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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러 온 시민들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러 온 시민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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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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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금요일 밤이 테러와 함께 폭풍처럼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밤새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전국 비상 사태를 선포했고, 토요일 오전 9시 군사고문과 만났다. 뿐만 아니라 초중고 및 대학 등 모든 학교와 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학교에서 떠나는 모든 여행도 취소됐다. 엘리제궁에는 1500명의 군인이 추가 배치됐으며 프랑스 국경은 폐쇄됐다. 우리 동네 파리 서쪽 방리유 시립도서관과 음악원도 문을 닫았다.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던 동네 주말 시장도 평소같으면 북적거렸을 텐데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이 없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안심

나는 밤새 쏟아져 들어온 지인들의 걱정어린 안부 메시지에 '나는 무사하다, 고맙다'고 답한 뒤 파리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3구에 사는 한 친구는 테러가 일어나던 밤, 집에 가려는데 사람들이 반대방향으로 마구 뛰어가더랜다. 집에 가기를 포기하고 13구의 친구의 집에서 자고 나와 토요일 아침에 집에 돌아왔지만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단다.

테러가 일어난 11구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연락해 보았다. 그는 테러 속보를 접하자마자 문을 걸어닫고 거기서 밤을 보냈다고 했다. 밤새 길가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통에 한숨도 못 자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지켜봤다고 한다. 12구에서 사는 지인에게 연락해 보았다. 그는 다행히 무사하지만 바타클렁 극장에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의 록 콘서트를 보러간 그의 동료와 남자친구가 아침이 되도록 연락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아직까지도...

시장은 한산했지만 유기농 매장에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누구도 지난 밤 일어난 충격적인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가 조용히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다가 어느 누군가 '안녕하시냐?'는 문안 인사에 말문을 텄다.

"어제 밤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파리에서 난 테러 소식에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있어야죠. 밤새 업데이트 기사를 검색해봤어요." 

그제서야 옆에 있던 사람도 "그러게요. 이게 웬일이래요? 충격적이고 너무 슬퍼요"한다. 그랬구나. 모두가 인지하고 있고 슬픔과 충격을 공감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며 불안감을 굳이 가중시키지 않고 있는 거였구나.

테러가 휩쓸고 지나간 뒤 첫저녁

볼테르 가(boulevard) 50번지 주위는 출입통제 구역이 되어있다.
 볼테르 가(boulevard) 50번지 주위는 출입통제 구역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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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취재진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취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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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게는 가까이서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보다 바다와 대륙 건너 일어난 서울 광화문 집회 현장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주말이라고 집에서 쉴 수가 없었다. 가까운 파리 테러 현장이라도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나의 일상을 마친 뒤 비극이 일어난 지 24시간 만에 사고 현장을 찾았다. 약간 두려웠다. 길 위에 핏자국이 낭자하게 나있지 않을까? 또 난사를 당하지는 않을까?

지하철을 타니 무장한 경찰들이 돌아다닌다. 폐쇄되었던 역들도 운행을 개시했다. 128명의 사망자 중 절대 다수인 89명의 희생자가 나온 바타클렁 극장으로 향했다. 오베르캄프역에서 내리니 안테나를 단 방송 차량들이 찻길 한 켠에 줄을 서있었다. 프랑스 언론은 물론이고 독일, 미국, 영국, 이태리, 벨기에, 인도, 아랍 언론 등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다 나와 있었다. 생방송으로 내보낼 뉴스의 큐만 기다리는 스탠 바이 상태였다. 이태리 취재진은 그전날 이태리 취재를 끝내고 새벽 1~2시에 현장에 급히 파견됐다고 했다.

