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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역 앞을 흐르는 북한강. 가문 날이 오래돼 여기 저기 바위들이 수면 위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강촌역 앞을 흐르는 북한강. 가문 날이 오래돼 여기 저기 바위들이 수면 위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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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 하면 떠오르는 추억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친구들과 함께 기차여행을 떠났을 때이고, 또 하나는 가족들과 함께 여름철 휴가여행을 떠났을 때이다. 두 가지 모두, 강촌을 매우 특별했던 장소로 떠올리게 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행복했던 기억들이다. 그 기억들 모두 이제는 오래 전 과거 속 옛일이 되고 말아서 더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은 청량리역에서부터 시작된다. 주말이나 방학 때가 되면, 청량리역 앞 광장은 경춘선 열차에 올라타려는 젊은 청춘들로 넘쳐났다. 어느 여름날, 강촌으로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친구들은 별 생각 없이 '청량리역 앞'을 약속장소로 지정하는 바람에, 역 앞 광장에서 서로를 찾아 헤매느라 곤욕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고행에 고행을 거듭했다. 열차 안 역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대기는 마찬가지였다. 열차 안에선 입석이 기본이었다. 좌석을 잡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열차는 왜 또 그렇게 느린지, 2시간여 거리를 서서 가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힘들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기차여행은 으레 다 그런 걸로 여겼다. 그만한 고생 없이, 어떻게 여행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긴 그때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둘기호를 타고 8시간 이상을 서서 가곤 하던 시절이었으니, 강촌을 여행하는 고행쯤은 아마 별스럽지도 않은 일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차 안에서는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강촌역.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역으로서의 기능을 마감했다.
 지금은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강촌역.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역으로서의 기능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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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역. 아스팔트로 덮인 철길.
 강촌역. 아스팔트로 덮인 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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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두 번쯤 다녀간 추억이 있는 강촌

웃고 떠들다 보면, 힘들고 괴로운 일 따윈 금방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힘들고 괴로운 일마저 추억으로 남았다. 그게 또 기차여행을 하는 매력이었다. 강촌까지 가는 기차여행이 그렇게까지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는 철로 변으로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경도 한몫했다. 기차 안에서 내려다보는 북한강이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옛날 경춘선은 북한강과 나란히 달렸다. 기차가 달리면서 연이어 나타나는 북한강 강변 풍경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차창 너머로 새로운 풍경이 나타날 때마다 승객들이 높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고는 그 풍경을 좀 더 자세히 바라다보려고 이편에서 저편으로 자리를 옮겨 다녔다. 그로 인해 기차가 기우뚱거릴 때도 있었다.

그 다음에 떠오르는 추억은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결혼 후 아이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을 때의 일이다. 동해안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길에, 시간이 남아 강촌에 차를 세우게 됐다. 젊어서 놀러 다닌 추억도 있고, 강촌이 그새 또 어떻게 변했는지도 궁금했다. 강촌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강촌역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강촌 억새밭.
 강촌 억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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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큼이나 맑고 깨끗했다. 사람들이 강변 모래사장에 텐트를 치고는 강물에 들어가 멱을 감았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강촌은 어린아이가 있는 부모들이 즐겨찾는 물놀이 장소였다. 그 물에서 누군가 수영을 하거나 보트를 탔다. 밤이 되면, 누군가는 또 갈대숲에서 산책을 하거나 텐트 주변에 모닥불을 피웠다.

이래저래 강촌은 지독히 낭만적인 곳이었다. 청춘 남녀들에게 강촌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데이트 명소 중에 하나였다. 그 시절 젊은 연인들치고 강촌에 얽힌 추억 하나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밤기차를 타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도 꽤 낭만적이었다.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 밖으로 하나둘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작은 불빛들이 마치 밤하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

강촌대교에서 내려다 본 풍경.
 강촌대교에서 내려다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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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출렁다리(등선교)는 사라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교각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1985년에 출렁다리(등선교)는 사라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교각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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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만 남은 출렁다리, '유물'로 남은 강촌역

그 사이 세월이 흘러 강촌도 많이 변했다. 경춘선은 몇 년 전 새로 개설된 경춘선 복선전철에 자리를 내주고, 지금은 그 흔적을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다. 옛날에 통기타를 둘러메고 강촌으로 여행을 떠나던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철로 중 일부는 '레일바이크'가 되고, 일부는 '자전거도로'로 남았다. 기차가 지나다니던 길로 자전거가 지나갈 줄을 누가 알았을까?

