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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아래 COP21) 개막 바로 전날인 11월 29일 일요일 오후에는 기후변화를 위한 거리행진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 정부는 이 집회를 허락하지 않았고, 이에 항의하는 환경운동가들은 기가 막힌 대안을 내놓았다. 인간 띠 잇기와 '나 대신 신발' 퍼포먼스.

인간 띠는 일요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시작됐다.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프랑스 시민과 세계에서 COP21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한 환경운동가들이 볼테르 가에 모여들었다.

원래 샤론느 전철역에서 시작되기로 했으나 참석자가 늘어나 나씨용 역에서 시작해서 파리 테러가 일어났던 바타클랑 극장을 지나 오베르캄프 역까지 총 2km의 인간 띠가 만들어졌다. 이날 가장 눈에 띈 플래카드는 'Etat d'urgence, Climatique!'이었다. '국가 비상사태는 기후변화다!'

인간 띠 잇기에서 가장 많이 나온 플래카드 메시지: "국가 위기 상태는 기후변화다!" 탈세와 부정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3개 은행 중 하나인 BNP파리바 은행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인간 띠 잇기에서 가장 많이 나온 플래카드 메시지: "국가 위기 상태는 기후변화다!" 탈세와 부정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3개 은행 중 하나인 BNP파리바 은행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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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바로 지금, COP21" 올렁드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 당시 쓰던 문구 "Le changement, c'est maintenant"(변화는 바로 지금)을 패러디했다.
 "미래는 바로 지금, COP21" 올렁드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 당시 쓰던 문구 "Le changement, c'est maintenant"(변화는 바로 지금)을 패러디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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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인원은 주최 측 추산 1만 명, 경찰 추산 4500명으로 알려져 있다. 바타클랑 극장 앞과 샤론느길 앞에는 테러 피해자를 잊지 않기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친구이거나 애인이거나 음악을, 영화를 좋아했던 우리같은 평범했던 피해자를 르몽드 지는 아직도 매일 하루에 한 명씩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다.

바타클렁 극장 앞. 사고 당시에 비해 교통 통제가 부분적으로 풀렸다.
 바타클렁 극장 앞. 사고 당시에 비해 교통 통제가 부분적으로 풀렸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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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타클렁 극장 맞은 편.
 바타클렁 극장 맞은 편.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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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소망이 담긴 프랑스다운 '퍼포먼스'

'나 대신 신발' 캠페인은 파스칼이라는 행동가가 시작했다. '나는 걷지 않겠습니다. 대신 내 신발이 대신 행진하렵니다'라는 메시지 아래,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신발을 보내달라고 했다. 보내진 신발과 직접 갖다 놓은 신발은 다 합쳐 천여 개가 넘었다. 이 신발들은 레프빌릭 광장에 펼쳐졌다. 불허된 집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기후변화 회의의 성공을 바라는 소망이 고스란히 전달된 그야말로 정말 프랑스다운 퍼포먼스였다. 

레프블릭 광장에 주인 대신 모인 신발들. 신발 한 켤레에 흙이 담겨있고 꽃이 꽂아져있어 환경을 위한 한 발자국이라는 상징성이 드러난다.
 레프블릭 광장에 주인 대신 모인 신발들. 신발 한 켤레에 흙이 담겨있고 꽃이 꽂아져있어 환경을 위한 한 발자국이라는 상징성이 드러난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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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신발을 놓고 가는 청년. 신발에 프랑스 국기를 꽂고 있다.
 진지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신발을 놓고 가는 청년. 신발에 프랑스 국기를 꽂고 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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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보이는 조각상이 있는 곳이 레프블릭 광장이다. 거리시위가 허가되었다면 이들은 분명히 아이들과 함께 걸었을 것이다.
 뒤에 보이는 조각상이 있는 곳이 레프블릭 광장이다. 거리시위가 허가되었다면 이들은 분명히 아이들과 함께 걸었을 것이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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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띠 잇기'에서  한국 사람 같은 동양인에게 "한국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더니, 반가워하며 '쓰레기 제로' 한국팀이라고 소개한다. 총 70개 국에서 온 쓰레기 제로 팀이 한 그룹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대만 운동가 한 분, 그리고 한국팀 두 분과 함께 레프블릭 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광장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고 경찰차 여러 대와 헬멧과 마스크를 쓴 경찰들이 깔려있는게 아닌가? 경찰들이 경찰 통제선을 만들고, 그 뒤에 경찰차와 경찰차 사이의 틈으로 사람들이 연행되어 가는게 보였다. 벨기에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이 나와 있고,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Libérez nos collègues! (우리의 동료를 풀어달라!) La police est partout! (경찰이 천지에 깔렸다!)  La justice est disparue ! (정의가 상실됐다!)"를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환호를 외치면 시위대 중 한 사람이 도망을 치려했던 순간이고, 사람들이 야유를 하면 그 시위대가 경찰에게 잡혀서 경찰차에 올라타는 순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건 경위를 물었다.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다. 시민들이 동료들을 풀어달라고 외치고 있고, 경찰들은 꼼짝하지 않고 있다.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다. 시민들이 동료들을 풀어달라고 외치고 있고, 경찰들은 꼼짝하지 않고 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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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FTA가 아닌 기후를 살려내라!" "국가 비상사태는 기후변화" "로렁스 파비우스는 공항 건설이냐 COP21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라"
 "TAFTA가 아닌 기후를 살려내라!" "국가 비상사태는 기후변화" "로렁스 파비우스는 공항 건설이냐 COP21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라"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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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되가는 시민과 운동가들.
 연행되가는 시민과 운동가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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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시위에 참가한 일부 시민과 운동가들을 격리시켜놓고 경찰차에 태우고 있다.
 거리 시위에 참가한 일부 시민과 운동가들을 격리시켜놓고 경찰차에 태우고 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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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띠 잇기가 끝나고 나서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광장으로 행진을 했다. 그런데 허가받지 않은 거리시위가 경찰의 제지에 부딪히고, 어딘가에서 경찰 쪽으로 돌이 날아왔다고 했다. 이에 경찰은 최루탄을 쏘고 집회 해산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레프블릭 전철역은 폐쇄되었고, 경찰은 광장 주변을 막았다고 했다. 어디로 빠져나갈 수가 없을 때쯤 경찰이 두 그룹을 둘러싸고 연행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집회에 여러번 참여했지만 이렇게 많은 경찰차와 무장경찰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보통 집회장에 나오는 경찰은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한 예로, 필자가 파리에서 강정 집회를 주도했을 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

