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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좋아하는 깔리 여신. 피를 대신해 붉은 가루를 뿌린다
 피를 좋아하는 깔리 여신. 피를 대신해 붉은 가루를 뿌린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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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오후 3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홍콩을 거쳐 인도 콜카타 국제공항에 내린 시각은 밤 12시. 하늘 위에서 본 콜카타는 안개에 잠긴 듯 뿌옇게 흐려있었고 드문드문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우리 왔다고 폭죽까지 터트리고, 뭐 이런 환대까지..."

농담을 하며 공항청사 밖으로 나오니 안개인 듯 매연인 듯 뿌연 공기와 함께 진한 화약냄새가 숨막힐 듯한 우리의 일정을 예견하게 한다.   

"어제 12일이 디왈리 푸자(Diwali Puja : 힌두 달력 여덟 번째 달, 초승달이 뜨는 날을 중심으로 닷새 동안 집과 사원 등에 등불을 밝히고 힌두의 신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전통축제) 마지막 날이라서 인도 전역이 화약 연기로 가득해요. 

앞으로도 며칠간은 푸자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축제가 진행되죠. 매연도 매연이지만 폭죽을 너무 많이 터트려서 새벽녘에는 화약 연기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구요. 그래서 자동차 사고도 많고 화재도 많이 일어나지요. 하지만 이런 축제가 인도를 먹여 살리는 것 같기도 해요. 축제를 위해 일하고 저축하고 준비하며 일생을 보내는 거죠."

며칠만 일찍 왔더라면 인도 최대의 축제를 직접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인도에서의 첫 밤을 맞았다. 인도를 사랑했던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처럼 나도 인도에서 잃어버린(?)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삶과 죽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붙잡고 놓지 못했던 물질적 가치를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인가?

요가 선생이 그토록 강조하던 선(禪)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님 발견한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피곤해서 그랬는지 이런저런 잡념들 속에서 복잡한 꿈을 꾼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니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더 테레사가 임종 전까지 봉사했다는 깔리갓센터

깔리신전에 세례의식을 하러 온 아이
 깔리신전에 세례의식을 하러 온 아이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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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을 잤을까 눈이 떠졌다. 한국에서는 아침 식사를 하고도 남을 시간인 9시 30분, 이곳은 오전 6시. 한국과는 3시간 30분의 시차. 인도식 아침식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기름에 튀긴 빵 로티에 북인도식 카레. 향이 너무 강해서 거부감이 들면 어쩌나 했지만 웬걸 너무나 맛있기만 하다. 커피대신 향긋한 짜이(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은 인도차)와 새콤달콤한 라씨(요거트 음료)까지 먹고 나니 콧노래처럼 "나마스테(안녕하세요)"가 절로 나온다.

즐겁게 아침 식사를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호텔을 나오니 오마이갓! 차가 막혀도 막혀도 너~무 막힌다. 차선도 없는 도로에 사람과 릭샤와 오토릭샤, 자전거와 오토바이 심지어 트램까지 온갖 교통수단이 뒤엉켜 달리는데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와 차와 사람 사이를 스치듯 달리는 묘기운전까지... 매연과 소음, 어딜가나 가득한 차량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내릴 때는 온몸이 뻐근할 정도였다. 심지어 콜카타의 자동차들은 대부분 사이드 미러가 없었다. 인도의 운전기사들은 누구나 '운전의 신'인 모양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깔리템플과 마더 테레사가 임종 전까지 봉사를 했다는 깔리갓센터. 콜카타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깔리여신은 전쟁과 폭력, 싸움과 피의 신으로 검은 얼굴에 세 개의 눈이 있으며 붉은 혀를 길게 내민 모습이 기이하고 위협적이다. 한손에는 잘린 악마의 머리를 다른 손엔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를 받기 위한 해골을 들고 남편인 시바신 조차 두발로 밟고 당당히 서 있는 깔리여신.

