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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스스로 별칭을 '빅풋(BigFoot) 부부'라고 붙였습니다. 실제 두 사람 모두 '큰 발'은 아니지만, 동네 골목부터 세상 곳곳을 걸어 다니며 여행하기를 좋아해 그리 이름을 붙였지요. 내 작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움을 발견하는 거대한 발자국이 된다고 믿으며 우리 부부는 세상 곳곳을 우리만의 걸음으로 여행합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만든 여행 영상도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 - 기자 말



우리 부부는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그저 평범한 여행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도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 정도를 머무르면서 본 가우디의 건축은 '자연'과 '종교'라는 두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오늘은 수많은 건축물에 자연을 담아내고 신심을 녹여냈던 가우디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곳, '몬세라트(Montserrat)'를 방문합니다.

몬세라트는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톱으로 자른 산'이란 뜻을 가진 이곳엔 이름에 딱 맞는 1235m의 신비로운 바위산이 자리하고 있고 725m의 중턱엔 더욱 신비로운 모습으로 11세기 베네딕트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몬세라트 역에 내려 산악 열차로 갈아타고 수도원까지 가는 7분여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끊임없이 셔터를 누릅니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놀람'과 '감탄'의 행위이지요.

1235m 바위산 중턱에 11세기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신비롭게 자리하고 있다.
▲ 몬세라트 수도원 1235m 바위산 중턱에 11세기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신비롭게 자리하고 있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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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는 가우디의 대표 건축물인 바르셀로나 '성 가족 성당'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몬세라트는 가우디의 대표 건축물인 바르셀로나 '성 가족 성당'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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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여의 짧은 감탄이 끝나고 바위산을 병풍 삼아 앉아있는 아름다운 수도원 앞마당에 발을 내딛으면, 마치 신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조각 공원에 들어선 느낌입니다. 도무지 어떤 '놀람'의 소리를 내고 '감탄'의 몸짓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해집니다.

몬세라트가 가우디의 예술과 삶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지역이라는 걸 글로만 읽었는데, 진정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입니다. 특히 가우디의 대표 건축물이면서 그의 사후 100년을 기념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바르셀로나 '성 가족 성당(Templo de la Sagrada Familia)'의 모델이 된 곳이란 걸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먼저 수도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당으로 향합니다.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정면에는 예수와 제자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조각돼 있습니다. 1592년에 축성된 원래의 성당에는 은으로 세공돼 있었지만, 1900년에 새롭게 바뀐 거라고 하네요. 사실 몬세라트를 찾는 여행자들 대부분은 이 성당 안에 있는 '검은 성모상'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겠지만, 전문가들은 성당에 들어가기 전 이 바실리카 정면을 꼭 눈과 마음에 담으라고 권합니다.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정면에는 예수와 제자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조각돼 있다.
▲ 몬세라트 수도원의 성당 정면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정면에는 예수와 제자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조각돼 있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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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모레네타(La Moreneta, 검은 피부를 가진) 성모상

성당에 들어서자, 에나멜을 입힌 화려한 제단 위로 몬세라트를 카탈루냐에서 가장 장엄한 성지로 만든 '검은 성모상'이 보입니다. 이 성모상은 수도원에서 30분 정도를 더 오르면 나오는 산타 코바 (Santa Cova, 거룩한 동굴) 안에서 12세기에 발견됐다고 합니다. 몬세라트 수도원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에는 과거 수도사들이 은둔했던 동굴들이 가득한데요, 12세기의 어느 날 한 양치기 소년이 동굴 한 곳에서 성스러운 빛이 뻗어 나와 가서 보니 이 성모상이 있어 수도원에 모시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작은 성모상(사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기에 '성모자상'이라고 해야 맞지 싶지만)은 성 루카가 만들었고 성 베드로가 서기 50년에 이곳으로 가져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검사를 해봤더니 성모상이 발견된 1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그러니 양치기 소년의 발견 이야기도 그저 전설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이 성모상이 검은 이유에도 여러가지 설(說)이 있습니다. 원래부터 검은 색이 아니라 오랜 세월 신도들이 바친 등불에 그을려 검어진 것이라고도 하고, 표면에 입힌 은박이 산화된 것이라거나 고대 신앙에 기원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몬세라트 산타 코바(Sant Cova, 성스러운 동굴) 안에서 12세기경 발견됐다.
▲ 검은 성모상 몬세라트 산타 코바(Sant Cova, 성스러운 동굴) 안에서 12세기경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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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성모상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어떻든 사람들이 믿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검은 성모상은 몬세라트의 영혼이며 카탈루냐 문화를 지켜내는 중심이라는 믿음입니다.

1811년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수도원이 파괴됐을 때도 독실한 신도들의 보살핌으로 이 성모상만큼은 지켜냈다고 할 만큼, 검은 성모상은 이 지역 신심의 구심점이었습니다. 또 서슬 퍼렇던 프랑코 독재 체제 아래 카탈루냐어 사용이 전면 금지됐을 때도 검은 성모상이 모셔진 이 예배당에서만큼은 굽히지 않고 카탈루냐어로 예배를 드렸기에 이곳은 카탈루냐 사람들의 최고 성지로도 꼽히고 있지요.

