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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그중에서도 범죄소설의 역사를 장식했던 수많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 작가들을 대표작품 위주로 한 명씩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주로 영미권의 작가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싸이코>의 샤워신은 몇 년 전 미국의 영화 및 대중문화 전문 사이트 레트로크러시에서 역대 가장 무서운 영화장면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싸이코>의 샤워신은 몇 년 전 미국의 영화 및 대중문화 전문 사이트 레트로크러시에서 역대 가장 무서운 영화장면 1위로 꼽히기도 했다.
ⓒ 알프레드 히치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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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편의 장편과 단편을 발표했지만, 그 중에서 단 한두 편만으로 독자들의 기억에 남는 작가들이 있다. 로버트 블록(1917-1994)도 그런 경우다. 그는 작가 활동을 하면서 20편이 넘는 장편과 200편이 넘는 단편을 발표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를 <사이코> 한 편으로 기억한다.

범죄소설 중에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만든 작품들이 있다. <사이코>(1959)도 그런 작품이다. <사이코>는 1957년에 검거된 연쇄살인범 에드 게인의 살인행각을 모델로 한다.

미국 위스콘신 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살던 에드 게인은 우연한 기회로 검거될 때까지 수많은 여성들을 납치해서 살해한 후에 그 가죽을 벗겼던 인물이다.

게인은 살해당한 여성의 가죽으로 조끼와 의자 등을 만들었고,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그 가죽을 뒤집어쓰고 파티를 벌였다.

게인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을 죽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게인이 검거되자 매스컴에서는 그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이 사건은 워낙 엽기적이라서 이후에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로버트 블록은 이 사건의 인물과 배경을 빌려와서 <사이코>를 만들어 낸다. 에드 게인이 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살았던 외딴 농가를 시골의 모텔로 바꾸고, 어머니를 의존하면서도 증오하는 노만 베이츠를 은둔형 외톨이 비슷한 인물로 창조한다.

실제로 에드 게인도 평소에는 거의 외출이 없었고 주위에서는 그를 가리켜서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이코>의 노만 베이츠도 비슷한 인상이다. 작품 속에서 마을의 보안관은 노만 베이츠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좀 특이한 사람이고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짓을 저지를 타입은 아니라고.

하긴 살인범 중에서 흔히 말하는 '범죄형'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연쇄살인범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친절하고 소탈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그 평범한 외모안에 어떤 잔인한 본성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문제인 것이다.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역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살인마 에드 게인

영화 <사이코>의 포스터
 영화 <사이코>의 포스터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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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의 주인공 노만 베이츠는 40살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와 함께 외딴 곳에서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 결혼은커녕 베이츠는 그동안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식탁에 마주 앉아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다.

베이츠가 이렇게 된 데에는 그에 대한 어머니의 비틀린 집착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베이츠에게 이성을 멀리하라고, 이성을 가까이 하고 성관계를 맺으면 지옥불에 떨어지는 벌을 받는다고 가르쳐왔다. 여기에는 베이츠를 낳자마자 무책임하게 달아나버린 남편에 대한 기억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집착은 이성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베이츠에게 술과 담배도 하지 못하게 했고 걸핏하면 심한 잔소리와 폭언을 늘어놓았다. 베이츠는 모텔 일이 끝나고나면 고풍스러운 방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을 즐겼다. 어머니는 베이츠에게 '그런 쓰레기 같은 책을 멀리하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너는 남자다운 기질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마마보이'다, 너는 이 집을 벗어날 능력조차 없다, 너는 나를 죽이고 싶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한테는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말이 맞지, 노만 베이츠?

비가 내리는 밤, 이 모텔에 메어리 크레인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찾아온다. 낡은 차를 몰고 온 메어리에게 베이츠는 1인용 방 하나를 내주고 그녀와 식탁에 마주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한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메어리와 함께 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윗층에 있던 어머니가 엿들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안그래도 제정신이 아닌 어머니가 이 집에 젊은 여자가 혼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데.

모텔을 운영하며 서로에게 집착하는 모자

이 작품은 이후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의해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된다. 히치콕 감독의 최고 걸작이자, 그 유명한 '샤워신(shower scene)'이 있던 영화 <사이코>가 원작보다 더 커다랗게 히트를 하면서 로버트 블록의 이름도 덩달아서 유명해진다.

영화가 성공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히치콕 감독의 연출력이 한몫을 했을 테지만, 그에 못지 않게 원작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탄탄한 구성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영화 <사이코>에서 노만 베이츠 역을 맡았던 안소니 퍼킨스는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고, 이 배역에 대한 미련 또는 집착을 계속 이어간다. <사이코>는 이후에 <사이코 2>, <사이코 3> 등의 후속작으로 이어지지만 당연히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1편 만큼 성공하지 못한다. <사이코 3>에서는 안소니 퍼킨스가 감독과 주연을 겸하기도 했다.

장기간 동안 지속적인 억압을 받으면 사람은 탈출구를 찾기 마련이다. 그것은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물리적인 탈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내면 어딘가로 달아나는 정신적인 탈출일 수도 있다. 노만 베이츠는 후자를 택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인격을 분열시킨다.

하나는 어머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로서의 자신이다. 다른 하나는 모텔을 운영하면서 평범한 생활을 해나가는 성인으로서의 노만 베이츠다.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면 베이츠는 어린아이가 된다. 대신에 성인 남성이 해야할 일이 생겨나면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온다.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오더라도 그가 과연 얼마나 선악의 판단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베이츠는 분열된 인격 사이를 오가면서 나름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외부의 자극 같은 요인으로 두 인격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

외딴 모텔에서 연속살인사건이 발생하지만, 그 살인은 작품의 실제 모델인 에드 게인의 범죄보다는 훨씬 덜 끔찍하다. 작가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현실의 범죄를 따라가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의 세계가 잔인하더라도 현실은 항상 그보다 더 잔인하기 때문이다. <사이코>는 무엇보다도 '사이코'라는 단어를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이다. 원작자 로버트 블록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일을 해낸 셈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싸이코

로버트 블록 지음, 정태원 옮김, 도서출판 다시(2004)


태그:#사이코, #로버트 블록, #알프레드 히치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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