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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의 정성으로 담근 총각무김치. 무청과 함께 버무렸습니다. 매콤하고 씹히는 맛이 일품입니다.
 나와 아내의 정성으로 담근 총각무김치. 무청과 함께 버무렸습니다. 매콤하고 씹히는 맛이 일품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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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출근 준비에 바쁜 아내가 TV 아침뉴스 일기예보를 보다 말을 겁니다.

"당신, 오늘 뭐 할 거예요?"
"글쎄? 콩 타작해야 하는데, 비 때문에 아직 덜 말랐네!"
"그럼 잘 되었네요. 총각무 좀 뽑아 손질해놓으면 좋을 텐데…."

"그거 손 많이 가는 거 아냐? 일찍 퇴근하고 같이 하지!"
"나 퇴근하면 어둡지요. 잘 아시면서…. 그럼 주말에 같이 합시다."
"그때는 날 추워진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다듬고 절여놓으면, 내가 저녁에 후딱 버무리면 되죠!"

말끝에서는 "여보, 미안!" 하며 코맹맹이 소리를 합니다. 아내는 뭔가 수고스러운 일을 부탁할 때는 늘 그렇습니다. 여느 때보다 비음이 더 많이 섞여있습니다.

아내의 '숙제'... 벅차네

나는 지난 2월 말에 오랜 공직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소일거리로 텃밭에다 각종 작물이며 유실수를 심어 이것 저것 가꿉니다. 거둬들인 것을 소중히 여기고, 남는 것은 여러 이웃들과 나눕니다. 자급자족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작은 농사꾼으로 일감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직장에 나가는 아내를 도와 집안일도 많이 거듭니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내가 숙제를 남겨놓고, 당부까지 곁들입니다.

"당신, 무 다듬을 때, 무청 있죠? 그거 다 떼어내면 안 돼요. 누런 겉잎만 떼 내고 다듬으세요. 총각무김치는 녹색 무청이랑 함께 먹어야 맛도 좋고, 영양도 최고라 하대요. 가을무는 인삼보다 낫다는 말, 알죠?"

아내의 당부가 많을수록 숙제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무 뽑아서 무청을 떼 내지 말고 다듬어라, 그리고 소금에 절구고, 한 서너 시간 지나 씻어놓으라'는 일이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자기는 퇴근하고서 양념 만들어 버무리기만 할 심사인 것 같습니다.

해가 중천에 뜨자 날이 푸근합니다. 일하기에는 좋습니다. 장화를 신고 장갑을 찾아 밭으로 나왔습니다. 엊그제 내린 비 때문에 땅이 질척거립니다. 장화에 흙이 잔뜩 묻고, 장갑에는 흙이 범벅입니다. 일이 무척 더딥니다.

우리가 가꾼 총각무밭. 기대이상으로 잘 자랐습니다.
 우리가 가꾼 총각무밭. 기대이상으로 잘 자랐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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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둔 총각무.수확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내가 거둔 총각무.수확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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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쏘옥 뽑혀 나온 총각무가 예쁩니다. 작물을 거둘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무를 뽑을 때도 수확의 기쁨이 있습니다.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도, 기대이상 잘 자라주면 더욱 그렇습니다.

총각무 뽑는 일은 금방입니다. 한 평 남짓 심은 땅에서 거둔 양이 수월찮습니다. 큰 소쿠리로 하나 가득입니다. 무청도 적당히 연하고, 무꼬랑지에 알이 배어 있어 먹음직스럽습니다.

총각무는 알이 배인 것이 좋다고 합니다. 흔히, '알타리무'라고도 부르는데 총각무가 표준어입니다. 우리가 클 때는 무꼬리에 알처럼 달린 게 있다하여 달랑무, 알무라고도 했습니다.

혼자서 일을 하려니 거두는 기쁨도 잠시입니다. 지루하고 짜증이 섞입니다. 김장이나 김치 담글 때 아내가 힘들다면서, 끝나면 몸이 무겁고 드러눕고 싶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총각무 손질, 만만치가 않다

보통 1년 농사의 마무리는 김장으로 끝납니다. 김장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올해도 사돈네 식구들과 함께 축제처럼 즐기며 했습니다. 100여 포기 김장을 하면서도 아들 며느리, 사돈네 식구와 함께 여럿이서 시끌벅적 떠들며 놀면서한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으니 힘 드는 줄도 모르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우리는 사돈네 식구들과 함께 여럿이서 김장을 축제처럼 했습니다.
 우리는 사돈네 식구들과 함께 여럿이서 김장을 축제처럼 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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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을 해도 여럿이 함께 할 때의 수월함과 혼자서 할 때의 지루함은 일의 능률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혼자서 총각무 다듬는 일이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총각무는 무청이 맞닿은 부분을 손질하기가 다른 무에 비해 더딥니다.

