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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지난해 12월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통합진보당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해산 결정 난 통합진보당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지난해 12월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통합진보당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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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

'벌써 1년이나 됐나?'라는 생각이 떠오른 오늘, 거짓말처럼 1년 전 그날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빛이 비슷하다. 추위 탓인지 설움 때문이었는지 한껏 움츠러든 가슴도, 8대 1의 압도적 숫자에 짓눌린 그 날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기시감에 정신이 번쩍 들 지경이다. 12월 19일, 오늘은 법의 이름으로 10만여 명의 시민들이 당적들 두고 있던 하나의 정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은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2년 되는 날이었다. 그날, '통합진보당'이라는 단어 조합도, 하얀 바탕에 보라색 3선이 휘날리던 깃발도, 심지어 지역구로 당선된 국회의원의 가슴에 붙은 배지마저 헌법 밖으로 밀려났다. 10만여 명의 당원이 품고 있던 다른 미래를 향한 꿈이 강제로 해산당한 것은 물론이었다. 현대 계동사옥 건너편에 모여있던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침묵을 지켰고, 안국역 주변에 모여 있던 군복차림의 수구 단체 회원들은 환호를 질렀다. '종북척결!' 승리의 함성이었다.  

해산 절차는 전광석화 같았다. 해산과 동시에 국회의원부터 지방의원까지 초법적인 의원직 박탈이 강행되었고, 당의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었다. 지도부는 사실상 정치활동을 금지당했으며 당직자들은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해산 당일, 그리고 얼마간 진보당 당원들은 거리에서 울분을 쏟아내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시민사회가 일제히 해산 결정을 규탄하고 나섰지만, 이 정권하에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당직자의 손으로 해산한 통합진보당

2014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한국청년연대 소속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4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한국청년연대 소속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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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해산 업무는 선관위에서도 처음 해보는 일인 데다가 관련 법률도 미비해 그들조차 어쩔 줄 몰라 했다.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조차 해산 판결 이후의 절차에 대한 안내서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청산업무를 위해 남겨진 몇 몇 당직자들이 능력껏 제 손으로 해산과 청산 등기를 밟았다. 어떤 당직자는 '국민승리21' 창당 업무를 하고 이제 와 진보당 해산을 제 손으로 해야 했다. 잔인한 일이었다. 보수는 없었다. 당을 해산시켜놓고 해산당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법적 해산 절차를 애써 밟으라니 죽은 사람에게 세금 걷는 꼴이었다.

당장 생계 문제에 부딪힌 당직자들은 얼마간 실업급여로 생활해야 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러 노동청에 가면 실업사유에 '폐업'을 써서 제출해야 했는데,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폐업된 사업장의 사업주가 이정희 당대표였으니 폐업으로 실직한 다른 노동자들처럼 사업주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담창구에 가서 서류를 내밀면 담당자가 '이전 직장'을 보곤 고개를 몇 번이나 들어서 쳐다보곤 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이 있는 것 같았지만, 전문가답게 다시 삼키는 듯했다. 가끔 집회 현장에서 당직자들을 만나면 각자가 다른 장소에서 겪은 동일한 에피소드에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이어지는 대화는 언제나 '생계 대책은 있니?'라는 질문이었다.

굶어죽었다는 얘기는 못 들었으니 다들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해산 판결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음식 장사를 할까?'하던 선배는 최근 정말로 자연주의 식당을 개업했다(관련 기사: 내 직장 빼앗은 박근혜 우리 없이 뭐 먹고 살 건가). 당직자였던 분들이 한명 한명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두 알 수도 없지만 알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은 말할 수 없다. '정치자금법'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죄목으로 여전히 옛 진보당 지도부의 목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깟 판결봉으로 그들의 꿈을 해산 할 수도 없거니와 1년이 지난 지금도 해산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전체적으로 보면 기운이 그렇다.

압수수색과 재판으로 가득 찬 1년

이정희 옛 통합진보당 대표가 지난 2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재심 청구 추진'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정희 옛 통합진보당 대표가 지난 2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재심 청구 추진'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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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해산 이후,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 대대적인 국가보안법 사건을 예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하고 싶어 했지만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정당해산의 법리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방증이었다. 한껏 압수수색을 하더니 어느덧 정치자금법 혐의로 지도부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당의 회계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선관위의 지적이 없었기 때문에 예상 못한 일이었다.

