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낙엽이 하나둘 떨어지는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가야산에 있는 '내포 문화 숲길'을 찾았습니다. 높이가 678m인 가야산은 주변에 문화유적지를 간직한 명산으로 1973년에 덕숭산과 함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가야산은 예산군의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서산시와 남쪽으로는 홍성군, 북쪽으로는 당진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곳 가야산 일대는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게 되었고, 가야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의견을 한데 모아 지역 환경 보전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고 지역공동체를 복원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의 문화를 제시하는 대안으로 '내포문화 숲길'이 탄생하였습니다.
안개가 자욱했음에도 다채로운 색으로 물든 숲의 정경은 마치 잘 그려놓은 수채화 한 폭 같습니다. '내포 문화 숲길'이 있는 내포는 옛날부터 좋은 지역으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쯤에 가야산이 있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 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지세가 한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전과 병자의 두 차례 난리에도 여기에는 미치지 않았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다. 또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므로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 집이 많다."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비가 내리는 날씨였지만, 해설가 몇 분이 오셔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원효대사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원효암터에 은술샘이 있는데요. 원효대사가 당나라 선진 불교 문화를 배우기 위해 의상대사와 함께 가다가 이곳에 들러 하룻밤 묵어가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목이 마른 차에 원효대사는 옆에 있던 용기에 담긴 물을 마시게 되었고 그 다음 날 아침에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임을 알고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어 중국 여행을 포기했다고 전해집니다.
암자터에 사시사철 물이 나오는 은술샘은 원효대사가 해골에 든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득도굴이 위쪽 암자터에 있습니다. 은술샘은 가야 산중에 사는 많은 동물의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소중한 샘이라고 합니다.
남연군의 묘는 흥선대원군의 부친의 묘입니다. 묘가 있던 자리는 원래 가야산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절인 가야사가 있던 곳입니다. 풍수 지리설의 좌청룡, 우백호가 웅장하게 뻗어 있어 2대에 걸쳐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경기도 연천에서부터 이곳까지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부친 묘를 마을과 마을을 물려주기 식으로 상여를 메고 가며 이장한 것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야욕으로 두 아들 고종과 순종 임금이 즉위했고 흥선대원군은 그 보답으로 가야산에 절을 지어 주었습니다. 1869년 오페르트 도굴사건과 전주 이씨가 멸망한 뒤 묘소는 다소 황폐해졌지만, 왕실 묘라 해서 후세 사람들이 잘 보존하였습니다.
곱게 물든 낙엽을 밟을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참 좋습니다. 충남 가야산 일대의 숲 속의 공기는 맑고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량이 풍부하고, 깊은 심호흡으로 폐 속의 노폐물을 모두 뽑아주는 느낌입니다.
약 2시간 동안 숲길을 걸어온 뒤 출구길에서 발견한 쉼터에서 친구들과 점심 도시락을 이곳에서 함께 나눠 먹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곳 주위에는 화장실이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노란빛의 앙증맞은 국화꽃이 탐스러운 늦가을에 가야산에서 해골 물을 마시고 해탈의 경지에 이러는 원효대사 이야기와 흥선대원군과 남연군 묘에 얽힌 역사 이야기 속에서 옛사람들을 만나는 좋은 가을 여행이었습니다.
이곳 가야산 일대의 상가리 주민분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 판매 전시장도 있습니다. 가얏골밤, 예산사과, 가얏골 표고버섯등 신선한 농산물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