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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경 씨가 대나무로 만든 반지. 대나무를 베서 삶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얇게 쪼갠 대나무로 만들었다.
 황미경 씨가 대나무로 만든 반지. 대나무를 베서 삶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얇게 쪼갠 대나무로 만들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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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더 좋아하게 되고요. 일도 즐겁게 하고요. 그래서 행복해요."

담양에서 대나무로 장식품을 만들고 있는 황미경(49)씨의 말이다. 황씨는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서 브로치와 반지, 팔찌 등을 만든다. 우리의 옷차림과 어우러지는 액세서리들이다. 작은 대바구니도 만든다.

지금은 대나무공예를 하고 있지만, 그녀가 이 길로 되돌아오기까지는 멀었다. 30년 가까이 다른 길에서 방황을 했다. 황씨를 지난 10월 21일 담양 세계대나무박람회장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11월 25일 두 번째 만나서 대나무 공예를 하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대나무 반지를 만드는 황미경 씨. 황 씨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대나무 반지를 만드는 황미경 씨. 황 씨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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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대나무 밭. '대나무고을' 담양에는 아직도 여러 마을에 크고 작은 대밭이 남아 있다. 사진은 담양읍 서원마을 뒤 대밭이다.
 담양의 대나무 밭. '대나무고을' 담양에는 아직도 여러 마을에 크고 작은 대밭이 남아 있다. 사진은 담양읍 서원마을 뒤 대밭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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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어요. 학교에 있는 시간을 빼곤, 대바구니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일찍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상업고등학교에 들어갔고요."

황씨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나무밭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대나무를 쳐다보기도 싫어서였다. 중·장년의 남자들이 군대 방향으로 서서 소변도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이후 직장생활을 하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조리와 미용 기술도 배웠다.

행복했지만 늘 2% 부족한 생활이었다. 늦깎이로 대학에도 다녔다. 대학을 바꿔 다니며 산업디자인, 중국어학,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컸던 것 같아요. 방황을 한 이유가요. 저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거든요.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그만 둘 때도 미련을 두지 않을 정도로요."

대나무 공예를 하는 황미경 씨가 대를 이용해 작은 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황 씨는 담양군의 대나무 공예 계승자로 지정돼 있다.
 대나무 공예를 하는 황미경 씨가 대를 이용해 작은 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황 씨는 담양군의 대나무 공예 계승자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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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에 다닐 때였다. 황씨는 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많이 받았다. 몸은 힘들어도 자신의 마음 치유도 경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지관에서 봉사자들을 위한 위로 행사를 마련했다. 담양으로 갔다. 대통밥을 먹고, 난생 처음으로 죽녹원과 대나무박물관을 견학했다.

"대나무박물관에서 나를 봤어요. 담양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 번도 안 가본 곳이었거든요. 전시된 공예품들을 보는데,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어릴 적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거예요. 밤낮으로 대바구니 만들던 그때가요."

황씨는 '이거다' 싶었다. 사회복지와 봉사보다, 자신이 더 잘 할 수 있는 게 대나무공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경험에다 기술을 조금만 더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흥분이 됐다.

황씨는 곧바로 이삿짐을 꾸려 담양으로 옮겼다. 지난 2009년이었다. 대나무공예 계승자로 등록하고,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나무공예 명인으로부터 대나무로 브로치 만드는 방법을 익혔다.

지난 9월 17일부터 10월 말까지 담양에서 열린 세계대나무박람회 현장. 대나무박람회는 황미경 씨에게 '굴러온 복덩어리'였다.
 지난 9월 17일부터 10월 말까지 담양에서 열린 세계대나무박람회 현장. 대나무박람회는 황미경 씨에게 '굴러온 복덩어리'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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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담양 세계대나무박람회장에서 만난 황미경 씨. 황 씨는 체험마당에서 대나무반지 만들기 체험을 운영했다.
 지난 10월 21일 담양 세계대나무박람회장에서 만난 황미경 씨. 황 씨는 체험마당에서 대나무반지 만들기 체험을 운영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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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에서 열리는 세계대나무박람회는 황씨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개인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공간이었다. 미리 준비해서 박람회를 대나무공예 홍보와 판촉의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발품 팔아서 안 다녀도 되잖아요. 찾아오는 사람만 만나도 충분하겠더라고요. 공방을 낸 것도 박람회를 겨냥한 것이었어요."

황씨는 대나무를 이용해 브로치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았다. 반지와 팔찌를 만드는데 응용했다. 특허출원도 해놓았다. 황씨는 실제 지난 9월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린 대나무박람회의 체험마당에서 대나무 반지와 팔찌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여느 체험장보다 방문객들이 많았다. 그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담양 세계대나무박람회 전시장에 설치됐던 대나무로 만든 해바라기 조형물. 대나무반지를 만들고 있는 황미경 씨의 작품이었다.
 담양 세계대나무박람회 전시장에 설치됐던 대나무로 만든 해바라기 조형물. 대나무반지를 만들고 있는 황미경 씨의 작품이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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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경 씨가 만든 대나무반지들. 대나무에 천연염색을 해 형형색색의 대나무반지를 만들었다.
 황미경 씨가 만든 대나무반지들. 대나무에 천연염색을 해 형형색색의 대나무반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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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장에도 황씨의 작품이 많이 선보였다. 기업관에 설치된 댓살로 엮어 만든 해바라기 모형과 국제관으로 들어가는 문은 포토존으로 활용됐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강낭콩 모형의 의자는 관람객들의 쉼터로 이용됐다. 담양천변을 장식한 대나무로 만든 사람 조형물도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판로 걱정도 해결해줬다. 박람회장에서 만족한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에서 열린 박람회를 제대로 활용한 덕이다.

가족들도 대나무공예에 팔을 걷고 나섰다. 남편 임정환(50)씨는 대나무바구니 계승자로 등록,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틈틈이 기술을 익히고 있다. 아들 어진(26)씨도 소목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황씨가 대나무로 만든 브로치. 마지막 절단 과정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황씨가 대나무로 만든 브로치. 마지막 절단 과정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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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고도 대나무공예품을 만들 수 있도록 체험용 책자를 펴내려고요. 죽부인, 대바구니 등 모든 분야를 시리즈로 펴낼 생각인데요. 이번 겨울부터 바로 시작하려고요. 후대에서 대나무공예를 새롭게 창조하려면 꼭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황씨가 대나무공예 기술을 전수받으면서 느꼈던 부분이다. 대나무공예를 무조건 따라서 배우기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죽세공예의 '징검다리 세대'로서의 책임감이기도 하다.

황씨는 앞으로 학교나 마을로 찾아가는 죽세공예 체험학교를 운영할 계획도 갖고 있다. 체험객을 기다리기 보다, 찾아가서 만나겠다는 의지다. 그녀의 대나무 공예에 대한 열정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황미경 씨가 신의 작업실에서 작은 대바구니를 만들며 활짝 웃고 있다. 황 씨의 작업실은 담양읍에 자리하고 있다.
 황미경 씨가 신의 작업실에서 작은 대바구니를 만들며 활짝 웃고 있다. 황 씨의 작업실은 담양읍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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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나무반지, #대나무팔찌, #황미경, #애담공방, #대나무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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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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