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만약 호랑이가 우리 집 대문에 노크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벽장 속에 숨겨둔 몽둥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것도 며칠 째 굶주려 배가 고픈 호랑이라면, 119에 전화를 걸어 당장 잡아가라고 애걸복걸 할 것이다. 삐뽀삐뽀 사이렌을 켜고 달려온 구급대원과 배고픈 호랑이가 벌이는 치열한 난투극으로 거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것이다.

어렸을 적 이 그림책을 읽다가 너에게 장난스러운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집에 배고픈 호랑이가 찾아오면 어떻게 할 거야? 너의 작은 눈은 커다래졌다. 당연히 스파이더맨을 불러야지. 스파이더맨이 호랑이보다 백배는 세잖아. 엄마의 장난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도 소피네처럼 대문을 활짝 열어둘까. 배 고픈데 그냥 내쫓긴 미안하잖아. 네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금세 울상이 되어버렸다. 앙, 호랑이가 우리 집에 오는 건 정말 무섭단 말이야!

그랬던 네가 이젠 훌쩍 자라 배고픈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채 웅크리고만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넌 싫어, 라는 짧은 대구로 모든 상황을 차갑게 끊어버렸다. 영화 보러 갈래라고 물어도 외식하러 갈까 꼬셔도 싫어, 라고 말했다. 싫어, 라는 말을 남발하는 너의 조동아리를 한번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주디스 커 지음 최정선 옮김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주디스 커 지음 최정선 옮김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 보림

관련사진보기

소피네 집을 찾아왔던 호랑이가 우리 집으로 찾아와 배고파도 꿈쩍도 안 하는 너의 방자함에 혼구멍을 내줬으면 싶었다. 밥을 찾아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녔던 실감나는 경험담을 네게 들려주면 어떨까. 진짜 호랑이의 위용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면, 호랑이인 척 흉내만 내는 네 눈빛이 봄눈 녹듯 사라지지 않을까.

세상엔 사납고 무서운 호랑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신사다운 예의를 갖춘 호랑이가 여기 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주먹보다 초인종을 먼저 누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줄 아는 호랑이. 그런 호랑이가 소피를 보자마자 한 말은 이랬다.

배가 아주 고픈데 들어가서 간식을 같이 먹어도 될까요? 오잉! 이 호랑이가 우리가 알고 있는 숲속의 제왕이 맞는지 아리송하다. 호랑이가 음식을 구걸하다니. 호랑이의 체면도 배고픔 앞에서는 아무 효력이 없는 것일까.

호랑이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 너머 소피네 집 냉장고까지 훌쩍 뛰어다녔다. 미리 해놓은 저녁밥도, 찬장에 쟁여놓은 식료품도 호랑이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이러다 소피네 집이 몽땅 털리겠는걸. 하지만 소피네 가족들은 여전히 구경만 하고 있다. 이건 간식 수준을 지나도 한참 지나버렸다. 이쯤 되면 호랑이는 소피네 집 냉장고를 털러 온 도둑 같은데 말이야.

그런데 소피네 식구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날개 없는 천사인가 보다. 아직도 호랑이가 간식을 먹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호랑이의 말 속에 어떤 신비한 마법이라도 있는 걸까. 수돗물까지 몽땅 먹어치운 호랑이를 향해, 어떤 비난의 화살도 쏟아지지 않았다. 만약 엄마라면 호랑이를 그냥 보고만 있었을까. 호랑이의 꼬리라도 잡고 그만 하라고 호통을 쳤을 텐데. 뻔뻔스럽게 이게 무슨 간식이냐고, 상식도 모르는 철면피라고 야단을 퍼부었을 거야.

호랑이의 간식이라는 말은 소피의 집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호랑이에겐 간식에 불과했지만, 소피에겐 며칠 분의 식사이기 때문이었다. 호랑이는 어떻게 자신만의 독특한 식사량을 소피네 식구들에게 이해받게 되었을까. 그 노하우를 알면 평생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을 듯한데. 그 비법 정말 궁금하지?

호랑이가 취한 액션은 바로 '노크하기'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호랑이는 초인종부터 눌렀다. 인기척이 들려올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사나운 호랑이의 목소리 대신 상냥한 말투를 꺼내보였다.

