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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경기도 성남시의 '청년배당 지급 조례안'이 시의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했다. 전날 소관 상임위인 문화복지위에서 격론 끝에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각 표결을 통해 간신히 가결됐으며(소속의원 9명 중 새정치민주연합 5명 찬성-새누리당 4명 반대), 25일 오후 5시께 본회의에서도 재적 의원 34명 전원 출석 상태에서 기명 표결을 거쳐 통과됐다(새정치민주연합 18명 찬성-새누리당 16명 반대).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진행된 본회의는 양당의 극명한 의견 대립 속에서 네 차례나 정회를 거듭했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청년배당에 대해 경제부총리·여당대표·보건복지부 등이 나서서 전방위로 압박하는 와중에 성남시가 가까스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아직 사회보장 기본법에 따른 보건복지부와의 '협의'가 남아있긴 하지만, 어쨌든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일련의 진행 과정이 끝났고 내년 1월 1일부터 정책이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 9월 말 입법이 예고된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서울시가 11월 초에 발표한 '청년수당'과 함께 '포퓰리즘' 논란의 중심에 섰고, 박근혜 정권과 여당(중앙의회)의 완강한 반대에 직면한 상태다. 보건복지부(중앙정부)는 '협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예산을 독자 집행한 지자체는 그만큼 지방교부세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그런데도 이재명 성남시장(지방정부)과 뜻을 같이하는 성남시의회의 다수당 새정치민주연합(지방의회)이 조례안을 다수결로 힘겹게 통과시킨 상황이다.

성남시 청년배당의 실시 배경

성남시 청년배당 조례안의 입법예고를 발표하는 이재명 시장.
 성남시 청년배당 조례안의 입법예고를 발표하는 이재명 시장.
ⓒ 성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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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청년배당을 시행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다들 알다시피, 정책 결정자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그중에서 현실화될 수 있는 건 극소수다. 그렇다면 적지 않은 반대 속에서 청년배당이 어떻게 해서 내년 1월 1일 시행확정 단계까지 오게 됐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물론 지자체 정치인들과 공무원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근본적인 원동력은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의 암울한 상황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지난해 12월 진행된 '성남시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 연구' 결과에 의하면, 대학진학률이 80%에 달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청년들은 등록금 등 학비 수준에 대비해 만족도가 매우 낮았다. 학생들은 굉장히 비싼 등록금을 감당해야 하는데 학비 부담자 분포를 보면 무려 75%가 학부모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청년은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전체 조사대상자 중 70%가 넘는 청년이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다.

<성남시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 분석>(2015 성남 사회공헌 워크숍)
 <성남시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 분석>(2015 성남 사회공헌 워크숍)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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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통해 자신의 용돈과 학비를 마련한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일해서 돈을 버는 청년들은 전반적으로 학업 만족도가 낮았다'는 점이다.

매주 적지 않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소모함으로써 학업 몰입도가 저하되고,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의 부족으로 인해 학업성취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취업 상태인 청년들도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으며(평균적으로 주 5.4일·하루 8.7시간의 근로, 평균 임금 174만 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었다.

한편, 소비 구성의 측면에서 보면 생계비와 주거비 및 부채상환금이 상위 소비항목으로 나타났다. 또한 청년들은 특히 생계비와 도서비에서 소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10만 원의 추가소득이 발생한다면 가장 먼저 늘어날 지출 항목으로는 생계비와 저축(자기계발 비용 준비)을 선택했다.

결국 이 시대 한국 청년들은 생계비와 학비 마련을 위해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감내하고 있으며,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과 돈의 부족에 좌절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런 압박을 완화해줄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고,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에게 직접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성남시 청년배당의 구체적 내용

여기저기서 청년 배당 또는 수당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이번에 지방의회를 최종 통과한 '성남시 청년배당 지급 조례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그저 간략히 "3년 이상 주민등록을 둔 만 19∼24세 청년에게 분기당 25만 원씩 연간 100만 원을 지급한다"라고만 말하는데, 이 정책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상세한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

