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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물건을 할인된 가격에 편리하게 살 수 있어 자주 찾던 대형마트에서, 언제부터인가 '백화점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백화점을 닮아가는 듯한 대형마트의 과도한 서비스 방침을 날마다 목격하고 있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열악한 백화점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살펴본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대형마트 노동자들을 만나보았다. - 기자 말

마트에서 무엇을 얼마나 사든지,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마지막 관문, 계산대. 그래서 마트 계산원인 캐셔 노동자는 고객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대면하게 되는 마트노동자이다. 대형 유통 체인에서 6년 동안 계산직으로 일한 마트노동자 S씨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5월 중순, S씨가 사는 곳을 찾아가서 진행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계속 멘트를 해야 하는 사람들

마트노동자들은 쉴 시간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한 채 반복되는 감정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물을 마시는 것도, 잠시 화장실을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사진은 영화 <카트> 속 배우 김영애.
 마트노동자들은 쉴 시간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한 채 반복되는 감정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물을 마시는 것도, 잠시 화장실을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사진은 영화 <카트> 속 배우 김영애.
ⓒ 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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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판매직 노동자들은 참, 말을 많이 한다. S씨가 떠올린 '일하는 풍경'의 첫 대목도, 2음절짜리 인사와 끊임없이 멘트를 하던 장면으로 시작된다. 손은 손대로 열심히 물건을 스캔하면서, 입은 입대로 쉴 새 없이 멘트를 치는 직업. 여기에 '솔'톤의 목소리 조절과 '친절한 웃음' 또한 잊어서는 안 될 서비스 매뉴얼 항목이다.

'고객에게 인사는 꼭 2음절로 해야 한다'는 서비스 방침은 작년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백화점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점검하면서도 확인됐던 지점이었다. '최고의 서비스'를 지향한다고 하는 백화점의 서비스 방침은 대형마트를 비롯한 다른 유통 서비스 산업에도 흘러들어 가, 요즘은 어딜 가나 '인사는 기본 두 마디'가 서비스의 상식이 된 것 같다. 정작 고객들은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노동자들은 점점 더 과잉화되어 가는 서비스 매뉴얼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트노동자에게 멘트 이외의 대화는 자제하게 되어 있다. 고객 응대 매뉴얼에 나열된 멘트 이외에, 동료 직원들과의 대화는 '잡담'으로 간주하여 찍히기도 한다는 것. 물건의 가격을 묻거나, 부족한 거스름돈을 동료직원에게 부탁해 받는 등 '업무와 관련된 대화'라 하더라도, '동료와의 대화'는 무조건 잡담으로 간주하였다.

"우리는 (동료들끼리) 마주도 못 보게 했어요. 마주 보고 얘기하면 큰일나요. 뭐 물어보지도 못했어요. 잡담한다고. 업무적인 일로 인해서 '이거 얼마 찍히지?' 이런 거 물어보는 것도, 잡담으로 간주하고 그랬어요. 우리 때는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어요."

또 다른 마트노동자 L씨가 들려준 이야기도 생각이 났다. 지난 5월 중순, 여성민우회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L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계적인 친절과 멘트로 촘촘히 짜인 고객 응대 매뉴얼을 정해놓고, '정해진 말만 하게 하는' 방침은 일하는 사람을 그저 '계산하는 기계'가 되길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통 저도 그렇고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을 그렇게 관심 있게 보지 않더라고요. 제가 서비스를 하면서도 그리고 받아보면서도 느껴 본 게 약간, '말하는 기계' 정도로 여기더라고요, 사람들이. 편의점에서 일할 때도. 편의점 직원하고 눈 마주치고 이런 경우 거의 없잖아요. 외국 같은 경우는 마트에 들어가도 '안녕하세요' 이러면서 대화를 나누면서 물건을 산다고 하는데, 우리는 대화 같은 걸 좀 불편해하잖아요. 좀 그런 느낌이 있어요. '이 사람들이 나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구나…'하고." - 마트노동자 L씨

계산대에서 '물 마시다 걸리면' 사유서감

끊임없이 말을 많이 해야 하는 마트노동자에게 '물 한 잔의 권리'는 주어질까? 근무 중에 물은 마실 수 있었느냐고 묻자,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유서감'이 된다고 했다.

