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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들려주신 노화가의 교단에서의 경험은 학생들 앞에 서야하는 제게 어떤 자세로 학생들을 대해야될지에 대한 큰 지침이 됩니다.
 제게 들여 주신 노화가의 교단에서의 경험은 학생들 앞에 서야하는 제게 어떤 자세로 학생들을 대해야될지에 대한 큰 지침이 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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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화가와 그분의 스튜디오에서 거반 매일이다시피 술을 즐겨먹던 때가 있었습니다. 심성 고운 그 화가는 30여 년간 교단에서 미술선생님으로 봉직하셨던 분이지요.
 
그날도 몇 시간째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얼굴이 불콰하고 겔화(gel化)되었던 마음이 다시 졸화(sol化) 되었습니다.
 
"내게,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이 있어!"
 
화백께서는 흐트러졌던 저의 의식을 집중시켰습니다.
 
"죄책감이라니요?"
 
제가 귀를 쫑긋 세우자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가 얹은 채 사제 앞에서 고해(告解)를 하듯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교사 초임시절이었어. 학교가 끝나면 늘 화실로 달려가 그림 그리기보다 젊은 선생들이 모여 밤새 술을 먹던 때였지.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어. 수업이 끝날 무렵, 학생들의 그림을 검사하고 강평했지. 그리고 두 학생의 그림을 뽑아 칠판에 붙이고 그 둘을 비교했어. 하나는 잘된 그림으로, 다른 하나는 그 반대의 사례로 소개하면서 후자처럼 그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로 수업을 마무리했어.

몇 해 전 몇몇 제자가 이곳 화실을 찾아왔어. 이제는 모두 아들, 딸들이 대학까지 졸업한 중년 부인들이 되어있었어. 시간이 내게만 흐른 것이 아니었던 거지. 즐겁게 학창시절을 회고하던 때에 한 제자가 말했어.

'선생님! 전 선생님처럼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여고 1학년, 늘 즐거웠던 미술시간에 저의 꿈을 접었습니다. 그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모든 학생들 앞에서 제 그림처럼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된다고... 그날 이후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지요. 하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미련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이제 각자의 길을 갈 수 있게 된 몇 해 전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화가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단지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거지요. 30여 년이 늦은 출발이지만 비로소 제가 제 삶을 사는 것 같아요.'

나는 가슴이 철렁했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그때서야 알아챈 거야.

그림에 정답이 어디 있어.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화단에 나와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대학에서 배운 것을 지워버리는 것이었거든. 배운 것을 버리는 데 10년이 걸렸던 거야. 그림은 누구나 즐겁게 자신의 생각대로 그리면 되는 것인데 왜 나는 그때 한 학생을 파괴하는 실수를 했는지... 그 제자가 다녀가고 몇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이 떨려."

저는 오늘 한 중학교로 강의를 갑니다. 난무하는 이미지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수용하며 그 이미지들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전하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교단에 설 때마다 저는 노화백이 통한(痛恨)의 방법으로 제게 일깨워준, 학생을 어떻게 고양시킬 것인가에 관한 이 내용을 상기하곤 합니다. 그리고 내게 묻습니다.
 
'나는 정답이라는 마귀(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았는가?'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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