성남시 청년배당 지급 조례안
 성남시 청년배당 지급 조례안
ⓒ 성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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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청년배당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정책의 근본 바탕이 되는 '기본 소득'의 개념부터 명확히 알아야 한다. 보통 기본 소득이라고 하면, 조건 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여기서 '조건 없이'라는 부분은 '보편적 권리'를 의미하는데, 한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공유자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 부분에 대해 당연히 배당받을 권리를 누구나 가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따로 선발요건이나 제한사항이 없이, 정해진 기준에 맞기만 한다면 모든 청년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 기준이 바로 만 19세부터 24세까지, 신청일 기준 성남시에 3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하는 청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만 부합한다면, 무조건 1인당 분기별 25만 원 이내로 관내에서 사용 가능한 지역통화(예를 들면, 성남 지역상품권) 지급 신청을 할 수 있다.

지역통화를 사용하는 이유는 성남시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연간 100만 원으로 정한 건 제한된 예산 내에서 체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나이가 가장 중요하고, 또 지금 당장 성남시로 이사를 가더라도 '3년 이상 거주'의 기준을 충족할 수 없기에 혜택을 당장 받을 수는 없다.

성남시 '청년배당'과 서울시 '청년수당'의 차이점

성남시와 서울시의 두 정책은 명칭이 비슷하다. 하지만, 근본 철학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성남시는 기본소득의 하나로 청년배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는 청년들의 권리인 동시에 성남시의 의무가 된다. 그래서 성남시는 딱히 수급자를 선별하지 않고 기준에 맞는 모든 청년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며(수급률 80% 내외), 청년들은 따로 성남시에 보고할 필요가 없다. 마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투표의 권리가 있듯이, 3년 이상 성남에 거주한 만 19~24세 청년은 누구나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

이 제도의 바탕에는 청년들의 어려움이 단지 개인적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문제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또한 공동체가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모든 구성원이 책임을 나누면서 공평하게 혜택을 받고, '금수저'든 '흙수저'든 동등한 시민으로서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인간의 존엄성을 모두 갖는 것처럼, 우리의 세금으로 청년들에게 차별없이 동일한 도움을 준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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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서울시는 지방정부의 재량 사업으로서 청년수당을 설계했기 때문에, 지원 자격이 따로 정해져 있고 지원자 중에서 서울시 내부 기준에 따라 극히 소수를 선발하는 방식을 취한다(수급률 1% 미만, 6개월 이하 월 50만 원 지원).

서울시의 수당은 청년들에게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부여한다기보다는 그저 여러 가지 복지정책 중에서 비교적 전향적인 하나의 시범사업일 뿐이며, 선정된 이들은 자신의 활동상황을 서울시에 보고할 의무도 있다(기존 방식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결국 단순하게 말하면,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보편적 복지이고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선별적 복지인 셈이다.

그래서 사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을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한데 묶어서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다. 두 정책은 근본 개념부터 다르고, 사업 방식도 엄밀히 따지면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앞에 '청년'이 붙었을 뿐이지 어쨌든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상정하고 만든 정책인데, 당연한 권리로서의 성격이 실질적으로 희박한 서울시 청년수당과 함께 등가비교한다는 것 자체는 부적절하다. 이건 한 마디로 성남시는 '과소평가', 서울시는 '과대평가'인 것으로 이재명이나 박원순 둘 다 억울한 형국이다.

포퓰리즘 프레임의 오남용

청년배당의 문제점을 논하기에 앞서, 흔히 말하는 '포퓰리즘'(Populism)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한국에서는 이 단어를 상당히 안 좋은 쪽으로 이용하지만, 포퓰리즘이라는 용어가 원래 부정적인 뜻만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자 그대로 일반 대중 다수를 대변하려는 움직임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넓은 의미에서는 다수결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역시 일종의 포퓰리즘 체제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포퓰리즘에서 주로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됐지만, 본질적으로는 포퓰리즘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포퓰리즘(populism)
- 특권층과의 투쟁에서 보통 사람들의 권리와 힘을 지지하는 정치적 원칙(프린스턴 용어집)
-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사상 및 활동(캠프리지 사전)

