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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9일 오후 4시 10분]

 8일 오후 청주시 서원구 충북대학교 법학전대학원에서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생 219명이 제출한 자퇴서를 행정실 관계자가 책상 위에 정리하고 있다.
 8일 오후 청주시 서원구 충북대학교 법학전대학원에서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생 219명이 제출한 자퇴서를 행정실 관계자가 책상 위에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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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행하는 수저계급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로스쿨생이니 금수저? 아니 흙수저인가? 아닙니다. 저는 아예 수저도 되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올해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한 박아무개(31)씨는 8일 학생회와 함께 학교 측에 자퇴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어느 특별전형 입학생의 호소문'을 냈다. 그는 '금수저' 굴레에 씌워져 감내하기 힘들 만큼 부당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자신이 어려운 형편에도 사법시험이 아닌 로스쿨을 택한 사연을 밝혔다.

법무부의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 방침에 반발하며 지난 4일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들이 자퇴서를 제출한 데 이어 8일 전국 20여 개 로스쿨 재학생들이 '집단 자퇴'를 신청했다. 인하대 로스쿨도 그 중 하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박씨는 중·고등학교 시절 집에 밥이 없어 수저를 거의 쓰지 않았다고 동기들에게 얘기하면 믿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기들에게 박씨는 "정부 쌀을 이웃에 팔아 다른 생활비에 보태 쓰고, 교회 급식소에서 밥을 먹었다"고 말한다. 초·중·고 시절 신문·짜장면 배달 등 항상 무언가를 날라야 했다는 박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를 졸업해 전액 장학금을 받는 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대학을 졸업할 즈음 사법시험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년간의 수험생활 동안 학원비·생활비·책값 등을 치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그가 선택한 길은 전액 장학금 지원과 기숙사까지 제공해 주는 인하대 로스쿨의 특별전형. 인하대 로스쿨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박씨는 일을 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박씨는 사법시험에 존재한다고 믿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타는 로스쿨 학생들이 더욱 많다고 주장한다.

박씨의 간절한 호소문에 인하대 로스쿨 153명의 재학생들이 힘을 보탰다. 8일 인하로스쿨 학생회는 자퇴서를 학교 측에 제출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학생회는 "로스쿨은 입학정원의 5∼7.5%를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기회를 주고, 이들을 위한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특히 인하대 로스쿨은 '가계소득'을 기준으로 한 장학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취약계층 원우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철저히 흙수저를 배려하고자 한 로스쿨이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씨의 호소문 전문이다.

<어느 특별전형 입학생의 호소문>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학년 재학생 박모군의 이야기

저는 수저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정부에서 정한 소득 분위 1분위입니다. 만약 더 높은 등급이 있다면 거기에 해당될 겁입니다. 저희 집보다 가난한 집은 정부가 정한 등급에 의하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금수저란 소리를 들으면서 말입니다.

근래에 유행하는 수저계급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말처럼 금수저인가? 아니면 그냥 수저인가? 혹은 플라스틱 아니 흙수저인가?'

아닙니다. 저는 아예 수저도 아닙니다.

비유가 아닌 진짜 수저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저는 저희 집 수저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학교 급식이 아니면 집에서 먹을 밥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먹을 밥이 없었다는 말을 사람들은 잘 믿지 못하는데, 정부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은 정부 지원 쌀은 이웃에게 팔아 다른 생활비에 보태 쓰고 교회 급식소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다른 기초생활수급자 세대들도 비슷한 경험들을 해봤을 겁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짜장면 배달을 했습니다. 배달의 종류만 바뀌었지 항상 무언가를 날라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전액 장학금 덕에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생활비와 친지에게 빌린 채무를 갚기 위해 3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면서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수급비로 충분히 살 수 있지 않느냐 묻는데 그 돈은 그대로 생활비로만 쓸 수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가족에게 빌린 돈은 갚아야 하니까요.

졸업 즈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그 중에서 사법시험은 어떨까 하고 꿈꿔봤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수 년간 수험 생활을 한다는 것은. 학원을 다닌다는 것 부터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학원비와 생활비, 책값 등을 한 달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아르바이트로 벌면서 공부를 해야한다니요. 또 그렇게 해서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기약도 없습니다. 응시자의 3% 이하가 붙는 시험이니까요.

법학전문대학원의 특별전형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전액장학금을 지원하고 기숙사비까지 주는 곳도 있었습니다. 학생 신분이 유지되기에 장학재단 생활비 대출이 한 학기 200만 원 가능하고 입학하면서 마이너스 통장 개설이 가능합니다.

입학하고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일하지 않으며 공부를 해봤습니다. 공부만 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이구나 라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예전에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란 책을 쓰셨던 장승수 변호사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시면서 5년을 공부한 끝에 서울대에 수석입학 하신 것이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입학 후 7년 뒤 사법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변호사가 되신 것은 서른 중반 즈음 되시겠네요. 입학 후에는 인세로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큰 문제없이 공부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 분이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사법시험으로 변호사가 되기를 꿈꿨다면 수능 공부 때와 마찬가지로 일용직 일을 하며 공부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 수험기간을 예측해본다면, 서울대 입학 후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공부하시고 7년 만에 되셨으니 그보다 오래 걸리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 분이 지금의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신다면 그러지 않으셨어도 됩니다. 독학사로 1년 안에 학사학위를 딸 수 있고 그 학사학위로 법전원에 진학하시면 노동없이 공부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대단한 분이시니 법학전문대학원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실 것입니다. 재판연구관 혹은 검사가 되셨을 수도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표현을 사람들이 그 분에게 참 많이 했습니다. 변호사가 용은 아니지만 그 분이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셨다면 그 용, 4년 후에 되셨을 겁니다. 그 기간 동안 오로지 공부만 하면서요.

전 솔직히 사법시험 준비하는 친구들 중에 저보다 가난한 학창 시절을 보낸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제가 보지 못한 분들 중에도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준비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궁금합니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새터민, 장애인 등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한 해에 다섯 손가락을 넘길 수 있습니까?

이미 로스쿨 제도 하에서 저같은 분들이 300명 가까이 변호사, 재판연구관, 검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50명 이상 나오고 있습니다. 개천에서가 아니라 더 더러운 하수도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법시험에 존재한다고 믿는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사다리가 너무나 적기 때문에 그 사다리를 탄 사람들이 화제의 인물이 될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법학전문대학원에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다리를 탄 사람이 너무 많아서 화제도 되지 않을 뿐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장학금 지급은 성적보다 경제적 사정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됩니다. 차상위 계층이 아니라도 형편이 어렵다면 장학금 지급이 가능합니다.

본인이 정말 개천에서 났다고 생각하신다면 법학전문대학원에 오셔야만 합니다. 수백명의 개천과 하수도 출신들이 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호일보(www.kihoilbo.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인하대학교, #로스쿨, #법학전문대학원, #사법시험, #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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