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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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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아이들, 천막 위로 쏟아지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산 꼭대기에 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 떠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세월호 인양 준비과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깜깜한 밤하늘 별이 된 아이들이 아버지들과 맞닿기 위해 천막 위로 쏟아지는 듯 하다. ISO 640, f11로 100분 동안 30초마다 촬영한 사진을 합성했다. ⓒ 남소연
"이렇게 가까운데, 나오라고 한 마디만 했으면…."

손에 닿을 것만 같다. 600여 일 전, 탑승자 476명의 사연을 싣고 유유히 달리던 세월호. 그 세월호가 하염없이 가라앉았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섬, 진도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영석 아빠' 오병환(44, 단원고 고 오영석군 아버지)씨는 동거차도 꼭대기에 오를 때면 헤엄이라도 쳐 사고 현장에 닿고 싶은 마음이다.

눈 앞의 깎아지는 듯한 벼랑, 영석 아빠를 비롯한 세월호 가족들은 그 벼랑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잠을 청한다.

그들에게도 일상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그들이 특별한 존재로 인식될수록, 그들은 술을 마셔도 안 되는, 깔깔 웃어도 안 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도 안 되는, 그런 존재로 내몰린다. 그들이 벼랑 끝에 있다고 해서 우리가 더 벼랑으로 몰아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들의 일상 속에 조금 다른 일상이 있다는 걸, 혹은 우리에겐 특별할 수 있지만 그들에겐 그게 일상이라는 걸 이해하면 된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 섬에 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 떠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세월호 인양 준비과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영석 아빠 오병환씨가 세월호가 아직 있는 그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까까지른 절벽 위에 섰다. ⓒ 남소연
"산에 올라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내가 여기서 뭐하는 짓거리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면 울컥하죠."

영석 아빠를 괴롭히는 이러한 생각을, 그 조금 다른 일상을, 우리는 기억하면 된다. 그 자체로 특별했지만, 어쩌면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사 후 안전 사회를 외쳤지만, 실제로 진척된 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믿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아직 더 들춰낼 것이 많지만, 세월호를 무리하게 증축하고, 세월호에 과도하게 짐을 싣도록 한 이 단편적인 사실은 국가 시스템 때문에 우리의 일상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제 좀 그만하라"는 말 좀 그만하라. 세월호 가족들에겐 이미 현재의 삶이 일상이다. 일상을 포기하라는 건, 살지 말라는 말과 똑같지 않나. 

하루에 배 한 대, 2시간 30분 달려야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 600일을 즈음해 진도로 출발한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8일 오전 팽목항을 출발해 배를 타고 동거차도에 도착했다. 그곳에 아직 있는 세월호와 그 섬에서 첫 겨울을 맞고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아버지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 남소연
세월호 참사 602일째 되는 날인 지난 8일, <오마이뉴스>는 참사 현장과 가장 가까운 섬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아버지들을 만나기 위해 동거차도를 찾았다. 생중계 장비를 짊어진 채 이날 오전 7시 30분 진도 팽목항에 미리 도착, 오전 9시 30분 배에 올랐다. 팽목항-동거차도를 오가는 배는 하루에 한 대 뿐이다.

세월호 가족들은 동거차도 가장 높은 능선에 천막을 쳐 놓고 순서를 정해 '보초'를 서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세월호 인양 작업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이날 낮 12시께 동거차도 선착장에 발을 내리니, 저 멀리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오마이뉴스> 마중 나왔어요."

영석 아빠 오병환씨와 소희 아빠 박윤수(단원고 생존자 박소희양 아버지)씨, 그리고 사고 이후 꾸준히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해 온 시민 최창덕(남, 52)씨가 웃음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천막에서 선착장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약 30분. "여기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세 아버지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 섬에 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 떠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세월호 인양 준비과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마중나온 영석 아빠 오병환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남소연
날씨는 생각보다 좋았다. 섬 마을 앞바다에 갈매기 수백마리가 앉아 울고 있었다. 영석 아빠는 "<오마이뉴스> 생중계팀이 온다고 하니 갈매기들이 다 모였나 봅니다"라며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켰다. 왼쪽 다리가 좋지 않은 영석 아빠에게 지팡이는 천막 생활의 벗이다. <오마이뉴스>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여기 오면 양치질 하고, 물티슈로 얼굴 닦는 게 전부인데…. 아, 머리 떡져서 방송 출연 어떻게 하나"라며 농담을 던졌다.

따뜻한 마을 주민들 "아직도 눈물이..."

"하이고, 하이고, 내려와서 자고 올라가랑께."