청량리역은 세련된 현대식 역사로 바뀌었다. 통일호 같이 느린 열차는 이미 오래 전에 퇴출됐다. 이제 강촌으로 기차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청량리역이 아닌 상봉역을 이용해야 한다. 상봉역이 청량리역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옛날 강촌역은 '유물'로 남았다. 새로 생긴 강촌역은 '강촌'이란 말이 무색하게 산 속을 지나다니는 철길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강촌대교. 강가에서 4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
 강촌대교. 강가에서 4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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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건설되는 강촌2대교. 모래사장이 자갈밭으로 변했다.
 새로 건설되는 강촌2대교. 모래사장이 자갈밭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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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모래사장은 옛날에 그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됐다. 당연히 예전에 그곳에서 수영을 즐기던 일 따윈 기억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먼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강촌을 상징하는 명물 중에 하나인 '출렁다리'는 강변 이편과 저편에 교각만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곳에 출렁다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겨우 사진 몇 장으로 남아 있다.

강촌과 삼악산을 오가며, 등산객들을 실어 나르던 통통배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여행을 하고 나서는 다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삼악산 등산길을 오르던 시절의 낭만도 함께 사라졌다. 강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아쉬운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옛날 강촌을 상징하던 명물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해서, 강촌이라는 이름의 낭만마저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강촌이 요즘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하고 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요사이 강촌을 찾는 사람들은 예전에 이곳을 찾곤 했던 사람들이 만들었던 것과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있는 게 분명하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서, 강촌을 여행하고 추억하는 방식도 거기에 맞게 새로이 변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7,80년대 출렁다리에 얽힌 추억를 되살리기 위해 강촌천 위에 새로 건설한 출렁다리.
 7,80년대 출렁다리에 얽힌 추억를 되살리기 위해 강촌천 위에 새로 건설한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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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역 앞 출렁다리에서 찍은 옛날 사진들.
 강촌역 앞 출렁다리에서 찍은 옛날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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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에 불어닥친 변화, 새로 만들어지는 추억들

강촌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 하나가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북한강 강변 철길 위로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지면서, 강촌으로 자전거를 타러 오는 사람들도 점점 더 늘고 있다. 강촌에 개설된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면, 강촌역 주변에서부터 구곡폭포가 있는 곳까지 갔다 올 수도 있다. 자전거도로 위를 달리는 자전거여행객들로 강촌이 소란스럽다.

하지만 강촌을 진짜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건 따로 있다. 강촌대교 위에서 내려다보면, 강변으로 4륜 오토바이들이 떼를 지어 질주하는 광경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굉음을 내며 지나다니는 4륜 오토바이들이 조금 낯설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 4륜 오토바이들이 강촌의 또 다른 명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현실 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강촌대교 옆에 새로 건설되는 강촌2대교. 강변에 4륜 오토바이를 타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강촌대교 옆에 새로 건설되는 강촌2대교. 강변에 4륜 오토바이를 타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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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역에서 레일바이크를 타고 온 사람들이 강촌역에 내려 셔틀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기차는 레일바이크 도착지에서 강촌역까지 운행하는 낭만열차.
 김유정역에서 레일바이크를 타고 온 사람들이 강촌역에 내려 셔틀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기차는 레일바이크 도착지에서 강촌역까지 운행하는 낭만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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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역이 된 옛날 강촌역은 기차가 아닌 레일바이크를 타고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김유정역에서 레일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곳 강촌역 근처 도착지에 내려서는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김유정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산을 떨고 있다. 이런 풍경 또한 과거에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다. 지금은 이 레일바이크가 강촌을 기억하는 또 다른 요소가 되고 있다.

모래사장이 있던 강변에서 강촌대교를 올려다보니, 다리 상판 측면에 '수영 금지'라고 적힌 붉은 글씨가 선명하다. 저 글씨는 언제부터 저렇게 쓰여 있었던 것일까? 강촌에서 수영을 하던 기억이 불과 20년 전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게 변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가올 20년 뒤, '수영 금지' 글씨가 지워져 있길 바라는 건 너무 속없는 욕심일까?

강촌은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현재 강촌대교 옆으로 매우 우람해 보이는 '강촌 제2대교'가 건설되고 있다. 강촌대교가 깡통로봇이라면 강촌 제2대교는 로봇 태권브이쯤 될 것 같다. 사물이 변하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인간의 감성이 제대로 보조를 맞추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강촌이 '깡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하루다.

강촌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요즘 강촌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풍경이다.
 강촌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요즘 강촌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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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촌, #강촌역, #출렁다리, #레일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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