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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트위터'가 세상에 나온 지 9년째입니다. 최근 몇 년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에 밀려 사용자가 줄어들면서 '트위터 위기론'이 자주 거론되는데요. 그럼에도 누군가는 '트위터를 계속하겠다'고 말합니다. 트위터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요? 2015년의 끝에서 트위터를 다시 돌아보려 합니다. [편집자말]
옛날 옛적 먼 은하계에서, 그러니까 2006년 미국 한구석에서 '트위터'라는 '마이크로블로깅' 사이트가 탄생했다. 공개적으로 글을 올리고 축적하는 것이기에 블로그라는 규정을 하기는 했지만, '스마트폰' 이전 시대 당시 한창 피어오르던 휴대전화 단문메시지 문화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한 서비스였다.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글자 수를 140자로 제한해서 실제로 휴대전화로 올릴 수 있도록 했다. 휴대전화에서 단문 메시지를 미리 지정한 수신자들이 받을 수 있듯 트위터에서도 '팔로워'들에게 보낸 메시지가 차곡차곡 쌓이는 방식이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팔로잉'하는 사람들의 단문이 시간순으로 나열된 페이지를 화면으로 볼 수 있다.

개별 요소만 보면 블로그, 휴대전화 단문메시지, RSS리더 같은 기존 기술들이 이미 하던 기능이다. 하지만 짧게 재잘거리는 내용의 글이 일상적 소소함과 실시간에 가까운 반응 및 일목요연한 흐름으로 묶이자 마침내 큰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트위터'가 바로 그것이다.

정보가 폭발적으로 퍼지는 트위터 환경

"트위터에서 '팔로워'는 페이스북의 '친구'와 달리 공개된 내용의 '구독 개념'에 가깝기에 일방적으로 쉽게 맺는다."
 "트위터에서 '팔로워'는 페이스북의 '친구'와 달리 공개된 내용의 '구독 개념'에 가깝기에 일방적으로 쉽게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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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트위터가 유행한 것은 대략 2010년 무렵으로 꼽히곤 한다. 당시 '미투데이' 등 국내의 유사 서비스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음에도 트위터는 비교적 빠르게 정착에 성공했다.

당시 트위터는 간소화된 열린 서비스 방식을 취하면서, 연결과 타임라인화 이외의 대부분 기능은 사진 첨부부터 온갖 목록 정렬까지 모조리 외부 '서드파티' 서비스들이 알아서 제공하도록 장려했다. 그 틈을 타고 '트위터kr' 같은 한국어화 도움 서비스도 등장했다. 소설가 이외수 등 여러 인기인과 '어떤 내밀한 연결의 끈을 맺는 듯한' 느낌 속에 점점 많은 사람이 가입했다.

많은 이들은 트위터에서 더 수평적이고 더 폭발적인 '어떤 소통의 공간'을 발견하고자 했다. 필자 또한 기본적으로는 신중론을 견지하면서도 트위터가 쓰임에 따라서는 "인터넷의 오랜 약속"이 될 수 있다고 당시 역설했다.

미디어로서 트위터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을 압축하자면, 첫 번째로 자신이 보고 싶은 방식의 네트워크를 꾸리기가 무척 쉽다는 것이다. 트위터에서 '팔로워'는 페이스북의 '친구'와 달리 '공개된 내용을 구독하는' 개념에 가까워서 일방적으로 쉽게 맺을 수 있다. 초창기 상당수 한국 유저들이 아무리 '맞팔 문화'를 중시했다고 한들, 시스템은 늘 그랬다.

두 번째 특징은 짧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휴대전화와 연동하기 위한 기술적 배려였으나, 스마트폰을 통해 더 긴 메시지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해진 이후에도 트위터의 가장 강한 개성으로 남았다.

140자라는 제한은 한편으로는 그만큼 생각을 압축하고 정제하도록 강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충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단말마를 던지도록 하는 양면성을 지녔다. 하지만 표현적 요인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은 바로 하나의 글이 140자 이하라서, 한 번에 들어오는 글 꼭지의 개수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각각의 게시글이 짧기 때문에,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최대한 많은 실시간 정보를 훑는 것에 최적화됐다.

세 번째는 트위터가 사적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사실상 '완전히 공개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런 요소는 여러 소셜 서비스가 크거나 작게 가지고 있지만, 트위터에서는 특히 선명하다.

당장 내용물에 대한 공개 등급이 여전히 계정 전체를 보호 운영하든지 완전공개하든지 두 가지뿐이다. 그래서 사용자는 자신에게 편한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을 손쉽게 모아낸 본인의 타임라인을 감상하며, 친근한 네트워크 안에서 사적인 생각을 편하게 펼쳐놓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IT업계에 널리 알려졌듯 트위터의 성장은 일정한 고착 상태에 도달했다. 그 중 특히 한국에서는 지난 2013년 무렵부터 완연하게 기세가 식었다고 지적되었다(관련 기사 : 한국인 脫트위터…"피곤해 트위터"). 서비스 초반의 폭발적 기대도 고작 몇 년 만의 정체도, 앞서 꼽은 트위터 특유의 매체 개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첫째로 네트워크를 빠르게 꾸릴 수 있다는 것은, 다양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축적하고 의견을 제시할 때 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안에 대한 전문적이고 다각적인 견해를 모아서 한꺼번에 분류하며 공부하기에 좋다.

