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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12월 25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연합) 탈당을 정면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근거가 뚜렷하다. 새정치연합의 전 공동대표로서 안철수 의원은 당 운영에 관해 문재인 대표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싸울 수도 있지만, 정해진 절차에 따라 갈등을 해결해야지 탈당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당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월권이라고도 했다. 이것은 마치 선출된 대통령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하자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안희정 지사의 입장은 치열한 경쟁을 하되 패자는 승자에게, 소수파는 다수파에 승복하는 민주경쟁의 원칙을 지키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평가하건대, 절차적 정의를 옹호하는 안희정 지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절차적 정의의 기준 하나로 봐도 좋은가? 좀더 포괄적인 눈으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안철수는 관료가 아니다, 정치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선언하는 모습.
▲ 안철수 탈당 선언 "지금 야당엔 답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선언하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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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당과 국가는 다르다. 정당은 자발적 결사체로서, 가입과 탈퇴가 자유다. 국가의 경우, 탈당 같은 행위는 거의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국적을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정당은 원칙상 자유롭게 탈퇴할 수 있다. 따라서 안철수 의원의 탈당, 그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이유나 근거가 합당한가, 설득력이 있는가의 문제는 정당히 제기된다.

우선 분명히 할 점은 절차적 정의 또는 정당성은 민주사회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기본이며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점이다. 최소한이라는 것은 꼭 지켜져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절차적 정의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때로는 이것이 조직 구성원이 원하는 실질적 정의를 가로막는 수단이 될 수 있고, 조직을 장악한 집단의 패권유지를 위한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절차적 정당성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기준이 되기 힘들다. 따라서 안희정 지사의 비판은 옳지만, 패권정치의 실태를 어느 정도 고려했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좀더 균형 잡힌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의 정당은 국민과의 신뢰 유지를 위해 책임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통을 위한 마음이 열리고 민주주의가 꽃핀다. 그러나 패권정치는 이와 반대된다. 당권 세력이 책임져야 할 때 책임을 거부하거나 외부 또는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당권을 계속 독점하려 한다면, 그리고 이에 필요한 당 내부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당은 불가피하게 폐쇄적이 되고 독단에 빠지게 된다. 패권 유지를 위한 흑백논리가 지배하게 된다.

오늘의 제1야당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눈으로 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연 절차적 정의가 갈등 해결에 요구되는 유일하게 정당한 해법인가?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정당의 목표는 정권 창출에 있는 만큼 선거를 통한 정권 획득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당의 단결이 우선이라는 입장이 설득력이 있고 실용적으로 지혜롭다. 그렇지 않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의 패권 체질이 공중의 관심을 끌면서 지지 유권자가 대거 등을 돌리고 국민 신뢰가 추락하는 상태에서 당이 단합된 모습을 연출한다 하더라도 선거 승리가 무망하다는 판단이 객관성을 갖는다면 뜻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담긴 고뇌, 특히 절차적 정의와는 다른 차원의 실질적 정의의 뜻을 안희정 지사가 얼마나 숙고했는지 의문이다.

정치인은 관료가 아니다. 행동이 필요할 때 단호하게 행동하고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인의 고결한 덕목이다. 의도치 않았던 결과라고 발뺌을 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 의원은 오늘의 제1야당 체질 하에서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짧은 기간 자신이 공동대표를 한 시절의 체험과 그 뒤 문재인 대표 체제를 비교하면서 패권정치의 실태를 피부로 체감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을 혁파하지 않는 한 당의 미래가 없고, 선거 승리가 무망하다는 판단을 이른바 '낡은 진보 청산'의 테마로 공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낡은 진보 청산의 계기로 혁신전당대회를 요구했던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는 이 요구를 대표직 사퇴와 당권 도전으로 해석했고, 당 안에 추종 세력이 거의 없는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가 제안한 10대 혁신안을 전폭 수용하겠다고 하면서도 낡은 진보를 극복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듯한 발언을 했을 뿐 이를 수용할 어떤 의지도 끝까지 표명하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안 의원은 당에 남는 것보다 차라리 떠나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요,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문재인이 '낡은 진보 청산' 요구에 응답했더라면...

