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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헌법재판관들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헌법재판관들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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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무개씨는 2011년 11월 30일 서울시 성북구청을 찾아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요청했다. 포털사이트 등에서 개인정보가 불법 유출되는 바람에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구청은 그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민등록법상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23일 헌법재판소는 강씨 등 개인정보 유출피해자들이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을 길을 열어줬다. 주민등록번호 변경 규정을 두지 않은 주민등록법 7조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박한철·이정미·김이수·안창호·강일원·서기석 재판관은 이 조항 전체가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제도가 아예 없는 상황인 만큼 국회에서 2017년 12월 31일까지 현행 법률을 개정하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때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조항은 2018년 1월 1일부터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한다.

유출된 주민등록번호, 그냥 써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

정부는 1968년 주민등록법 시행령을 개정, 모든 국민에게 개인별 번호를 부여하기로 한다. 이후 몇 차례 법이 바뀌면서 생년월일과 주소 등을 바탕으로 저마다 13자리의 고유번호를 갖는 현재의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갖춰진다.

주민등록번호는 단순한 개인식별만 하지 않는다. 공공기관에서 행정 처리를 할 때는 물론, 물론 각종 상거래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쓰이는 도구다. 강씨 등은 이 점을 감안할 때 주민등록번호는 '내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질지'를 스스로 정해야 하는 기본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11월 12일 공개변론에서 행정자치부는 주민등록법에 명확한 번호 변경 금지 조항이 없는 점 등을 볼 때 이 사안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또 대체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하면 혼란을 낳을 수 있다고 맞섰다.

오랜 고민 끝에 23일 헌재는 청구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개인 고유 번호'라는 주민등록번호의 특성과 활용 범위 등을 볼 때 국가는 주민등록번호를 철저히 관리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제도를 정비·보완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주민등록번호 불법유출 또는 오·남용은 사생활은 물론 생명과 신체, 재산을 침해할 소지가 큰 데다 그 피해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점도 고려했다.

헌재는 "비록 국가가 개인정보보호법 등으로 주민등록번호 유출 등을 예방한다고는 하나 이미 주민등록번호 유출 피해 등에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조치만으로는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호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당장 피해 입은 사람들마저 고려하지 않고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원천봉쇄하는 것의 공익에 비해 그들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이익이 결코 적지 않다고 봤다.

세 명의 반대... "심판 대상 잘못 정해", "사회적 합의 대상"

이진성·김창종·조용호 재판관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의 생각은 조금씩 결이 달랐다. 

이진성 재판관은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가 필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그는 다수의견이 심판 대상을 잘못 정했다고 비판했다. 청구인들의 주장은 주민등록번호 부여 방식에 관한 것일 뿐이므로 주민등록번호 제도 관련 내용은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한 7조 4항에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얘기였다.

김창종·조용호 재판관은 아예 생각이 달랐다. 이들은 현행법이 합헌이라고 봤다. 두 재판관은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하면 '개인식별'이라는 주요 기능이 약해진다고 우려했다. 또 주민등록번호 제도로 범죄 예방, 행정서비스·사회복지 제공 등에 효과를 거둔 점, 국가 안보 차원에서 국민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할 필요성이 큰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주민등록번호 변경 허용 여부는 헌재 판단이 아닌 사회적 합의 대상이란 말도 덧붙였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주민등록번호,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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