"계산대에서 우리 근무했을 때는, 지금은 모르지만, 우리가 근무했을 때는, 계산대에서 물도 못 마셔요. 계산대에서 물 마시다가 걸리면 사유서감이에요, 사유서감. 안 걸리고 먹기도 하는데, 모니터에 걸렸다 하면 작살나는 거예요. 진짜."

"(왜 물을 못 마시게 하는 거예요?) 고객님들 있는데 물 마신다고 하는 거죠. 근데 진짜 고객님들 거기 세워놓고 물 마시겠어요? 아니 고객님들 세워 놓고 화장실을 가느냐고. 없을 때 물 마시고 없을 때 갔다 오고 하는 거지. 생리적인 현상인데 그런 부분까지도 다 터치를 하고…. 사장님은 그런 걸 알라나 몰라."

'고객이 있을 때 물을 마셔서는 안 된다'니…. 마트가 정하고 있는 물을 마실 수 있는 기준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물을 마시지 말라는 규칙을 정해놓은 것이나, 그것을 '모니터'라고 하는 내·외부의 감시망을 통해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는 마트의 행태는, 지나치게 불합리하고 과잉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방광염에 걸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어요

일전에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시내버스 기사님께서 갑자기 도로변에 버스를 세우고서 황급히 화장실에 다녀오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쉬는 시간 없이 촘촘하게 짜인 버스 시간표에 따라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 버스 기사들이 제때 화장실에 들르지 못하는 고충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었다.

S씨가 들려준 마트 노동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이 많을 땐 갈 수 없고, 사람이 없을 땐 눈치가 보이고, 그러나 생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어 황급하게 다녀오는 식이었다.

"언젠간 화장실 가서 있는데, 한 번은 방송이 나오는 거야. 계산대 비워놓고 갔다고 방송이 나오는 거야. 아니 너무 황당하더라고요. 볼일 보고 있는데 방송 나와서, 질겁을 하고 나왔잖아. 그 정도로 열악했어요."

같은 근무조에 인원이 충분할 때에는 잠시 동료들과 돌아가며 화장실에 가는 일이 그나마 수월했다. 점점 일하는 인원이 줄어들며, 캐셔 노동자가 화장실에 가기는 더욱 눈치 보이는 일이 되어갔다고 S씨는 기억했다. S씨의 동료 중에는, 이런 근무환경으로 인해 방광염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수술하는 동료들도 더러 있었다.

이런 지점들은 일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근무 환경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노동자에게 물 한 모금, 온종일 서 있어야 하는 노동자에게 때때로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 언제든 필요할 때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기본적인 자율권.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지점들이 기업에 의해 과도하게 규제될 때, 노동자의 건강권은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다.

너무 빠른 세상, 멈추지 않는 노동에 쉼표를

민우회는 회원들과 함께 '해보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당일배송 택배신청 하지 않기, 너도나도 정시퇴근, 퇴근후 업무연락 하지 않기, 서비스 재촉 하지 않기 등 너무 빠른 세상, 멈추지 않는 노동에 쉼표를 요청하는 캠페인이다.
▲ 너무 빠른 세상, 멈추지 않는 노동에 쉼표를 민우회는 회원들과 함께 '해보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당일배송 택배신청 하지 않기, 너도나도 정시퇴근, 퇴근후 업무연락 하지 않기, 서비스 재촉 하지 않기 등 너무 빠른 세상, 멈추지 않는 노동에 쉼표를 요청하는 캠페인이다.
ⓒ 한국여성민우회(일러스트 윤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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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비스 판매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졌다. 다만, 알고 있는 만큼 개선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권리들. 어쩌면 지금 그 권리를 위한 변화에 필요한 것은, '조금 다른 상상력'일지 모른다.

