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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3일 경남 합천군 표곡면 내천리 친척집에서 머물고 있던 전두환씨가 검찰수사관에 의해 팔짱을 껴인채 안양교도소로 압송되기위해 숙소를 나서고 있다.
 1995년 12월 3일 경남 합천군 표곡면 내천리 친척집에서 머물고 있던 전두환씨가 검찰수사관에 의해 팔짱을 껴인채 안양교도소로 압송되기위해 숙소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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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대에서 군생활을 하던 1995년 12월 2일 야간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토요일 저녁이라 내무반에서 휴식을 취하던 부대원들은 급하게 닭장차로 조롱받던 경찰버스에 올라 행선지도 모른 채 어두운 밤길을 달렸다. 도착한 곳은 경남 합천이었다.

그날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특별법 제정과 자신의 처벌이 현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타개책이라고 비판하며 검찰의 소환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며 소위 '골목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 전두환의 고향이 합천이었던 것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수사를 지시했지만 1995년 7월 검찰은 12.12및 5.18 사건 관련자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불기소처분을 내렸고, 이는 사회 각계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대학생들과 시민단체들의 시위와 집회는 계속되었고 군생활을 하던 나를 포함한 동료 부대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현장을 돌아다녔다. 김영삼 대통령도 분노했다.

"그렇게 발표한 검사를 내가 혼을 내줬습니다. 뭐 독일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래요. 어디서 지식을 알아도 말이야, 그런 거 못된 거 배워 가지고 말이야. 써먹고 그런다고…" < 故 김영삼 전 대통령/SBS 한국현대사 증언 中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소급효금지라는 일반적인 법 상식을 깨고 5.18 특별법을 제정해 상황을 뒤집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TV에 나와 자신의 입장을 발표하는 김 대통령은 너무 당당하고 멋있었다. 12·12 및 5·18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들어간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3차장)는 이 사건의 핵심 피고소고발인인 전두환에 대해 서울지법으로부터 내란 및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12월 3일 새벽 합천에서 집행했고, 내가 복무했던 부대는 그 역사적인 자리에 있었다. 물론 별다른 상황이 없어 버스 안에서 간식으로 지급된 빵을 먹으며 밤새 대기만 했었지만...

1996년 제대한 후 이듬해 학교에 복학했다. 지방대학이었지만 선배들은 대기업이나 탄탄한 중견기업에 쉽게 취직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취직한 선배들의 신입사원 분투기를 들으며 술을 얻어먹었다. 하지만 그 해 1997년 12월 3일 뉴스에서는 임창렬 당시 경제부총리가 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대가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하루 종일 흘러 나오며 대한민국의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취임 초기 새까맣게 염색해서 언론에 등장하던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말기 차남 현철씨의 구속과 경제위기를 맞고 하얀 백발의 노인으로 힘없이 TV에 나왔다.

그 해, 그리고 다음 해 선배들의 취업 소식은 그 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재학생들의 공무원 시험준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IMF사태가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대기업들이 하나둘씩 망했고, 금융 분야에서는 BIS자기자본비율이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들로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또한 긴축재정정책과 긴축금융정책으로 총수요가 줄어 기업과 금융권의 퇴출은 계속되었고 노동자의 정리해고 등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더 힘들어져 갔다. 2001년 IMF의 그늘은 벗어났으나 IMF란 단어는 지금까지도 일반 국민들의 머릿 속에는 아픔의 시작이다.

'역사바로세우기 대상' 전두환, 아직 살아서 여당 대선후보 인사 받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서거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역사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이제 역사가 그의 공과 과를 기록할 것이다. 독재권력에 맞선 민주화운동, 역사바로세우기, 금융실명제 실시, 하나회 척결 등 그의 공이지만 지금의 비뚤어진 정치환경과 지역주의의 심화를 일으킨 3당 합당과 IMF사태는 그의 과로 평가받고 있다.

3당합당으로 고착화된, 일그러진 지역주의와 세대갈등은 그 깊이가 더해가고 있고, IMF사태의 여파는 우리나라 경제구조와 국민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고 빈부의 격차는 OECD최고수준으로 악화되었다. 또한 2015년 오늘 김영삼 대통령의 공으로 평가 받는 민주화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급격하게 후퇴하고 있고, 역사바로세우기의 대상이었던 전두환은 아직까지 살아서 여당의 대선후보에게 인사 받으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쿠데타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쿠데타라고 했으나 박근혜 정부의 주요 장관과 여당 의원들은 5.16 쿠데타에 대해 쿠데타라고 말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정교과서를 통해 쿠데타에 의해 권력을 찬탈한 독재정권을 미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역사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진보한다고 하지만 그 말이 요즘엔 무색해진다. 여러 가지 생각이 혼란스럽고 안타까운 오늘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12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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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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