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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규에 마을 뒷산을 오르며 담은 마을 전경
▲ Chateau de Vogue 보규에 마을 뒷산을 오르며 담은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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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만큼 보인다."

여행길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이 말은 진실이다.

프랑스하면 대도시 '파리'를 떠올리지만, 프랑스에는 파리만 있는 것이 아닐 터이다. 회의차 떠난 프랑스 초행길이었지만, 여행도 상정하면서 프랑스여행과 관련된 도서도 구입하여 꼼꼼하게 읽었다. 그러나, 여행안내서는 유명한 관광지 중심으로 설명을 해놓았기에 대체로 내가 방문하는 곳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설명이거나 혹은 아예 다뤄지지 않은 게 대부분이었다.

아침 산책길에 걷게 된 '보규에' 역시도 내가 구입한 프랑스여행과 관련된 도서에는 소개가 없었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미묘한 단어 차이 때문에 패션잡지 <보그>가 나오거나 포도주 '보귀에'가 검색되었다. 그래서 그냥, 포도주 생산으로 굉장히 유명한 곳인가 보다 생각했다.

떠오르는 햇살에 서서히 깨어나는 중세의 성 보규에
▲ Chateau de Vogue 떠오르는 햇살에 서서히 깨어나는 중세의 성 보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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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다음에 큰 대도시 리옹에서 보규에 마을 근처의 숙소에 도착한 것은 전날 저녁이었다. 보규에는 파리의 남서쪽 중간지점에 있는데 리옹과 몽펠리에 중간쯤에 위치한 마을이다. 회의 일정을 따라 분주하게 이동하는 가운데, 차창으로 얼핏 보규에를 보았다.

아직 얼마나 더 가야 목적지에 이를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마음 속으로만 '아, 저런 곳에 가서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에 바쁜 일정이 야속했다. 그런데, 잠시 후 숙소에 도착했고, 그곳은 걸어서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내일 아침, 회의가 시작되기 전 일찍 산책을 하면 그 마을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일찌감치 잠에 빠져들고자 했다. 그러나 파리 테러 소식으로 뒤숭숭하여 알아듣지도 못할 프랑스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추이를 지켜보다 잠이 깨버렸다.

산꼭대기 채석장 아래에 있는 기도실, 지금은 자료관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 Chateau de Vogue 산꼭대기 채석장 아래에 있는 기도실, 지금은 자료관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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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쯤일까?'

가늠할 수가 없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르데슈 계곡'이 숙소 옆에 있었기에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에 잠을 설쳤다.

동이 트자마자 일어나니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두어 시간 정도 된다. 어제 회의장소에 오면서 보았던 마을은 그리 멀지 않았고, 마을을 안내하는 게시판을 보면서 그곳이 '보규에 가문의 성'이며, 17세기에 새롭게 단장한 중세의 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로마네스트 양식으로 건축된 예배당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돌산의 돌을 다듬어 지은 중세의 건물들 사이를 돌고 돌아 올라가니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올라갈 수 없었을 것 같았던 작은 예배당 모양의 건물에 다다르게 된다. 과거에는 기도처로 사용되었음직한 곳에는 이런저런 자료사진들이 놓여져 있었고, 예배당 뒤쪽은 산 정상으로 채석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의 돌담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정상에 오를 수 있고, 산 정상엔 건축재료가 되었던 돌을 다듬는 채석장이 있었다.
▲ Chateau de Vogue 마을의 돌담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정상에 오를 수 있고, 산 정상엔 건축재료가 되었던 돌을 다듬는 채석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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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머에는 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 마을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중세 영주의 성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니 강이라고 해야할지 계곡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아르 데슈'(이름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다)계곡이 흐르고 있었고, 마을로 들어올 때 본 그곳에는 연어인지 열목어인지 모를 고기 수천마리가 물 속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바다와 이어져 있다면 연어일 것이고, 단절되어 있다면 열목어일 것이다.

