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이끈 김인식 리더십 지난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가 8-0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나며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경기 후 선수들이 마운드 위에 모여 김인식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 우승 이끈 김인식 리더십 지난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가 8-0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나며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경기 후 선수들이 마운드 위에 모여 김인식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2015 프리미어 12 정상에 오르며 영광의 순간을 이끈 '국민 감독'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도 재조명받고 있다.

김인식 감독은 야구계 원로이자 대표적인 덕장으로 평가받는다. 두산에서 한국시리즈 우승만 두 번이나 차지했고 쌍방울, 한화 등을 거치며 감독으로서만 무려 980승(역대 3위)을 거뒀다. 류현진, 김태균, 홍성흔, 김동주 등 그가 발굴하고 길러낸 선수 중 슈퍼스타나 지도자로 성장한 선수들로 수두룩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인식 감독에게 '국민 감독'이라는 별명을 안긴 것은 역시 국제무대에서도 남긴 강렬한 인상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야구의 국제적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김인식 감독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 2006년 초대 WBC 4강, 2009년 2회 대회 때는 준우승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일궈내며 한국야구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국가의 부름에 항상 응답했던 김인식 감독

김인식 감독, 1위로 돌아간다 지난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를 앞두고 대한민국 대표팀 김인식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김인식 감독, 1위로 돌아간다 지난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 결승전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를 앞두고 대한민국 대표팀 김인식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여러 뛰어난 역대 지도자 중에서 오랜 기간 대표팀을 이끌며 꾸준한 성과를 낸 인물로 김인식 감독은 단연 독보적이다.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을 이끈 김응용 감독,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이끈 김경문 감독 등도 있지만, 이들은 이후 소속팀에서 전념하며 대표팀을 더는 맡지 않았다. 김인식 감독은 코치와 감독을 거치면서 올림픽, 아시안게임, WBC, 프리미어 12 등 한국 성인대표팀이 출전할 수 있는 모든 대회를 두루 거쳤고 항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무엇보다 김 감독의 리더십을 빛나게 하는 부분은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한 번도 국가의 부름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WBC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베이징올림픽 우승을 이끈 김경문 감독이 더는 대표팀을 맡는 데 난색을 보였고, 전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팀 사령탑이던 김성근 감독도 석연찮은 이유로 대표팀을 고사하며 감독 선임이 난항에 빠졌다. 병역혜택 등 별다른 당근이 없는 데다 스프링캠프 기간에 열리는 WBC 참여에 부담을 느낀 구단과 감독들이 대표팀 참여를 꺼렸다. 야구계가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급해진 KBO는 당시 한화 사령탑이던 김인식 감독에게 SOS를 요청했다. 전 시즌 5위에 그친 한화의 성적을 감안하면, 원칙적으로는 김 감독에게 대표팀 사령탑이 돌아올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2004년부터 앓아온 뇌경색 후유증으로 거동도 불편한 상태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고심 끝에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대표팀 사령탑을 수락했다. 대표팀 감독 취임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은 "국가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면서 일부 야구계의 이기주의적인 행태에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 사령탑을 수락한 이후에도 상황은 여전히 순조롭지 않았다. 이승엽, 박찬호 등 간판스타들이 개인 사정으로 대표팀을 고사했고, 김 감독이 요구했던 현역 감독들의 대표팀 코칭스태프 승선도 모조리 불발로 돌아갔다. 하지만 김 감독은 현실을 불평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현역이 아닌 재야인사들 위주로 코칭스태프를 구성했고, 1회 대회 때와 달리 국내파 선수들이 대표팀의 중심이 되었음에도 결국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달성했다.

묘하게도 올해 프리미어 12를 앞둔 대표팀의 상황은 6년 전과 흡사했다. 메이저리거들의 불참과 일부 국내 스타급 선수들의 부상 등으로 대표팀은 최정예 전력을 꾸리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프로야구 시즌이 10월까지 길어지며 현역 감독들의 대표팀 합류도 불가능했다.

