '가운데', '중심'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정부는 2012년 한글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는데 따라 위 사진 속의 약 1.8km의 길을 일명 '한글가온길'이라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이 길에 주시경 집터, 세종대왕동상, 한글학회 등 한글과 관련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한편 한글가온길 구간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이 한글가온길 북쪽으로 조선시대 한성부 북부 준수방에 속했던 통인동 137번지 일대(통인시장 남쪽이며, 참여연대 동쪽 지역)가 세종대왕 탄신지이다. 또 그 동쪽의 경복궁 안에는 한글 반포에 크게 기여한 '집현전'으로 쓰였던 '수정전'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글가온길 남쪽으로 중구 정동의 현 서울시립미술관 옆에는 순한글로 신문을 발행함으로써 한글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독립신문사 터(현 신아빌딩)가 위치해 있다.

이처럼 이 길 주변에는 한글과 관련된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곳이다. 한 번쯤 우리 한글을 생각하며 걸어볼 만한 길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한글창제의 주역은 집현전이 아니다

한글 창제는 과연 누가한 것일까? 세종대왕인가 집현전 학자들인가? 세종실록에는 세종대왕이 친히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上親制諺文二十八字…是謂訓民正音", <세종실록> 25년 12월.

실록에 세종대왕의 다른 업적에 대해서는 '임금이 직접 만들었다는 뜻'의 '상친제(上親制)'라는 표현이 없지만 훈민정음에 대해서 만큼은 이처럼 분명히 '상친제'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로써 중국의 한자를 거부하고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기에 공개적으로 할 수 없었다. 세종대왕 자신과 최측근 만의 비밀사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집현전은 '창제'에 공을 세운 것이 아니라 '편찬'에 공을 세운 것이다.

한편 후대학자들은 이것에 대하여 성현이나 주시경은 집현전의 도움으로 창제했다고 하며, 이기문은 세종대왕이 동국정운 같은 책을 펴낸 것으로 보아 이미 음운학과 언어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다며 세종대왕 창제론을 지지한다. 즉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창제 후 정음청에서 한글을 사용한 편찬사업에만 관여했다는 것이다. 한글창제에 반대했던 대표적 인물은 최만리이다. 그런데 그는 다름 아닌 집현전 부제학이었으며 그와 함께 반대상소를 올린 신석조, 김문, 정창손 등 7명 모두가 당시 집현전 최고위치에 있던 원로학자라는 것이다.



태그:#백운동천, #주시경, #한글가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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