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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를 주장하며 광주에서 서울까지 500km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는 발달장애인 이균도씨와 그의 부친 이진섭씨.
 지난 2012년 5월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를 주장하며 광주에서 서울까지 500km 도보행진을 벌인 발달장애인 이균도씨와 그의 부친 이진섭씨.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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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중고서점을 들렀다가 <우리 균도>가 나와 있는 것을 봤다. 지난 8월 제주도 토론 자리에서 같이 이야기도 나눌 기회가 있었던지라, 책을 사서 보는 것이 옳겠다 싶어 곧바로 구입했다. 책을 읽으니,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발달장애인법)의 제정과 시행이 얼마나 험난한 일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관련기사: <우리 균도> 서평)

발달장애인법의 제정은 매우 어려운 절차를 거쳐 이뤄졌다. 19대 국회에서 1호로 의안이 제출되기는 했지만, 발의 후 1년 동안 논의가 없이 계류됐다가 끈질긴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시위를 통해 결국 법안이 국회 본의회에 상정돼 지난 2014년 5월에 통과됐다. 하지만 법률의 발효와 시행이 공포 후 1년 6개월 후로 정해져서, 오늘(21일)부터 이 법이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자폐를 가지고 태어나 자폐성 장애인이 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도록 드디어 대한민국 정부가 의무를 이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을 맞는 나는 반가움보다도 더 많은 무거움, 또는 착잡함을 느낀다. 법률이 하나 발효된다고 해서 그 법률을 모든 국민들이 존중하는 것은 아니듯이, '모든 국민은 발달장애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회통합의 이념에 기초하여 발달장애인의 복지향상에 협력하여야 한다'(발달장애인법 5조)고 법률에 한 줄 써 놓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발달장애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복지가 혁신적으로 향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폐성 장애인과 소통 : 자폐인을 창고 속 짐으로 여기는 사회

자폐성 장애인들이 특히 대한민국에 살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일 것이다. 나의 경우엔 일반인과 차이가 없는 것처럼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어려운 것이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 아직도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이미 관계를 가졌다가 사소한 문제로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의 수가 수백 명이 넘는다. 물론 직설적인 말을 피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고, 이런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인다는 것까지는 안다. 하지만 말을 하기 전의 단계에서부터 조절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은 대부분의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이해받는 것을 어렵게 하는 근원적인 이유가 된다. 한국 사회는 비언어적 소통(nonverbal communication)이 중요시되는 문화다. 말로부터 말 이외의 의미를 읽어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폐성 장애나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잘 소통할 수 없다.

특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를 때 소통의 부재는 커진다. 자폐성 장애인들은 세상을 자신이 구축해 놓은 체계 안에서 인식하고, 그 바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하지 못한다는 특성이 있다. 무사시노 히가시 학교(일본의 자폐성 장애 통합학교)에서 주장하는 것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발달장애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활동하고자 하고 싶어 하는 바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은 대부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히 이러한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그 결과, 발달장애인들은 자신과 세상의 관계에서 그리 많지 않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느 한 곳에서 조용히 틀어박혀 지내면서 최소한의 사람들과만 소통하든가, 아니면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많은 상처를 감수하든가. 지금까지 내가 접한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은 발달장애인들이 자신과 마주칠 수 없는 곳에서 틀어박히기를 원하는 듯하다.

발달장애인들의 발언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재자의 존재, 또는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심리상담 지원 등이 이번 발달장애인법에 규정됐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이번 발달장애인법에서 전부 빠져 있으며, 오히려 무언어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증강대안소통(AAC : Augmentative & Alternative Communication) 지원 방안만이 법률 10조에 간략히 규정돼 있다.

이러한 결과는 두 가지 지점에서 더 큰 문제로 나타난다. 하나는 사회가 정한 근로의 권리와 의무와 관련된 부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최근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서다.

취업 : 원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간극

최근 들어 주변에서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물론 논문을 써서 학교를 벗어나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졸업 이후 대기업이나 연구소에 가라는 권유가 많다.

