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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되고 나니 독서의 방향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이 아빠가 된 분들을 위해서 발자취를 간추려 본다. 독서의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보편성과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은 책들은 펼치지 않았다. 조금 어렵지만 학문적 객관성만큼은 믿을 수 있는 대학 전공서나 논문 같은 단행본을 읽었다.

<발달심리학>(학지사), <엄마와 아이 애착 다지기>(이담북스) 등이 생각난다. 그 다음에는 심리치료사나 정신과 전문의 등 육아 분야 전문가의 책을 읽었다. 읽고 보니 아빠 저자들의 책이 대부분이다. <내 아이를 위한 두뇌코칭>(한국경제신문),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한국경제신문),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창비) 등이다.

특히 아이 키우는 데 가장 깊은 감명을 준 전문가 서적은 <아직도 가야 할 길>(율리시스)였다. 이 책은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배가 '아빠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며 추천해준 것이다. "삶은 고해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심리치료사로서 경험한 풍부한 사례로 가득하다. 지금도 아이를 키우면서 이 책에 빚지고 있다.

육아 관련 서적은 심리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 점에 충실했다. 그럴 거면 아예 서양 심리학자들의 책을 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의 심리학을 한국의 토양에 맞게 재해석해서 소개하는 육아서를 찾기란 무척 힘들었다. 우리나라의 아이라면 우리 동양의 지적 전통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답변을 들을 기회는 별로 없었다. 동양철학을 육아에 연관시켜 독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 아빠로서 읽은 노자 <도덕경>은 어려운 철학서이 아니라 실감나는 실용서였다. <논어>도 사랑 이야기였다. 나는 더 이상 육아서나 육아 전문서 읽기를 멈추고 <논어> 같은 동양철학을 여러 번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의 생각을 지지해준 책을 발견했다. <마음으로 훈육하라>(길벗)라는 책이다.

육아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동양철학'

동양철학에 대한 조예와 심리학에 대한 최신의 연구 결과, 게다가 직접 아이를 기르면서 묻어난 경험과 섬세한 문장력까지 갖춘 <마음으로 훈육하라>
 동양철학에 대한 조예와 심리학에 대한 최신의 연구 결과, 게다가 직접 아이를 기르면서 묻어난 경험과 섬세한 문장력까지 갖춘 <마음으로 훈육하라>
ⓒ 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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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훈육하라>는 '마음챙김'이라는 심리치료법과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이어나가며 미국학회협의회로부터 교수상(teaching award)을 수상하기도 한 상담심리전문가 샤우나 샤피로 박사(Shauna L. Shapiro, PhD)와 아이와 부모의 심리정서 발달을 돕는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소아과 전문의 크리스 화이트(Chris White)가 공동으로 집필했다.

'마음챙김'의 훈육 방식은 ①조건 없는 사랑 ②혼자만의 공간 ③멘토 관계 ④건강한 경계 ⑤시행착오를 핵심요소로 하고 있다. 저자들은 동양철학의 음양 개념에 착안해서 핵심 요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음양 원리에서 음은 열려 있고 수용적이며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흐르게 한다. 양은 방향이 뚜렷하고 주도적이며 구체적인 의도를 가진다. 마음챙김 훈육 방식의 5가지 요소 중 2가지는 양 요소, 2가지는 음 요소다. 음 요소는 "너는 지금 그대로도 완벽해"라고 말하고, 양 요소는 "너는 더 나아질 수 있어"라고 말한다. - 본문, 138쪽

저자들은 단순히 음양이론을 연구 결과에 대입한 것이 아니라 '건(乾)'과 '곤(坤)'이라는 <주역>의 개념을 깊이 분석해서 제시한 것이다. 주역의 '건'은 하늘과 빛처럼 널게 퍼져서 만물을 비추고 심장처럼 끊임없이 에너지를 방출한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태양이 매 초당 방출하고 있는 에너지는 무려 3.86x(10의 26제곱) 와트(watt)이며, 이 중 지구 표면에 전달되는 에너지만도 1.74x(10의 17제곱) 와트라고 한다.

이것은 인류가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의 10만 배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곤'은 모든 걸 위에 싣고 감싸안는다. 그리고 하자는 대로 순응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하늘의 에너지인 '건'과 땅의 에너지인 '곤'이 갖가지 비율로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마음'을 '감'(感)이라는 한자어로 소개했다. 즉 '모든 것'을 뜻하는 '함'(咸)자와 '마음'(心)을 합한 글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마음챙김은 "매 순간 모든 마음을 다하는 것"이며, "자신의 온 존재와 관심으로 자신이 행했던 모든 경험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결국 부모의 삶과 아이의 삶을 동시에 풍요롭게 만드는 육아를 꿈꿔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논어>를 즐겨 읽으며 육아의 지혜로 삼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로는 동양철학과 육아와 관련된 글도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논어>와 육아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리고 그마저도 시원스럽게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마음으로 훈육하라>를 읽으며 육아와 동양철학이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용감히 탐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책에서 지지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당분간은 육아 관련 서적을 보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많은 것을 얻었다. 요컨대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동양철학을 읽어라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 의미 있는 책으로 기억한다. 이 책 덕분에 나도 용기를 내서 육아와 동양철학의 관계를 밝히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으로 훈육하라 - 엄마와 아이의 행복한 관계 맺기

샤우나 샤피로.크리스 화이트 지음, 김경영 옮김, 길벗(2015)


태그:#마음으로 훈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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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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