게다가 이재명과 박원순의 청년 복지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낙인 찍는 이들은 대부분 복지 확대에 소극적인 편이다. 익히 알다시피, 한국은 2014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이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이 21.6%라는데, 우리나라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4%에 불과하다. 안 그래도 복지지출을 대폭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복지 확대에 방점을 두는 청년 배당 또는 수당과 같은 정책을 무턱대고 포퓰리즘이라고 몰아세우는 게 도대체 그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무상급식이나 반값등록금도 처음엔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제는 웬만큼 필요한 정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훨씬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복지정책을 본인들이 추진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다른 사람이 하려고 하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건 전혀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무조건 포퓰리즘이라고 낙인 찍기 전에,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수의 대중에게 정말 도움이 될 만한 복지정책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각종 통계자료가 증명하듯이, 현재 한국의 복지 수준이 형편없는 상태라는 건 자명하지 않나.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에 관한 건설적 논쟁은 고사하고, 매우 성격이 다른 서울시의 청년수당과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도매금으로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는 행태는 지극히 부적절하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어차피 선별적 복지정책이니까 세부사항에 대한 갑론을박은 있을 수 있을지언정(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거 빼고는) 기존의 시민 지원 정책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실제 논란이 될 만한 부분도 별로 많지 않다(수혜 기간도 짧다).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기본소득에 바탕을 둔 청년배당이고, 이의 한계를 정리해 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재명 성남시장 페이스북에 올라온 청년배당 관련 이미지
 이재명 성남시장 페이스북에 올라온 청년배당 관련 이미지
ⓒ 이재명 성남시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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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청년배당의 한계

어차피 성남시 청년배당은 지자체 단위에서 펼쳐지는 정책이기에 일정한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특히 현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지역통화를 지급하기에 물리적 한계가 명확하다.

요즘처럼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인 상황에서, 3개월에 한 번 받는 (성남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25만 원 상당의 지역통화가 과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단순 바우처 수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지속적이고 안정적 관리와 지역사회의 능동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청년배당 제도의 특성상 '지속성'과 '안정성'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보다 훨씬 더 큰 함의를 가질 텐데, 성남시는 일단 내년에는 24세 청년에 한해서만 배당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마저도 보건복지부와의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졌을 때 이야기고, 매년 기초자치단체가 예산을 확보하는 문제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성남시로부터 9월 25일에 협의 요청을 받은 보건복지부는 사회보장제도 협의 운용지침에 따라 90일 이내에 지자체와 협의를 마무리해야 한다. 장관 결재를 거쳐 2주 이내에 결과를 통보할 계획인 걸로 알려졌다.

청년배당의 법적 근거가 헌법이나 법률이 아니라 지자체 조례이고 중앙정부와 의회 다수당이 반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지속성이나 안정성이 현재로써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배당을 직접 받는 청년들 입장에서는 곧바로 변화를 느낄 수 있겠지만, 이걸 객관적인 지표로 산출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확실히 인정받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 중앙정부에 홀로 맞서는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다른 지자체의 인정과 모방이 중요할 텐데, 그에 필요한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걸릴 수도 있다. 결국 청년배당이 포퓰리즘 정책이든 아니든, 선거 결과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성남시의 '청년배당 지급 조례안'은 상임위에서는 5-4로, 본회의에서는 18-16으로 간신히 통과됐다. 제아무리 이재명 시장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시의회에서 막히면 궁지에 몰리게 된다. 만약 다수당이 새누리당이었으면, 청년배당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발표되는 중앙선관위 자료를 보면 청년들의 투표율이 특히 낮은데, 향후 선거에서 청년들이 더 참여하지 않으면 청년배당은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 진정한 의미의 포퓰리즘은 바로 이럴 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재와 같이 청년수당과 청년배당의 근본적 차이도 구별하지 않고서 2~3년 시행되다가 제대로 된 평가도 없이 청년 복지정책이 사라진다면, '종북' 망령처럼 포퓰리즘 낙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미 초저성장 장기불황 시대에 접어든 대한민국이 최저 출산율과 최고 수준의 자살률(10~30대 청년들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상태의 '헬조선'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복지를 확대해 건실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의미한 포퓰리즘 논란이 아니라, 각 복지정책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냉정한 평가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arthurjung.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청년배당, #청년수당, #이재명, #성남시,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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