그나마 나는 상동행동(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활동)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프로젝트 경험도 있다. 그리고 박사 논문을 다 쓰면 박사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많으니 남들보다 좋은 출발점에서 서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최근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 사회적 이슈로 인기를 끌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그들보다도 더 심각한 '일못'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물론 한국 사회의 청년 실업 문제와 함께 노동의 가치 절하, 상당한 압박과 모욕,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업무처럼 돼버린 왜곡된 노동 시장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하지만, 자폐성 장애인들의 상태도 그에 못지 않다.

노동은 대한민국 헌법상의 의무이자 권리다. 즉,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그 노동을 통해 대한민국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적합한 노동이 무엇인지, 어떤 노동을 지원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정부나 기업의 배려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기업은 장애인을 일정 부분 이상 취업 시켜야 한다. 하지만 취업하지 않은 것에 벌금을 내는 것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뿐이다. 공기업들은 장애인을 아예 취업시키지 않아도 정부로부터 크게 견책을 받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장애인 일자리 대부분은 신체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일자리 공고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발달장애인법도 마찬가지다. 이 법 25조에는 발달장애인들의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하기는 했으나 선언에 그쳐 사실상 효력이 없다. 그나마 2항에 규정돼 있는 직업 재활시설의 첫 삽을 올 해 서울시가 동대문구 성일중학교에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이 학교에 들어오는 순간 환경이 열악해진다는 지역주민들 상당수의 주장에 공사가 중단돼 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제기동 성일중학교 내 발달장애인 직업 능력 개발 센터 서울커리어월드 건립을 놓고 6차 주민 설명회가 열렸다. 벽보는 당시 주민들이 붙여 놓은 것이다. 11일 조희연 교육감이 참석한 '끝장 토론'이 열리는 날에도 학교 주변 곳곳에 관련 벽보가 붙었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이날 토론은 반대 주민 대표 8명과 조희연 교육감 등 찬성 측 8명이 모여 비공개로 토론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해당 벽보가 붙기 시작하면서 언론과 지역 주민들에게 노출됐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제기동 성일중학교 내 발달장애인 직업 능력 개발 센터 서울커리어월드 건립을 놓고 6차 주민 설명회가 열렸다. 벽보는 당시 주민들이 붙여 놓은 것이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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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발달장애인 대부분은 현재 최저임금(2015년 기준 월 116만 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다.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 장애인들이 평균적으로 월 142만 원을 받는 것과 달리, 지적장애인들은 월 54만 원, 자폐성 장애인들은 월 38만 원밖에 받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과 비교하면 더 심각해진다. 일본 철도 6사는 ㈜JR서일본 아이윌(JR西日本あいウィル) 등의 자회사를 설립해 의무적으로 장애인들을 고용하고 있다. 자폐성 장애인들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무사시노 히가시 학교는 자폐인 개개인의 특성을 바탕으로 2년간의 고등전문학교를 통한 개별화 교육 이후 50% 이상의 발달장애인들을 일반 회사에 취업시키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차별하는 인터넷 공간

 일간베스트에 올라와 있는 자폐 괴롭힘 사례. 참고로 이 글에 달린 댓글의 거의 전부가 가해자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일간베스트에 올라와 있는 자폐 괴롭힘 사례. 참고로 이 글에 달린 댓글의 거의 전부가 가해자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 일간베스트 사이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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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러한 차별이 10, 20대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부분은 일베나 디씨인사이드 같은 '보수적 성향'의 남성 누리꾼 주도 사이트에서 심각하다. 이 사이트에서 '자폐'나 '아스퍼거', '철싸대'로 검색하면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말들이 쏟아진다. 특히 자폐성 장애 중에서 얕은 장애군에 속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아예 소시오패스 급의 이상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돼 버렸다.

어느 정도냐면, 일베에서 자폐인을 초등학교 때 괴롭힌 경험담을 올리고도 칭찬의 댓글이 올라오며, 디씨인사이드가 검색엔진에서 '자폐'나 '아스퍼거'라는 단어의 갤러리 검색을 막아 놓았을 정도다.

