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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 현 방문진 이사장(사진 왼쪽)과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
 고영주 현 방문진 이사장(사진 왼쪽)과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
ⓒ 남소연·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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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공영방송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고 있는가?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의 자괴감에 대한 심층 분석 기사를 본 적 있는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사경을 헤매는 늙은 농부의 억울함을 보도한 공영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가? 삼성재벌의 승계 과정에 '왜' 국민연금이 투자되었고, '누가' 관여되었는지, '불법성'은 없었는지에 대한 기사를 공영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가?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의 동북아 패권주의에 대해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공영방송국이 있는가? 그렇다. 불행하게도 위에 던진 질문들의 답은 '없다'이다.

왜 그럴까? 무엇 때문에 2015년 한국 공영방송은 대한민국 국민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것일까? 이를 제작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지난 2000년대 대통령 측근의 권력형 비리, 정치·경제 및 언론 권력의 유착을 보도한 삼성 'X-파일',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경고한 프로그램들은 모두 한국 공영방송 제작진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들은 어디로 가고 통치권자와 이를 추종하는 엘리트들의 막말과 비상식적인 언행들만 난무하고 있는 것일까? 이같이 왜곡된 한국 공영방송의 수준은 권력층의 '반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대한민국 공영방송 반칙의 역사성 비판과 개선방안의 제시를 목적으로 한다.

민주주의 수준과 공영방송 모델들

공영방송은 국민 통합과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제도다. 2012년 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ABU)은 공영방송이 '민영방송도 아니고 국영방송도 아닌 정치적·재정적으로 독립된 방송'이라고 규정했다.

공영방송은 단순히 국가의 방송 또는 주주의 방송이 아닌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3대 원칙에 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즉 공영방송은 시민의 방송(of the people), 시민에 의해 만들어지는 방송(by the people), 그리고 시민을 위한 방송(for the people)이기 때문에 사회적 책무성(accountability)을 가진다. 사회적 책무성은 보편성·독립성·소수자 보호·문화 정체성 확립·여론 다양성·차별성 등의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 원칙들은 민주적이고 문화적인 방송 프로그램 편성을 통해 드러난다. 즉, 공영방송은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을 통해 민주주의 유지·발전과 문화향상이라는 사회의 '공공이익(public interest)'을 추구하는 공적·사회적 제도다.

이 제도의 형태는 획일적이지 않다. 세계 각국이 각기 다른 정치·경제 발달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영방송 제도가 각국의 민주주의 역사성과 연결돼 있음을 의미한다. 1920년대 영국에서 이 제도가 등장한 이래, 공영방송은 세계 각국 소수 권력층의 방송 장악 시도와 이에 저항하는 세력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3가지 공영방송 모델이 존재한다. 정부가 공영방송국을 규제하고 감독하는 '정부 모델'(예: 영국과 일본), 선거 득표율에 따라 공영방송 영향력을 배정하는 '의회 모델'(이탈리아), 마지막으로 시민들의 다양한 참여를 보장하는 '시민 모델'(독일) 등이다.

각기 다른 공영방송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들 모델은 소수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민주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의 여론을 다양하게 보장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공영방송국의 이사회에 반영하고 있다. 이사회가 실질적인 통제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정기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공영방송국 이사회의 투명성과 이사 후보자의 자격요건 검증 강화 및 지역 대표성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 공영방송 이사회의 현실

한국은 정부가 공영방송국을 감독하고 규제하는 정부모델이다. 하지만 같은 모델에 속하는 영국과 일본 공영방송과 달리 한국 공영방송 보도는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났던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정권이 공영방송국을 자신들의 이익만을 전파하는 기관으로 사유화해왔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방송인들을 사장으로 내리꽂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최고의결기관인 이사회에 이사들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영방송 규제와 감독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여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는 마이클 존스턴 교수가 분류한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가 한국 공영방송에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는 정치권력과 고위 관료, 대기업과 같은 엘리트층이 인맥과 연줄을 통해 공영방송국을 장악, 그들만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즉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임명권자인 집권세력과 진영논리를 그대로 반영하는 권-언 유착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실제로 이 같은 '그들만의 리그'가 가능했는지 분석하기 위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보도 기능을 가진 MBC와 KBS 이사회를 분석해 봤다. 그 결과 KBS와 MBC 이사회는 국민의 다양한 계층과 연령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으며, '영남 출신 남성 50대 이상 SKY급 출신'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표1>에서 보듯 이사회 성별 구성에서는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으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권은 2009년 MBC에 여성 이사를 한 명도 임명하지 않았다.

표1
 표1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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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엘리트사회의 핵심적인 연결고리 중 하나인 학력 분석에서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 또는 박사 학위를 소지한 이사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이사로 임명된 경우가 많았다. <표2>를 보면 대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이사들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표2
 표2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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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 출신 이사들은 대부분 교수와 언론인이었다. 미디어학부 출신 교수들이 타과 교수들보다 더 많이 포함됐다. 언론인 경력을 가진 이사들은 신문보다 자사 방송국 출신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교차 임명은 없었다.

법조인과 시민단체 출신(노동조합, 여성단체)들도 이사회에 포함됐다. 순수 의료와 보육 및 종교단체 출신은 한 명도 포함되지 못했다. 특이한 점은 삼성 출신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재벌들과 달리 삼성(<중앙일보>, 전 동양방송) 출신들이 KBS 이사회에 이사로 참여한 것이다. 2000년 1명, 2003년 2명, 2009년 2명 등이다. 이들은 MBC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표3
 표3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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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엘리트 연결고리 중 하나인 출신 지역을 분석하면 <표4>에서 보듯 영남 지역 출신들이 호남 지역 출신보다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호남 출신 대통령이 재임하던 국민의 정부 동안에도 영남 출신 이사들이 KBS· MBC 이사회에서 수적 우위를 점했다.

표4
 표4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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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임용 당시 연령을 분석한 결과, 2009년 MBC에 뉴라이트 출신인 40세의 최홍제 이사가 포함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50대 이상의 장년층이 이사회 자리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하자면, 한국 공영방송 이사들은 대부분 영남 출신의 고학력 남성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방송 언론인 출신은 자사 이사로만 참석해 언론인의 '동종교배'가 이뤄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사회 구성 인원에서 제외된 것이다. 한국인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일반 시민들은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한국 공영방송에서 '국민'들은 제외되고 엘리트들만 이사회 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공영방송 제도 개선방안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한국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여전히 집권세력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제도로 유지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몇 가지 제도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공영방송 관련 법 체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아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운영이 정권 입맛에 따라 휘둘리고 있다. 공영방송 구조와 프로그램 제작·편성에 민주주의 3대 원칙(시민의, 시민에 의해, 그리고 시민을 위한)이 반영될 수 있도록 공영방송의 정의와 역할을 방송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다원화되는 한국 사회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도록 이사회 임원 구성을 계층별·성별·연령별·직능별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의 재원(시청료+광고)은 소수의 엘리트가 아닌 대다수 시민의 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돈을 더 많이 내는 시민에 대한 배려가 제도적으로 필요하다.

세 번째, 공영방송 이사회의 임원 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선발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존 '낙하산 인사' 논란의 핵심은 이사회 임원과 경영진의 자격 규정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집권세력의 당원이거나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은 공영방송 이사 및 최고 경영자로 임용될 수 없도록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오래된 관행인 권·언 유착은 보도의 공정성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고, 이는 결국 민주주의 퇴행과 사회적 손실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춘효님은 매체정치경제학 박사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공영방송, #언론자유,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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