호랑이는 큰 체구를 과시하며 으르렁 거리지도 않았다. 지금 배가 아주 고프니 간식을 같이 먹고 싶다고 청해왔다. 간식을 먹고 있던 소피는 호랑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소피네 간식 시간에 맞춰 초인종을 누른 호랑이의 탁월한 안목에 기절초풍할 지경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줄 때,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기준에 따라 행동한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까지만 혹은 저녁밥까지만, 미리 경계를 그어놓는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하면서 상대를 위해 배려한다고 착각한다. 집안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호랑이를 향해 소피네 식구는 어떤 비난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방문을 위해, 호랑이의 간식을 따로 챙겨 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랑은 자식을 향한 사랑이다. 자식은 배고픈 호랑이와 같은 존재이다. 자식의 욕구를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언제까지 얼마나, 하는 식의 의구심이 생겨난다. 부모는 자식을 위한 사랑이 부담스럽지 않지만, 지금 냉장고 문을 열도록 허락하는 것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자식의 욕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은 자식을 응석받이로 만들 뿐이다. 이를 조절하기 위해 부모는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고, 마음과는 달리 큰 싸움으로 번진다.

표현력이 부족한 아이임을 감안하고 자식의 행동을 지켜보지만, 부모가 신과 같은 존재는 아니라서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하고 싶다와 하기 싫다는 말 밖에 할 줄 몰랐다. 그런 아이에게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 인내심이 바닥나 고함지를 때도 있었고, 화를 내는 경우도 많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넌 호랑이의 눈빛으로 세살배기 어린아이의 언어를 구사했다. 이제 막 말을 배운 세 살 먹은 아이는 싫어, 라는 말에 부모의 얼굴표정이 굳어지는 게 재미있다는 듯 무슨 말을 해도 싫다고만 떼를 썼다. 십년 전에 졸업한 줄 알았던 그 두 음절의 단어가 네 입에서 다시 피어났을 때, 엄마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호랑이의 얼굴과 세살배기의 언어구사력은 도통 어울리지 않았다. 현실에 대한 반감으로 비밀스런 탈출구를 찾는 저 눈빛으로 고작 싫어,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지 묻고 싶었다. 그 짧은 두 음절조차 귀찮다는 듯 말도 없이 네 방으로 가버릴 때면, 소피네 집을 찾아 온 배고픈 호랑이가 떠올랐다.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닌 호랑이를 지켜보듯이, 온 집안을 냉랭하게 만드는 호랑이도 지켜봐야하는 것일까. 이도 저도 다 배고프기는 마찬가지인데. 호랑이가 머금었던 미소를 네 얼굴에 걸어주고 싶은 엄마의 상상은 헛된 망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초인종을 눌렀던 호랑이의 부드러운 친절을 네 손발에 꼭꼭 묶어두고 싶은 것도.

이 그림책의 그림은 꼭 관찰카메라가 찍어놓은 한 컷의 사진 같다. 배고픈 호랑이가 집안을 돌아다닌다면, 집안은 쑥대밭이 될 것 같은데, 오히려 정갈한 느낌마저 든다. 바닥에 엎어진 주전자에도, 빈 과자 봉지에도 허겁지겁 달려든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나름대로 순서를 지키며 음식을 찾는 과정들이 차분하게 그려져 있다.

배고픈 본능 앞에서 호랑이가 먼저 부드럽게 노크했기 때문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소피네 식구들의 따뜻한 배려 때문일까. 굶주린 호랑이의 배를 채우는 한낮의 대소동은, 그 이름과는 달리 즐거운 보물찾기의 여정이었다. 이 평화로운 질서를 이뤄낸 호랑이와 소피네 식구들의 통 큰 헤아림이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 모두 자신의 욕구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호랑이가 되기를 바란다. 호랑이가 배고픈 현실에 화를 내지 않았던 것처럼. 호랑이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솔직하게 배고픔을 호소했던 호랑이 말이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대신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보여주는 호랑이라면 더할나위 없겠다.

마음은 이해받기보다 표현하는 것이다. 호랑이의 미소를 배우기가 정말 이토록 어려운 일임을 엄마와 너의 얼굴 속에서 새삼 깨닫게 되는구나. 부드러운 미소여! 사춘기 아이를 바라보는 얼굴 속에 고이 깃드소서.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 3~8세

주디스 커 지음, 최정선 옮김, 보림(2000)


태그:#사춘기, #감정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은 혼자를 핑계로 혼자만이 늘릴 수 있는 힘에 대해 모른척 합니다. -이병률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