트위터 등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른 누리꾼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식의 표현은 이제 잦다 못해 식상하기까지 하지만, 그만큼 위협적이다. 자폐가 치유될 수 있는 병이고, 따라서 자폐 증세를 없애고 일반인처럼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발달장애 중재의 목표라는 말을 듣고 있자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정말 올바르지 않은 일인가?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자폐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적 접촉의 감소를 낳는다.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취미활동을 하는 것은 권장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인터넷 공간 안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바탕으로 인터넷 동호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순간, 언어적 뉘앙스의 차이나 서로가 가지고 있는 문화자본, 또는 개인적인 언어(parole)의 차이에 의해 어느새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는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자폐성 장애인들 중에는 철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이 바깥에 돌아다니면서 일으키는 행동들이 철도안전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같이 철도를 좋아하는 철도동호인이나 누리꾼들이 이들을 '철싸대(철도 사이코 대원)'라고 부른 지 오래됐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의 이상행동을 이해하지 못할망정,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발달장애인들을 예비범법자 집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법 4조, 32조, 37조에 따른 차별 행위에 속한다.

물론 취미 이외에도 자폐성 장애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통해 사회적 소통을 늘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 자폐성 장애인들이 문화예술이라는 범위 안에서만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그 이외의 일상에서 일반인들과의 사회적 접촉은 꿈 꾸기 힘들다. 발달장애인법에서도 사회적 활동 지원은 27조에 '여가 지원 활동'이라는 말 속에 미약하게 포함돼 있을 뿐, 그 이상의 지원은 규정돼 있지 않다.

더 언급해야 할 이야기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돌봄 및 가족지원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생각에 잠겨 있다.
 지난 2013년 12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돌봄 및 가족지원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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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너무 길어져서 다 쓰진 않았지만, 발달장애인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한 점들이 여러 개가 더 있어서 언급해 두고자 한다.

부족한 성인 지원 규정 : 현재 등록돼 있는 자폐성 장애인의 35% 이상이 이미 성인이고, 최고령자로는 67세의 어르신도 계시다. 하지만 아직까지 발달장애인법에 의한 지원은 조기 검사 및 아동교육 지원에 치중돼 있어서 성인기 발달장애인들을 위해서는 분명한 지원방안이 없다. 소득보장에 대한 논의가 애초 법안에는 있었으나 이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타협 속에서 전액 삭감됐고, 3년 후에나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계성 장애인 등록 문제 :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자폐성 장애인들의 상당수가 현재 등록장애인에서 제외돼 있다. 특히 고기능성 자폐인들의 경우 아무리 장애 정도가 심하더라도 IQ가 높다면 1급을 받을 수 없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그 결과 장애 정도가 심한 사람들보다 심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정상이지만, 자폐성 3급 장애인의 숫자는 전체의 20%도 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자폐성 장애 등급 부여기준에서 IQ를 제외해야 한다.

미등록 발달장애인의 군대 문제 :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나온 사람들이 있고, 이미 들어가서 군대 내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도 군대에 들어가 고통받고 있는 숨겨진 자폐성 발달장애인들이 하루속히 구제돼야 한다.

11월 21일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의 생일이다. 작년에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돼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올해는 이 법이 생일에 맞춰서 발효돼 기분이 한편으로는 좋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다시피, 발달장애인법의 발효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세상은 전혀 우리를 위해 바뀌지 않았고, 발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조치들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생일과 함께 발달장애인법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 당사자로서, 그동안 겪어온 현실과 바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득이하게 <오마이뉴스>라는 자리를 빌리게 됐다. 모쪼록 이번 글이 나와 비슷한 자폐성 장애인들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전하는 계기가 됐기를 바라본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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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구 사람이다. 오마이뉴스 초기에 1318에서 활동하다가 한동안 일을 접었다. 〈한국경제TV 와우스타〉, 〈철도신문〉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본격적인 연구자의 길을 준비하며 지식생산자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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