한참을 일을 하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모과 몇 개 얻으려고 집에 왔습니다.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아주머니는 집에 혼자 있는 나를 생각해서 맛난 음식을 잘 챙겨줍니다. 음식솜씨도 좋고, 인심도 후한 고마운 분입니다. 아주머니는 옹색하게 일하는 나를 보고 말씀이 많으십니다.

"알타리 다듬는 거, 일머리 아는 우리도 힘든 건데! 남자 혼자 이런 일을 다 하실까? 사모님 쉬는 날이나 하시지! 이놈의 허리가 아파서 도와주지도 못하고 이걸 어쩐다냐!"

그러면서 허둥대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차근차근 일머리를 가르쳐줍니다. 오순도순 훈수를 하는 분이 옆에 있어 일이 한결 쉬워집니다.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일을 진행합니다. 진도가 무척 빨라집니다.

우선 무청의 겉잎 중 속잎으로 연한 것만 놔두고 떼어 냅니다. 그리고서 무꼬리를 잘라낸 뒤, 수세미로 무를 깨끗이 씻습니다. 무 껍질에 영양이 있다며 긁어내지 말라고 아주머니는 훈수합니다. 무청과 무 사이에 있는 이물질을 일일이 도려내는 일이 제일 오래 걸립니다.

내가 애써 손질한 총각무입니다. 다듬는데 만만찮은 수고가 있습니다.
 내가 애써 손질한 총각무입니다. 다듬는데 만만찮은 수고가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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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다 끝날 즈음, 아주머니가 소금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무를 절여줍니다.

"이제 두어 시간 있다가 한 번 뒤집어주고, 사모님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집에 있는 갓이랑 쪽파도 다듬어 놓으면 사모님은 일할 것도 없겠네! 우리 집 양반은 언제나 이렇게 도와주려나?"

아주머니는 "누구는 참 좋겠다!"는 말과 함께 맛나게 담아 사모님 솜씨 좀 보여 달라고 합니다. 나는 아주머니 등 뒤로 "네!" 하고 대답합니다.

"어! 당신 숙제 잘 했네!"

날이 어둑어둑 할 무렵, 아내 차들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느 때보다 좀 이른 시간입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숙제 검사하는 선생님처럼 묻습니다.

"여보, 당신 총각무 손질해놨어요?"
"그럼, 그거 하면서 죽는 줄 알았어."
"너무 힘들어겠다! 고마워요. 당신 혼자 다했어요?"
"아냐, 옆집 아주머니가 많이 가르쳐주고, 절여주셨어!"

아내는 내가 한 일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자기가 할 일을 다해놨다며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그리고 금방 손을 걷어붙입니다.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총각무김치. 아내는 고추씨를 넣어 매콤한 맛을 더했습니다.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총각무김치. 아내는 고추씨를 넣어 매콤한 맛을 더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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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여서 깨끗이 씻어놓은 총각무를 과도로 쪼갭니다. 그리고서 무에 고춧가루 물을 들입니다. 양념 준비는 일사철리로 진행합니다. 풀죽 대신 식은 밥을 갈아놓습니다. 갈아놓은 것에 마늘, 생강, 멸치액젓과 새우젓을 섞고, 쪽파와 갓을 썰어 양념을 버무립니다.

그러다 뭐가 빠뜨렸는지 내게 묻습니다.

"여보, 우리 고추씨 있죠? 그거 좀 주세요."
"고추씨를? 여기다 고추씨를 넣어!"
"고추씨가 적당히 들어가야 매콤하고 맛이 있어요!"

아내 손에 보기에도 맛깔스러운 총각무김치가 탄생합니다. 옆집 아주머니 몫도 챙깁니다.

아내가 한 가닥이 찢어 맛을 봐보랍니다. 아직 약간 매운맛이 있지만, 내 수고와 아내의 손맛이 어우러진 김치 맛이 참 좋습니다.

김치통에 넣은 총각무김치. 한동안 밥도둑 노릇을 할 것 같습니다.
 김치통에 넣은 총각무김치. 한동안 밥도둑 노릇을 할 것 같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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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통 뚜껑을 닫으면서 아내가 샐쭉 한마디 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랍니까?

"오늘 나 김치 담그는 거 봤죠? 다음에는 당신이 맛있게 담가보세요!"


태그:#양성평등, #총각무, #총각무김치, #알타리무,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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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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