둘째로 간결하고 다양한 정보의 모음이다 보니, 네트워크의 속성과 잘 맞아떨어지면 폭발적으로 빠르고 넓은 유통이 가능하다. 글을 발견하고 자기 의견을 붙이고 다시 공유하는 과정이 대단히 쉽기 때문이다.

나아가 셋째, 사적 느낌의 편안함과 공적인 공개 규모 사이에서, 온갖 창조적인 발상을 자기검열을 크게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선보일 수 있다.

사이버 '조리돌림'의 폐해, 때론 '유리벽 화장실' 되기도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혼동은, 발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는 식자들이 황당한 말들을 마치 대화하듯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펼쳐버리는 폐단을 가져왔다. 광장 한복판에 '사방이 유리로 된 화장실'이 있을 때, 변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바지를 내려버리는 셈이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혼동은, 발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는 식자들이 황당한 말들을 마치 대화하듯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펼쳐버리는 폐단을 가져왔다. 광장 한복판에 '사방이 유리로 된 화장실'이 있을 때, 변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바지를 내려버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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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장단점은 비곗살이 주는 고소함과 비만 유발만큼이나 밀접하다. 네트워크를 빠르고 자유롭게 꾸리는 것은, 자기 친화적이고 견고한 내부 그룹을 만들기에도 편리하다.

짧고 공감 가는 실시간 멘트로 편안하게 서로 북돋워 주는 분위기에서, 민망한 진영논리가 싹트는 것은 순식간이다. 특히 공감을 빠르게 모아내서 집단적 고양감을 느끼는 지름길 가운데 하나는 '단죄 실현의 정의감'인데, 이는 특정인을 극단적으로 깔아뭉개는 험상궂은 조리돌림으로 이어지기 쉽다.

'사이버-집단괴롭힘'은 트위터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트위터에서 좀 더 대규모로 생동감 넘치게 이뤄질 수 있는 셈이다(당연하게도 한국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어서, <뉴욕타임스> 등에서도 이에 관해 다뤄진 바 있다).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토론의 소통형태에서, 짧고 다양한 정보의 홍수는 논의의 맥락을 단절시키는 약점을 낳는다. 특정 사안에 대해 밝혀진 바가 어떤 식으로 축적되었는지, 누가 어느 시점에 어떤 맥락에서 특정한 발언을 남겼는지, 그 후 어떻게 입장이 바뀌었는지 등을 일일이 다시 모아낸다는 것은 트위터에서 매우 어렵다. 트위터가 점차 '답글의 연결' 기능을 개선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실시간 흐름에 최적화됐을 뿐 다시 지난 게시글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혼동은, 어느 정도 발언의 영향력이 있는 식자들이 황당한 말들을 마치 대화하듯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펼쳐버리는 폐단을 가져왔다. 광장 한복판에 '사방이 유리로 된 화장실'이 있을 때, 변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바지를 내려버리는 꼴이다.

그런 '트위터 망언 설화'의 예는 너무 많이 발생해서 일일이 꼽기도 민망한데, 첫 번째 단점으로 꼽았던 '네트워크의 진영화'와 맞물리면 논란을 일으키고, '자기 동네'에서 위로받으며 더욱 의견이 극단화되는 악순환으로 빠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리고 트위터에선 그 모든 과정이 민망하게도 모든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안타깝게도 정의감만 내세운 공격적 조리돌림, 파편화된 정보 과잉과 맥락 왜곡, 넘치는 설화 같은 단점들은 이론적 상상이 아니다. 이는 지난 수년간 트위터에 피로를 느끼고 자신의 주요 소셜 서비스 활동 공간을 페이스북 등으로 '갈아탄'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된 내용이다.

그런 것에 피로를 느낄 정도로 비교적 '부드러운 멘탈'의 사용자들이 트위터를 떠날수록, 더욱 강력한 이들만 남는다. 이는 트위터상의 담론 환경이 점점 '마경'이 될 위험이 크다는 문제도 낳는다.

'그런데도, 아직 트위터'인 이유

그럼에도 여전히 트위터라는 열린 공간이 지니는 장점에 기대를 건다면, 트위터에서는 '광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것이 그래도 꽤 어렵다'는 특징 덕분이다. 게시판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의 정치사회갤러리, 블로그 포털 이글루스의 시사밸리 등 의견 극단화와 사용 쇠퇴의 길을 걸었던 예전 사례들과 다른 지점이다.

트위터에서 사용자들이 좀 더 현명하게 타임라인을 짜면, 자신이 접하는 전문성의 깊이와 의견의 폭을 계속 넓혀가는 것도 가능하다. '짧은 정보의 홍수' 문제는 전문적 '큐레이션' 실력을 보여주는 매체와 도구들을 통해서 계속 극복해 가야 할 부분이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떠나거나 사용을 줄이고 있다고 한들, 여전히 트위터는 엄청난 실시간 정보의 끝없는 흐름이자 적절한 정보가 빠르고 거대하게 퍼질 수 있는 유동적 공간이다. 매체가 널리 보급된 성숙기에 걸맞게, 각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더 정교하게 활용해 나아가는 나름의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관련 기사 : "트위터야, 제발 망하지마" 그들이 트위터를 못 떠나는 이유]
[관련 기사 : 펀딩 한 달 만에 600만원, 트잉여가 만든 트위터 앱]


태그:#트위터, #조리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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