동료 활동가와 함께 마트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보기 위해, 사무실 근처의 대형마트에 방문했다가 시식코너에서 발견한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팻말로 '조금 다른 상상'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캐셔 노동자들에게도 '잠시 자리를 비울 권리'가 생긴다면?

주말의 대형마트. 길고 긴 계산 줄에 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눈치'다. 어느 줄이 먼저 줄어들까, 한 명씩 다른 줄에 나눠 서기도 하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절대 밝지 않다. 그러다 캐셔 노동자의 근무조 교체 시간이나 중간정산으로 갑자기 뚝, 계산원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여기저기서 탄식의 아우성이 쏟아져 나오는 풍경.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빨리 계산을 끝내고 마트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물 한 잔, 의자 하나, 맘 편히 화장실에 갈 짧은 틈도 없이 온종일 계산대에 서서 일하고 있는 저 사람의 마음도 한 번 상상해볼 수는 없을까.

사람이 많이 밀릴 때도, 필요에 따라 한두 사람이 돌아가며 쉬거나 잠시 자리를 비울 수 있을 정도로 근무조 인원이 넉넉하면 제일 좋겠다. 그게 안 된다면, 마트노동자가 눈치껏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손님도 마트직원들도 '당연히 그럴 수 있는 노동자의 잠시 쉴 권리'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혹은, 눈치껏 줄서기 문화 대신 '한 줄 서기'와 같이 좀 더 효율적인 동선을 고민해볼 수는 없을까.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캐셔 노동자도, 시식코너 노동자도, 주차요원과 에스컬레이터 앞 안내를 도와주는 안전요원도, 모두가 다 작은 '자기만의 의자'를 가지고 있는 마트의 풍경은 어떨까?

한국여성민우회는 '너무 빠른 세상, 멈추지 않는 노동에 쉼표를' 요청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당일 배송 택배신청 하지 않기, 너도나도 정시에 퇴근하기, 퇴근 후 업무 연락 하지 않기, 서비스 재촉하지 않기 등을 회원들과 함께 실천해보는 '해보면 캠페인'이다.

마트노동자를 비롯한 서비스·판매직 노동자에게도 필요한 쉼표, 때때로 앉아 있을 의자 하나와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권리로, 시작 '해보면' 어떨까? 민우회의 '당연한 의자' 캠페인 모금함을 응원해주는 시민들이 남겨주신 의견들로 본 기사를 닫을까 한다.

- 하루 종일 일어서서 근무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게다가 직업병인 하지정맥인가.. 그 위험한 병... 의자... 드립시다. 여러분 (B***님)
- 이건 정말 인식개선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O***님)
- 모든 마트 노동자가 앉아서 업무를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우***님)
- 마트노동자가 온종일 서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당연히 의자가 필요합니다. (위**님)
- 당연한 것을 보장받는 근무환경이 되기를 (M**님)
- 의자 꼭 있어야합니다! (익명)
- 모두가 누려야 하는, 그 당연한 권리를 응원합니다! (익명)
- 온종일 서 있는 건 인격모독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자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모두를 향한 모욕이에요. 정말 짜증나요,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을 굴리냐고ㅠㅠㅠ (으***님)
- 마트 노동자 분들 항상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익명)
- 하루 종일 서있으려면 너무 힘든데 앉아서 조금이라도 힘들지 않게 일하셨으면 해요 (ㅋ***님)
- 저 또한 일해 보았기에 너무나 힘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권리를 인정해주세요 이 캠페인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김***님)
- 앉아있으셔도 소비자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마트 근무자들의 앉아 쉴 수 있는 권리, 응원합니다. (지***님)
- 왜 앉으면 안 된다는 건지... 참 (c***님)
- 마트 알바 해봤는데,.. 의자 없이 하면 정말 힘들다. (매***님)
- 몸 상하는 서비스는 안타깝습니다. 건강한 직장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익명)
-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조금은 더 편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체***님)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홍연지 시민기자는 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여성민우회, #마트, #대형마트, #당연한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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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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