폭탄이 터졌던 볼테르가50번지 주변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그 앞에 기자들이 일렬로 서서 자국의 저녁 생방송 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한 켠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 촛불, 종이에 적은 메시지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독일계 독일 및 프랑스 녹색당 정치인 다니엘 콘 밴딕트
 독일계 독일 및 프랑스 녹색당 정치인 다니엘 콘 밴딕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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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그 유명한 독일계 프랑스 정치인 다니엘 콘벤딕트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콘벤딕트는 반-나치 독일계 부모 밑에서 프랑스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선택해 독일 녹색당에서 활동한, 매우 유명한 유럽 정치인이다. 프랑스 68혁명 때 혁명의 선두에 선 인물 중 하나였고, 프랑스 녹색당을 창당해 2009년 유럽의회 선거 때는 녹색당 지지율을 20.86 %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올 3월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는 작년에 정치계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방송에만 출연하고 있다. 그는 독일 언론ZDF의 카메라 앞에 서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자리를 뜨는 인도 기자들에게 말을 붙였다. 인도에서는 파리 테러를 어떻게 보느냐 물었더니 "매우 슬프고 충격적인 일"이라면서 인도에서도 파리 테러를 1면뉴스로 다루고 있다고 했다. 한국 언론은 어떻게 보느냐고 묻길래 "같은 해에 샤를리 엡도 이후에 또다시 파리에서 터진 테러 사건이어서 프랑스 사회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테러가 일어났던 어제, 같은 날 한국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는데, 한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그건 하나도 다루지를 않고 있어서 정말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뭐냐고 묻길래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고 단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더니 자기네 인도도 마찬가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볼테르가 주변에 쳐진 바리케이드 앞에 기자들이 생방송을 준비하고있다.
 볼테르가 주변에 쳐진 바리케이드 앞에 기자들이 생방송을 준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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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취재진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취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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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샤론느 길로 발길을 돌렸다. 여성 기숙사 '빨레드 팜므' 건너편에  있는 일본 식당과 바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셔터가 내려간 빈 가게 앞에 사람들은 초를 켜고 헌화하고, 종이에 적은 메시지를 조용히 내려놓고 물러났다. 사람들이 남긴 쪽지에는 '우리의 이웃들이여 편히 잠들라'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 프랑스 만세' '프랑스는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면 없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침묵 속에 가지런히 조의를 표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가 놓인 바타클렁 극장 앞에는 기자들이 많았다면 이곳에는 시민들이 많았다. <르 몽드>가 다녀갔고 프랑스3(France 3)가 나와 있었지만 숙연한 분위기를 조용히, 그것도 길 건너편에서 촬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혹은 걸어가던 사람들은 수백 개의 촛불과 인파를 보고 멈추어 섰다. 사고 현장 앞 모퉁이를 지나는 차량들이 많지는 않지만, 인파에 서행을 해야 했음에도 누구 하나 클랙슨을 울려대거나 창문을 내리고 비키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조용하고 숙연함,그 두 가지 단어만이 그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는 시민들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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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러 나온 가족
 아이들과 함께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을 조문하러 나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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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들이여 편히 잠들라. - 우리 모두 일동"
 "우리의 이웃들이여 편히 잠들라. - 우리 모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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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왜 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보십니까? 이민 문제일까요, 종교 문제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문제일까요 ?"

조문하는 서로 다른 연령층의 프랑스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동료와 담배를 피워물던 중년의 에마뉴엘(45)씨는 테러리스트들이 노린 건 자유라고 답했다.

"그들이 목표물로 노린 건 권력도 돈도 아니에요. 자유에요. 카페와 바에서 유유히 앉아서 여유를 누리는 자유,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여성들의 자유, 그 자유말이에요."

이슬람 종교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슬람은 문제가 없어요. 우리 집사람이 무슬림인 걸요. 지하디스트는 자기들의 욕구를 신의 이름으로 분출하고 있는 거예요."

11구의 사고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니콜라(45)씨는 자기도 자주 가고, 특히 딸애가 자주 찾는 카페에서 사고가 난 걸 알고는 깜짝 놀라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다행히 딸은 그날 밤 같은 길의 다른 카페에 있었단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사고였기에 충격이 크다고 했다.

20대에게도 물어보았다. 나디아(28)씨는 "어떤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알제리 식민통치, 이라크전쟁, 경제적인 어려움 등 지금까지 축적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원인으로 작용했을거"라고 봤다. 그는 "어쨌거나 심리적으로 무척 문제가 많은 이들이 저지른 행동"이라고 말했다. 파트리치오(28)씨는 "정치인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니고, 높은 사회 계층도 아닌 우리와 같은 아주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폭탄을 던졌다"면서 "그래서 이번 사건이 더 충격적"이라고 했다.

헌화하는 무리로부터 떨어져 혼자서 진지하고 비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마치아스 알리(31)씨에게 말을 걸었다.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어떻게 무엇을 움직여야 하느냐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주에 평화 시위를 한다든가 하는 거죠. 우리 모두가 누리는 자유를 공격한 것에 대항해서 저들에게 우리의 대답을 보여줘야 합니다."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고, 누리는 자유를 공격한 것에 대항해서 우리의 대답을 보여줘야 한다... 같은 날, 서울 광화문에서 물대포, 최루탄, 캡사이신을 삼위일체로 맞은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불통의 정부에게 날리고 싶은 메시지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놓여진 촛불들.
 샤론느 길 테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놓여진 촛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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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세상 그 어디서도 우리 모두 함께 야만과 테러리즘에 대항하리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 프랑스 만세"
 "자유로운 세상 그 어디서도 우리 모두 함께 야만과 테러리즘에 대항하리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 프랑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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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평화, 평화와 사랑"
 "세계평화, 평화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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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 그들은 우리를 멈출 수 없다." 스피리트 오브 메탈 웹진에서(왼쪽). "사랑은 나의 믿음이고 나의 종교다."(오른쪽)
 "명복을 빕니다. 그들은 우리를 멈출 수 없다." 스피리트 오브 메탈 웹진에서(왼쪽). "사랑은 나의 믿음이고 나의 종교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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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샤론느 길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불을 붙여 세우고 있다.
 한 여성이 샤론느 길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불을 붙여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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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파리, #테러,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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