이번에도 야구계의 선택은 백전노장 김인식이었다. 김 감독은 지난 2009시즌을 끝으로 한화 이글스 감독에서 물러난 뒤 지도자로서는 오랜 시간 현장을 떠나있었다. 선수구성은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으며, 그나마 제대로 모여서 훈련하기도 쉽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2009년 WBC 때보다도 더 열악했다.

성배와 독배 가리지 않던 김 감독의 헌신

프리미어 12 야구대표팀 김인식 감독과 선수들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초대 챔피언에 오른 야구대표팀 김인식 감독과 선수들이 지난 22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 두번째는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 프리미어 12 야구대표팀 김인식 감독과 선수들 2015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초대 챔피언에 오른 야구대표팀 김인식 감독과 선수들이 지난 22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 두번째는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 연합뉴스


김 감독에게 사실 대표팀은 좋은 기억만은 아니다. 독배를 감수하며 대표팀을 맡았던 2009년 정작 비시즌에 팀을 돌보지 못했던 한화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결국은 김 감독이 이글스의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신생 대회인 프리미어 12는 김 감독 처지에서는 잘해야 본전이었고, 자칫 부진하면 그간의 명성에 흠집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번에도 기꺼이 무거운 짐을 감수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노장이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국가를 위하여 헌신을 마다치 않는 모습은 선수와 팬들 등 지켜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원로인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코칭스태프의 경험과 무게도 자연히 올라갔다. 감독 경력이 있는 선동열-이순철 코치가 각각 투수와 타격 쪽을 맡았고, 김광수-김평호-김동수-송진우 코치 등 현역 지도자이거나 화려한 선수 경력을 자랑하는 드림팀급 코치진이 완성됐다.

무엇보다 '단기전의 마법사'라는 명성답게 김 감독은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승부처에서 이기는 법을 알고 있었다. 역대 최약체라던 대표팀 마운드는 이번 대회에서 1.93의 평균자책점만을 허용하며 철벽의 위용을 선보였다. 김현수-이대호의 중심타선 배치와 정근우의 1번 타자 기용, 대타로 활용한 오재원-손아섭 등이 고비마다 결정적인 한 방으로 김 감독의 안목을 증명했다. 최대 명승부였던 일본과의 4강전 9회 대역전극은 김 감독의 믿음과 뚝심의 야구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또한, 김 감독은 백전노장답게 승부를 떠나 성숙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일본과의 준결승전 승리 이후 패자인 일본을 강팀으로 예우하면서 패장 고쿠보 감독을 배려했다. 이는 일본 언론과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 감독은 대회 내내 승리한 경기에서는 선수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고, 패배의 책임은 자신이 홀로 감싸 안았다. 불리한 대회 일정이나 홈 텃세 등에 대해서도 불평하거나 불필요한 신경전을 펼치지 않고, 오직 야구 그 자체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대표팀은 성적과 기량, 팀플레이, 매너 등 모든 면에서 챔피언으로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김 감독은 2006년과 2009년 WBC에서 다 이루지 못했던 세계 챔피언의 꿈을 프리미어 12를 통하여 완성했다. WBC 토너먼트에서 못다 한 극일의 꿈도 2전 3기 만에 완성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서 지도자로서 다시 한 번 야구인생의 정점에 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김인식 감독을 '국민 감독'이라 칭하며 그의 지도력에 더욱 열광한 이유는, 야구계 어른으로서 보여준 투철한 국가관과 책임감 있는 행보 때문이다. 어른은 많아도 존경받는 어른을 찾기는 어려운 게 요즘 우리 사회의 문제다. 원칙과 정도를 지키고, 권위보다는 공감으로 구성원을 설득하며 어려울 때 누구보다 기꺼이 앞장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리더가 필요한 시대다. 김인식 감독은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어른의 리더십'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야구를 넘어 대중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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