아버지들을 발견한 마을 할머니가 연신 손짓을 했다. 영석 아빠는 "할머니가 매번 '자고 가라', '밥 먹고 가라' 말씀하시는데 죄송해서 그럴 수가 없어요"라고 기자에게 귀띔했다.

차부심(76) 할머니는 자신의 집 한 켠을 세월호 가족들을 위한 '베이스 캠프'로 내놓았다. 차 할머니의 집은 세월호 가족들에게 따뜻한 휴식처이자, 든든한 보급처이다. 방 한 켠에는 산 위 천막까지 한 번에 가져갈 수 없는 생필품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렇게 집에서 자고 가라고, 자고 가라고 해도 안 내려와라. 오메메, 새끼들 잃어블고 저렇게 또 고생하믄서 떨고 있을까, 그런 생각하믄 짠해 죽겄어. 아그들 같으믄 내가 끌고 내려오기라도 한디, 저리 어글씬(단단한) 사람들을 어찌 데꼬 내려오겄어."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못떠나고 있는 그 섬.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만난 동거차도 주민 소온례 할머니는 "산 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을 볼 때면 눈물이 난다"고 귀띔했다. ⓒ 남소연
마을 정자에 앉아 있던 소온례(86) 할머니도 "아직도 저 냥반들 보믄 눈물부터 나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자식이나 넘(남)의 자식이나 귀한 건 똑같제, 안 그런가? 내 자식 안타깝대끼, 넘의 자식도 안타까운거제"라고 말한 소 할머니는 "내가 제대로 못 걸어다닌께 (천막이 있는 산 위에) 한 번을 못 올라가봤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날 차 할머니는 기어코 아버지들과 <오마이뉴스> 취재진을 집으로 불러들여 밥을 먹였다. "오메, 차린 게 없어서 어찌까"라는 차 할머니의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푸짐한 밥상'에 앉아 밥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노란리본 따라 산 오르니...

배를 채운 영석 아빠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불쑥 영상통화 화면을 건넸다. 영석 엄마이자, 아내인 권미화씨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있는 영석 엄마는 환자복을 입은 채 방긋 웃음을 내보였다. 

"고맙습니다. 저도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여유가 없네요."

"그곳 어민 분들에게도 꼭 고맙다는 말씀 전해주세요"라고 말을 이어가던 영석 엄마는 손으로 눈물을 쓱쓱 닦았다. 어색한 듯, 영석 아빠는 휴대폰에 대고 "울지 말고, 어서 쉬어"라고 말하며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끊은 그는 "엄마들이 많이 힘들어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 섬에 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 떠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세월호 인양 준비과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마중나온 영석 아빠 오병환씨와 소희 아빠 박윤수씨가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지게로 옮기고 있다. ⓒ 남소연
집 밖으로 나간 영석 아빠는 어깨에 지게를 짊어졌다. 지게 위엔 정수기용 물통이 얹혀 있었다. 소희 아빠와 최창덕씨도 천막 생활을 위한 생필품을 바리바리 챙겼다.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 청취자들이 전해준 선물을 박스에 한 가득 담아 나눠 들었다. 과메기, 인삼 제품, 생식 등을 본 아버지들은 "경기도 안 좋고 다들 힘드신데, 이렇게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거듭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자, 이제 산길 시작됩니다. 노란리본 따라 올라오세요."

널찍했던 마을길이 좁고 가파른 산길로 바뀌었다. 사고 현장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을 찾다보니, 아버지들은 처음 천막을 차릴 때 우거진 나무를 낫으로 쳐 가며 없던 길을 만들었다. 길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길을 따라 천막까지 가는 방향을 알리는 노란리본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경사가 급한 곳은 오를 때 손에 땅을 짚어야 할 정도였다. 아버지들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척척 발을 내디뎠지만, <오마이뉴스> 취재진 입에선 '아이고'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두텁게 껴입은 외투 안에 열기가 쌓였다. 카메라를 짊어진 방송팀 기자는 뻘뻘 땀을 쏟아냈다. 가끔 불어오던 차디찬 바닷바람이 이때만큼은 고마웠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산 꼭대기에 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 떠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세월호 인양 준비과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이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그렇게 30여 분 쯤 올랐을까(체감 시간은 1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덧 능선에 발을 내디뎠다. 저 앞에 푸른 천막으로 덮인 세월호 가족들의 천막이 눈에 띄었다. 한 켠엔 즉석밥 포장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 <장윤선의 팟짱> 바로가기

[현장①] "아그들을 못 보듬고 내려와서..."
[현장②] "전기장판 2개, 이렇게 가까운데..."
[현장③] 상하이 샐비지 "우리 지금 일해요"

*[동거차도 르포 ②]로 이어집니다(바로가기).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세월호, #참사, #동거차도,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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