그저 그냥 바라보면서 '루어낚시하면 끝내 주겠는데?'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 대한 무지가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Gadabielle 광장에 대한 설명과 보규에 가문의 닭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돌판
▲ Chateau de Vogue Gadabielle 광장에 대한 설명과 보규에 가문의 닭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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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에 능통하지 못하니 커다란 제목들을 더듬어가며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한다.

이곳이 광장이며, 보규에 가문의 문양은 닭 모양이구나 정도의 정보를 얻는다. 차후에 그곳을 떠나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해 본 결과 '보규에 가문'은 지금도 프랑스에서 소위 잘 나가는 가문이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할 수많은 사실들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 대한 사전의 정보가 있었다면, 훨씬 풍부한 여행이 되었을 터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다. 보아도 보지 못하는, 소경 같은 여행이 이런 여행이 아닐까 싶었다.

아르데슈 계곡(L' Ardeche)이 마을 앞을 지나고 있다.
▲ Chateau de Vogue 아르데슈 계곡(L' Ardeche)이 마을 앞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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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마치고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일행에게 가히 천 마리는 넘을 정도가 되는 팔뚝만한 연어를 보았다며 핸드폰으로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들 역시도 숙소가 어디쯤인지 모르는 상황이고, 산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니 연어다 아니다 설왕설래 말이 많았다. 연어라면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분의 목소리가 가장 컸고, 그래서 '그래, 연어가 아니고 열목어!" 하고 결론을 내버렸다.

이런 결론이야 잘못되어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이런 식의 결론을 낸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을 자초할 수 있는가? 그란데 어쩌면 우리 일상에서는 이런 결론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보규에 마을의 골목길
▲ Chateau de Vogue 보규에 마을의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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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17세기에 이런 건물을 이 곳에 어떻게 지을 수 있었을까?

건축과정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의 이름이나 흔적은 없고, 강제노동을 시켰던 영주의 이름만 남아있고, 그들만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갑자기 무거워 진다.

보규에의 골목길
▲ Chateau de Vogue 보규에의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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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마을 주민들이 보이질 않는다.

늦가을의 프랑스는 밤이 길다. 5시경에 해가 지고, 거반 8시나 되어야 해가 뜬다. 그러니까 12시간 이상 어둠의 시간인 셈이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요즘 프랑스는 출산률이 높다는 현지인의 이야기에 "밤이 기니까"라고 농을 던졌다. 그런데, 그 농이 통하기는 한 걸까? 모르겠다.

보규에 마을의 골목길
▲ Chateau de Vogue 보규에 마을의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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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을로 들어서서 산 정상에 있는 채석장까지 돌아 내려오니 한 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냥 천천히 걸었고, 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완만했기에 숨차지도 않았다.

마을 전체 골목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도 서너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작은 마을이지만, 보규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라고도 하고,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도 한단다.

마을 근처에는 내가 묵었던 도멘 루 카피뗄(Domaine Lou Capitelle)이라는 숙소도 있는데 5성급 숙박업소로 훌륭한 편이다. 아르데슈 계곡(강)에서의 레포츠와 함께하면 아주 좋은 휴양지일 것 같다. 물론, 현지인들에게 말이다.

프랑스 리옹과 몽펠리에 중간지점에 있는 중세의 성이 있는 마을로,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라고 한다.
▲ Chateau de Vogue 프랑스 리옹과 몽펠리에 중간지점에 있는 중세의 성이 있는 마을로,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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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한 여행지에는 소개되지 않은 곳, 그리고 인터넷에서 애써 검색해야 찾을 수 있고, 정보도 그리 많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알지 못하고, 먼저 눈과 몸으로 느끼고 그곳을 알아가는 상황이었지만, 그래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은 여행이었다.

함께 한 일행은 대부분 연일 이어지는 회의 때문에 피곤한 몸을 쉬느라 숙소 곁에 있는 마을임에도 산책도 못했는데, 나는 그래도 그곳을 거니는 행운을 얻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마, 내 평생에 프랑스 여행을 다시 한다고 해도 가기 쉽지 않은 곳이었으니, 아마도 보규에는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지일 것이다.


태그:#보규에, #프랑스여행, #프랑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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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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