문득 전투적이고 공포스러운 여신의 모습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인도의 여성들의 마음에 힘과 위로가 되어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보니 깔리 여신은 출산과 건강, 부부의 금슬, 행복한 가정을 지켜주는 신이란다. 아이와 동행한 여성 참배객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쓰레기가 넘치는 강에 동전과 제물을 던져 넣으며 복을 비는 사람들과 쓰레기 속에 던져진 동전을 주으러 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쓰레기가 넘치는 강에 동전과 제물을 던져 넣으며 복을 비는 사람들과 쓰레기 속에 던져진 동전을 주으러 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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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처녀의 피를 즐기는 칼리여신을 위해 사원에서는 매일 산 동물의 피를 바치는 제사를 드린다. 예전에는 실제 처녀 제사를 드리기도 했고 어느 지역에서는 처녀제사가 드려지고 있다고도 하지만 지금은 사람대신 동물의 목을 잘라 그 피를 바치는 것으로 제사를 대신 한다. 사원에 들어선 우리 일행과 함께 검은 염소를 끌고 온 인도인들이 들어온다.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음메 소리를 내며 쑤걱쑤걱 따라 들어오는 염소가 측은하기만 하다.   

두려운 마음에 돌아서려 했지만 이미 나는 거스를 수 없는 행렬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떠밀리듯 행진하는 인파들 속에 염소의 비명소리와 함께 자지러질 듯한 종소리, 징소리, 피리소리, 주문 외는 소리에 피비린내를 덮고도 남을 만큼 진한 향내와 오물들이 부패하는 냄새들이 뒤엉켜 정신이 혼미할 정도쯤에 우리는 사원 밖으로 토해지듯 밀려 나왔다. 그리고 몇 걸음을 걸어 잠시 전의 아수라장과는 전혀 다른 장면 앞에서 말을 잊었다.

마데 데레사가 죽기 직전까지 봉사의 손을 멈추지 않았던 곳 깔리갓센터. 그곳은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 그들을 돕는 손길들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환자를 치료하고 누군가는 목욕을 시키고 누군가는 밥을 먹이며 누군가는 그들의 옷을 빨고, 기우고 또 누군가는 그들의 침상과 화장실을 청소한다. 비명소리도 지독한 향내도 없이 그저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평화로운 얼굴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늙고 병들고 온몸이 틀어지고 망가졌을지언정 얼굴에는 평온이 가득했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깔리탬플 옆에 있는 깔리갓센터. 마더테레사가 임종 전까지 봉사했던 곳으로 일종의 호스피스센터.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라고도 하다.
 깔리탬플 옆에 있는 깔리갓센터. 마더테레사가 임종 전까지 봉사했던 곳으로 일종의 호스피스센터.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라고도 하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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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리갓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테레사수녀가 임종을 맞이한 집이 있다. 봉사와 헌신을 위해 세계각국에서 성직자와 봉사자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깔리갓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테레사수녀가 임종을 맞이한 집이 있다. 봉사와 헌신을 위해 세계각국에서 성직자와 봉사자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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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첫날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번 여행의 결론을 이곳에서 내릴 뻔했다. 그만큼 나에게는 깊은 인상을 준 곳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오신 수녀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야위고 수척하며 연로하셨지만 따뜻한 눈빛과 미소가 마치 마더 테레사의 현신을 보는 듯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수녀님을 안고 한참 눈물을 흘렸다. 죽음 앞에 아무렇게나 버려질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일. 그것은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나의 값싼 눈물조차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깔리갓센터에서 나오니 사람들이 보인다. 누더기를 입고 쓰레기장과 같은 길에 누워 잠이든 사람들. 그 곁을 어슬렁거리는 주인 없는 개들과 지나는 행인을 향해 손을 벌린 구걸하는 아이들과 여인들, 좀 전에 제물로 바쳐졌던 염소고기를 파는 사람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염소가죽을 어깨에 걸치고 가는 사람들... 매서운 눈으로 광장 위를 빙빙 도는 까마귀들... 마더테레사가 보았던 인도 역시 저런 모습이었겠지.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왔다. 나는 왜 인도에 온 것일까.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인도여행, #꼴까타, #깔리탬플, #깔리갓센터, #마더테레사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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