검은 성모상으로 가는 복도와 계단에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몬세라트의 영혼이며 카탈루냐를 수호하는 성모상을 가까이 보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리고 이 성모상에 손을 대고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지금에도 효험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보호를 위해 유리 기둥 안에 모셔진 검은 성모상은 사람들이 손을 얹고 기도할 수 있도록 손에 든 구슬만 유리 기둥 바깥으로 노출돼 있습니다. 종교가 같든 다르든, 소망하는 것들이 없을 수 없는 방문자들 모두가 성모상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합니다.

카탈루냐 수호 성모인 검은 성모상에 한 여행자가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 검은 성모상 카탈루냐 수호 성모인 검은 성모상에 한 여행자가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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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콜라니아(Escolania) 소년 합창단

검은 성모상 앞에서 길게 줄을 섰다가 기도를 끝낸 사람들이 이제는 성당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 합창단이라고 하는 에스콜라니아 합창단의 노래를 듣기 위해섭니다.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은 13세기에 창단돼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요, 파리나무십자가 소년 합창단, 빈 소년 합창단과 더불어 세계 3대 소년 합창단으로 손꼽힙니다.

유럽 사람들의 동작이 이렇게 빨랐나 싶게, 성당의 그 많은 자리들이 앞에서부터 순식간에 채워집니다. 우리 부부는 성모상 앞에서 너무 여유를 부렸던 탓인지 사람들 뒤통수 사이로 간신히 합창단 아이들을 볼 수 있게 됐지요. 그래도 아이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래 소리를 들으려고 앉은 자리라, 아쉬움은 없습니다. 특히 수도원 성당 안에 울려퍼지는 소년들의 목소리는 스르르 눈을 감게 만들어 자리의 좋고 나쁨은 곧 느낄 수가 없게 됐어요.

소년들의 미성으로 부르는 담백한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聖歌, 반주 없는 단순한 선율의 가톨릭 성가)는 몬세라트의 자연이 뿜어내는 신비로움을 그대로 닮은 듯 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합창단 중 하나로, 하루 두 번 합창단의 아름다운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을 수 있다.
▲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합창단 중 하나로, 하루 두 번 합창단의 아름다운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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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우리 부부처럼 바르셀로나에서 당일 일정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같은 열차를 타고 비슷한 시간에 검은 성모상을 보기 위해 줄을 서고 또 다같이 오후 1시에 하는 소년 합창단의 노래를 듣게 되지요. 그리고 겨울이 아니었다면 또 다같이 검은 성모상이 발견된 '산타 코바(Santa Cova, 성스러운 동굴)'로 가기 위해 푸니쿨라를 탔을 겁니다.

검은 성모상이 발견된 산타 코바로 가는 푸니쿨라 승강장, 겨울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
▲ 산타 코바로 가는 푸니쿨라 승강장 검은 성모상이 발견된 산타 코바로 가는 푸니쿨라 승강장, 겨울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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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 수도원 앞에는 산타 코바와 산 호안으로 가는 푸니쿨라 탑승장이 있는데, 두 곳 모두 작은 예배당이 있으면서 몬세라트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불립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몬세라트를 방문했을 때는 푸니쿨라가 운행하지 않는 기간이라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지만 그 길로 몬세라트를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산타 코바로 가는 푸니쿨라 승강장 뒤로 난 길을 20~30분 정도 걸어 올랐지요.

몬세라트의 풍경을 감상하는 한국 관광객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몬세라트의 풍경을 감상하는 한국 관광객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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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듯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오솔길 양쪽으로 검은 성모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과 여러 성인들의 조각상이 설치돼 있어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마침내 몬세라트 수도원 맞은 편 커다란 십자가가 있는 곳에 이르면, 산타 코바나 산 호안에 뒤지지 않을 듯한 전망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해저 융기로 만들어졌다는 6만여 개의 봉우리는 하나하나가 정성껏 빚어 놓은 조각 작품처럼 보이고, 겹겹이 층을 이룬 구름 아래 마을도 산 중턱에 자리한 수도원의 모습 만큼 신비로운 풍경을 이룹니다.

웅장한 자연 앞에 서니 마음이 절로 낮아집니다. 여유롭자고 떠나온 여행인데, 일주일 차에 벌써 여행도 바빠졌다는 느낌이 들어 살짝 반성의 마음이 생깁니다. 사람에게 사람으로 다가가는 것이 여행이라 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 풍경만큼 넓고 자유롭게 대했는지도 돌아봅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모두 접고, 겨울임에도 쌀쌀하지 않은 몬세라트의 바람을 느낍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스페인 여행, #스페인 동영상, #몬세라트, #가우디, #검은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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