검찰은 거의 모든 당직자들의 통장 거래 내역을 열람했다. 은행에서 등기가 와서 열어보면 '6개월 전에 열람했다'는 뒤늦은 통보가 들어있었다. 해산되고 반년이나 지난 시점에 최고위원들의 자택을 압수수색 했다. 아무것도 없을 것이 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착실하게 보도해주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던 김승교 변호사도 포함되었다. 인권변호사이자 통합진보당의 마지막 최고위원이었던 김승교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채 그렇게 올 8월 말에 별세했다.

당 강제해산으로 의원직을 잃은 5명의 국회의원은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명문규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원직까지 박탈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행정법원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되었고 항소를 진행 중이다.

좋지 않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UNHRC)가 통합진보당 해산에 우려를 나타냈고, 법원행정처는 내부문건을 통해 헌재의 의원직 상실 판결이 월권이라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민변에서는 올해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정당해산 판결을 꼽았다.

가장 큰 사건은 비례직 지방의원들의 복권이다. 헌재가 지방의원직 상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는데 중선관위가 이를 박탈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있었고, 이에 따라 전북도의회의 이현숙 의원을 필두로 의정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옛 진보당 당원들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더욱 심화되는 박근혜 정부의 파시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 은신 25일 만에 퇴거해 지난 10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자진출두하고 있다. 조계사를 나온 한 위원장은 경찰 호송차를 타고 남대문경찰서에 도착했다.
▲ 남대문서 도착한 한상균 위원장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 은신 25일 만에 퇴거해 지난 10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자진출두하고 있다. 조계사를 나온 한 위원장은 경찰 호송차를 타고 남대문경찰서에 도착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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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음모' '정당해산'에 이어서 이제 '소요죄'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 지난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소요죄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조계사에 있을 때부터 한참을 들먹이다 막상 구속영장에는 포함시키지 못했던 죄목인데, 구속 이후에 검찰이 다시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소요죄는 재판에 가서도 결국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과거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던 집회에도 적용되지 않았던 죄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계속 소요죄를 들먹이는 것일까? 바로 '낙인찍기' 효과를 노린 것이다. 최종적으로 내란음모 혐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석기 전 의원에게 찍힌 '내란음모'라는 낙인이 지워지지 않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노동운동에 대한 낙인찍기를 통한 적대화, 그리고 배제와 혐오는 파시즘의 원조인 이탈리아에서부터 공식화된 파시즘의 기본원리이다. 파시즘은 비판과 저항세력에 대한 극단적 혐오를 통해 권력에 일체화할 것을 강요한다. '적들에 맞선 비상사태 선포와 무조건적 단결' 그것이야 말로 파시즘의 숭고한 슬로건인 것이다.

이 숭고함을 따라 지금껏 박근혜 정부는 사문화된 법 조항을 꺼내 사회의 안정을 스스로 중단시켜왔다. 법을 활용해 적을 만들고 이를 통해 비상사태임을 우회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이견은 묵살되고 단결만이 강요된다. 전형적인 파시즘의 작동방식이다. 이번에는 한상균 위원장과 민주노총이 제물로 바쳐졌다.

최근에 박근혜는 노동 5법등의 직권상정을 압박하며 '국가비상사태'라는 허구적 상황을 조성해 권력으로의 절대적 단결을 강요하고 있는데, 삼권 분립을 짓밟는 태도 그 자체로도 파시즘의 심각한 징표이지만 권력자의 말 한마디로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태도는 전격적인 파쇼정권의 모습으로 이 정권이 매우 우려스러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향한 꿈은 해산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은 해산되었고 유사정당 창당조차 금지되었다. 한미FTA에 반대해 국회에서 최루탄을 뿌리고도 재선이 되고,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위원이 청와대 앞 분수대에 앉아 단식농성을 벌이며, 국회의원이나 되는 사람이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천막에서 같이 잠을 자는 투박한 일들은 이 사회에 얼마간 없을 것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전쟁위기를 맞아 미국도, 한국도, 북한도 모두 중단하라고 호소하는 당 대표가 있는 정당도 얼마간 다시 없을 것이다.

그렇다. '그 통합진보당'은 한국사회에 다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2014년 12월 19일에 벌어진 정당해산 결정의 부당함을 우리 사회가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한, 진보당 당원이자 시민이었던 10만 명이 꾸었던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드는 꿈은 언젠가 반드시 사회적으로 복권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잊지 말고 기억하자. 정당해산을 결정한 8명의 헌법재판관. 서기석, 안창호, 이진성, 이정미, 박한철, 김창종, 강일원, 조용호.
그리고 단 한 명의 반대자.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2014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선고에서 '정당 해산'을 선고하고 있다.
▲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2014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선고에서 '정당 해산'을 선고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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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통합진보당, #정당해산, #파시즘,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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