안철수 의원 탈당 후 휴식을 취하며 정국구상에 나섰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종걸 원내대표와 함께 선거구 획정 관련 담판회동을 위해 국회의장실로 향하고 있다.
▲ 돌아온 문재인 안철수 의원 탈당 후 휴식을 취하며 정국구상에 나섰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종걸 원내대표와 함께 선거구 획정 관련 담판회동을 위해 국회의장실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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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확인할 점은 절차적 정의 또는 정당성의 핵심 조건은 기회의 평등에 있다는 것이다. 평등한 기회를 봉쇄하는 방식의 절차적 정당성은 형식일 뿐 설득력이 없다. 기회의 평등을 말한다고 해서 당 내 세력 기반의 평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주류와 비주류, 다수파와 소수파 사이에는 당연히 세력의 차이가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다만 절차적 정당성을 확립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공평성의 원칙이다. 누구는 아무리 선거에서 지고 과오를 범해도 당권을 계속 장악하는데, 어떤 사람은 내부 압력에 밀려 퇴진을 강요 당한다면 공평성은 사라진다. 반대로 패권정치의 실상이 드러난다.

둘째, 절차적 정당성의 토대는 법이 아니고 자유로운 소통이다. 흔히 절차적 정당성을 준법 여부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민주헌법의 기초가 소통정의에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법에 의한 절차적 정의는 사실 거의 모든 권위주의, 독재국가에서도 발견된다. 오직 절차적 정당성이 자유로운 소통의 토대 위에서 작동할 때,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다.

이렇게 보면, 오늘의 제1야당은 어떤 처지에 있는가? 절차적 정당성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하지만 위에 제시한 두 가지 핵심조건이 결여되어 있다. 한 보기로, 문재인 대표가 지방 보궐선거 등에서 패했다고 해서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할 이유는 없다.

당내의 자유소통을 통해 비판을 듣고 해결책을 찾으면, 설사 이전의 공동대표가 비슷한 이유로 퇴진했다고 해서 문 대표도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당의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권세력은 자유소통을 통한 합의도출 대신 힘으로 밀어 부쳤고, 이를 통해 패권정치의 실상을 공개했다.

풀어 보자면, 절차적 정당성은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지만 당의 패권정치가 정당의 책임윤리, 공평성, 투명성, 소통정의 같은 실질적 정의를 가로막으면 심대한 딜레마가 야기된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은 절차적 정의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제1야당의 패권정치가 가로막는 실질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탈당에 대한 국민여론의 흐름을 보면 현 상황에서 국민 다수는 절차적 정의보다 실질적 정의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것은 곧 안철수 의원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오늘의 적대적 양당 체제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새로운 대안정당, 패권이 아닌 소통과 협력의 민주정당, 실사구시의 개혁노선, 위험에 가득 찬 시민 곁으로 다가가는 민생정치의 구현에 있음을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안철수 의원은 안희정 지사의 비판을 경청하고 그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 절차적 정의의 중요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제1야당의 패권정치로 절차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경쟁의 질서 확립을 위해 절차적 정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실질적 정의 구현이 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입장도 가능하다.

안희정 지사는 전자를 옹호한 반면, 안철수 의원은 후자의 길을 택했다. 당연히 후자는 불확실성이 더 크고 더 많은 시비를 불러온다. 경쟁질서에 승복하는 자기 절제 대신 뛰쳐나오는 결기를 보이기 때문에 고집쟁이, 독불장군 같은 이미지도 준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비록 탈당이 정치적 모범행위가 될 수는 없지만, 실질적 정의의 구현으로 실망하는 국민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그 길을 안철수 의원은 결연한 의지로 뚫고 개척해가야 한다. 이것이 그의 정치적 소명이라면 소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민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대학교 사회학 명예교수입니다.



태그:#안철수, #안희정, #한상진,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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