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안한 외출>의 포스터.

영화 <불안한 외출>의 포스터. ⓒ 다큐창작소


감옥에 갇힌 아빠에게 두 딸이 혀를 내밀며 "메롱"을 한다. 왜 아빠가 감옥에 갇혔는지 묻는 엄마의 질문에 "착한 일 해서 경찰이 잡아갔어"라고 답한다. 이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어떤 존재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불안한 외출>이 그에 대해 답했다.

영화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의장을 지낸 윤기진씨와 아내 황선의 과거 및 현재를 담았다. 지난 2002년부터 진보 미디어 운동을 해온 김철민 감독의 작품으로, 우리가 몰랐거나 혹은 외면했던 한국사회의 모순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국가보안법을 묻다

많은 대학생들이 소위 '운동'에 헌신했던 시대가 있었다.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를 외치며 산화한 청춘들, 그리고 그의 후배들이 통일운동에 매진했고, 노동운동에 투신했으며, 인권운동을 외쳤다. 국가의 안전을 위한다며 권력이 만들어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이 때로는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옭아매는 수단이 되곤 했다.

헌법의 기본 정신에 반한다며 끊임없이 위헌 논란이 일었던 국보법은 보수 정권이 등장한 이후 더 공고해진 모양새다. 영화에 등장하는 윤기진씨 역시 제대로 된 운동 한 번 해보지 못했지만, 단지 한총련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난 10년 간 국정원과 검경의 수배를 받아왔다.

 영화 <불안한 외출>의 한 장면.

영화 <불안한 외출>의 한 장면. ⓒ 다큐창작소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일단 그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 학생운동의 과거다. 1990년대, 학생운동의 사실상 말기라고 할 수 있는 그때 수 천 명의 대학생들이 신념에 의해 공권력의 폭력을 이겨내야 했던 현실을 영화는 가감 없이 담았다. 여기까진 그간 다큐 영상이 보인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초반을 지나며 영화는 윤기진 개인의 일상으로 파고든다. 함께 학생운동을 하며 만난 황선씨와 부부가 됐다. 이들이 검찰과 경찰, 국정원의 감시를 피해 몰래 한 대학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황급히 하객들의 보호를 받으며 도망가는 모습부터, 아이를 낳고 수배 생활을 하는 과정까지를 자세하게 담아냈다.

이들이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극변한 정권과 사회 분위기 또한 지나치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 천착하진 않았다. 문민정부 및 민주정부가 들어섰고, 6.15 공동성명 등으로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였을 때 이 부부의 모습은 다시 경제회생을 외치며 들어선 보수정권 하에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권 교체와 개인의 대비를 통해 영화는 이런 사람들이 우리 곁에서 함께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불안한 외출>은 개인에게 반복되는 비극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상식에 대한 질문이다. 경제권력이 쥐고 있는 금권사회로 오기까지 우리가 지나친 소중한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우리가 보내는 일상은 이 부부가 그토록 원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의미 없을 수 있는 하루를 그토록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영화는 암묵적으로 전한다.

양심과 신념을 지킬 자유

영화 속에서 윤기진씨는 "21세기임에도 이렇게 국가 권력을 피해 숨어다니는 이들이 있는지 다른 사람을 과연 알까,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참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도피 생활 중 낳은 두 딸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5년의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그는 '1년의 자유'를 만끽한 후 또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그 자유를 저당 잡힌다. 옥중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위법이라는 이유였다.

개인 비극의 반복을 통해 <불안한 외출>은 일종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선전물이 아닌 온전한 작품으로 나아간다. 이점에서 일부 대중들이 가질만한 선입견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겠다. 두 사람이 원했던 건 평범함이었다. 자녀와 함께 외출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유, 더불어 온전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양심을 지킬 자유를 원하고 있었다. 김철민 감독 역시 이들의 바람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관찰하는데 집중했다.

영화계가 진심을 알아준 것일까. <불안한 외출>은 지난해 19회 부산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돼 다른 작품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문화주간에 선정돼 현지 관객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넌 종북이냐"고 묻는 국가를 향해

 영화 <불안한 외출>의 한 장면.

영화 <불안한 외출>의 한 장면. ⓒ 다큐창작소


마침 영화의 언론 시사일인 12월 1일은 47년 전 국보법이 제정된 바로 그 날이기도 하다. 현재 대법원 재판 중인 윤기진씨와 1심 선고를 앞둔 황선씨가 참석했다. "내 이야기를 누가 보겠냐며 처음엔 촬영을 반대했다"던 윤씨는 "재판에 영향을 줄까봐 지난 11월 14일 있었던 민중 총궐기 때도 인도에서 조용히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그 집회를 기획했다며 경찰로부터 여러 차례 소환장이 날아왔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사회에서는 한 개인에게 넌 종북이냐고 묻곤 한다, 공권력이 나서서 질문하는 걸 막아내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 영화는 윤기진이라는 사람의 영화도 아니고,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황선씨 역시 "70여년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얼마나 많았나, 그에 비해 우리 부부의 삶은 그리 극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2015년 현재 한국에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차원으로 이해해달라"고 영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여전히 <불안한 외출>일 수밖에 없는 우리를 통해 국가 폭력에 이름 없이 희생당한 분들의 역사를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불안한 외출>은 오는 10일 개봉 예정이다. 배급 여건이 어려워 아직까지 극장 수를 확정받지 못했지만, 전국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등에서 소규모로 개봉될 가능성이 높다. 2000만원 상당의 개봉비 마련을 위해 415명의 후원자들이 참여했고, 총 2273만원의 금액이 모아졌다.

덧붙이는 글 영화 <불안한 외출> 관련 정보

연출 : 김철민
제작 : 다큐창작소
배급 : 홀리가든 불안한외출 배급위원회
상영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 타임 : 90분
장르 : 다큐멘터리
개봉 : 2015년 12월 10일
불안한 외출 국가보안법 국정원 학생운동 양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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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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