"당신네 집회는 환경문제를 다룰 뿐만이 아니라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면을 건드리는 만큼 당신네 집회를 훼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난동을 부릴 수 있다. 내가 광장에 주둔해 있을테니까 혹시라도 훼방꾼이 나타나거든 바로 전화를 하라"며 사복경찰이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번 상황은 달랐다.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 댄 구도였다. 대만 운동가와 동행한 한국분은 불안해했다. 주위에서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더 불안했다. 외신 기자가 뭐라고 방송을 내보내는지 들으려고 카메라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광장 안으로 들어오더니 폴리스 라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경찰차가 일제히 광장 안으로 진입해왔다.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아 동행한 사람들과 서둘러 광장을 벗어났다.

레프블릭 광장 중앙에 파리 테러 피해자들을 기리는 꽃다발, 쪽지, 초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다른 테러 피해장소에도 같은 모습이다.
 레프블릭 광장 중앙에 파리 테러 피해자들을 기리는 꽃다발, 쪽지, 초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다른 테러 피해장소에도 같은 모습이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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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의 대치 상황에서도 침묵으로 시위를 계속하는 시민. "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 샤를리 앱도 테러 때 많이 나왔던 문구다.
 경찰과의 대치 상황에서도 침묵으로 시위를 계속하는 시민. "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 샤를리 앱도 테러 때 많이 나왔던 문구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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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안으로 경찰들이 순식간에 진입하고 있다.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아 광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광장 안으로 경찰들이 순식간에 진입하고 있다.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아 광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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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루탄이 터진 흔적
 체루탄이 터진 흔적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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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놓여지고 있는 신발들.
 경찰의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놓여지고 있는 신발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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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십 여 년이 넘게 집회에 참여도 하고 주도도 해봤지만 이렇게 많은 경찰차를 한꺼번에 보는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프랑스에서 십 여 년이 넘게 집회에 참여도 하고 주도도 해봤지만 이렇게 많은 경찰차를 한꺼번에 보는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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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방송 기자의 인터뷰에 응해 사건 진행과정을 설명하는 한 여성이  "내 친구가 지금 어디로 연행되어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며 불안해했다. 경찰의 광장 점유로 흩어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경찰차에 연행되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경찰차들은 사이렌을 울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최근 11월 27일자 르몽드 사회면에 "COP21활동가들, 비상사태의 표적이 되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COP21를 앞두고 COP21 활동가들이 프랑스 전국에서 가택수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집회를 빙자하여 불만을 폭력으로 표출했고 그들을 걸러내는 게 프랑스 경찰의 임무다. 하지만 어제 내 눈 앞에서 200명이 우루루 연행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프랑수아 올랑드가 파리 테러 이후 안전을 핑계로 프랑스인의 가장 큰 가치인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2주간 COP21 취재 다니면서 몸조심해야겠다.

"기후를 보호합시다. 우리를 보호합시다."
 "기후를 보호합시다. 우리를 보호합시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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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COP21, #파리 테러, #파리, #레프블릭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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