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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대나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이 있다고 윤리 시간에 배웠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 부르는데, 동양에서는 이를 '군자'라고 불렀고, 서양에서는 '신사'라고 불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선비'라고 불렀다는 것도 배웠어요. 군자가 무엇이고 신사가 무엇이며 선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구별하기 어렵지만, 그 시대가 요구하는 공동체의 덕목이 담겨 있다는 점만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학생들에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은 무엇일까요? 21세기의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고 있을까요? 그래서 어른들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으며, 어디로 데려가고 싶어 하는 걸까요? 당돌하지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 넉 달 동안 친구들과 고민도 하고 책도 읽고 토론도 하고, 때로는 길거리로 나서서 사람들과 직접 부대끼며 애를 썼습니다. 이 기사는 그 결과물입니다.

대학입시가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 결정

우리는 거리로 나가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보았지요. '공부만 잘하는 학생'은 문제가 많다고들 대답해 주셨어요
▲ 길거리 인터뷰 우리는 거리로 나가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보았지요. '공부만 잘하는 학생'은 문제가 많다고들 대답해 주셨어요
ⓒ 정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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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가는 길은 크게 세 갈래입니다. 수능 잘 봐서 정시로 가는 길과 내신을 잘 관리해서 수시 교과전형으로 가는 길, 그리고 비교과 활동에 신경 써서 수시 종합전형으로 가는 길이지요.

2016학년도 기준으로 보면 정시가 약 29%, 교과전형이 약 38%입니다. 종합전형은 약 18%로 전체에서 비중은 크지 않은 듯하지만, 아닙니다. 공부 좀 해야 간다는 대학(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에서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약 29%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종합전형이 이렇게 비중 있게 된 데는, 공부만 잘하는 우등생보다는 공부는 그렇게 잘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새로운 인간상을 요구하는 시대의 여망이 담겨 있지요. 바람직한 일입니다.

물론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도 교과 성적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정시나 교과전형에 비해서 그 비중이 낮고, 대신에 비교과영역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요구하지요. 대학마다 다르긴 하지만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요구하는 서류는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인데, 그중에 학생부의 영향력은 우리들이 하는 말로 '어마무시'하죠.

학생부에서 비교과영역은 창의적체험활동과 독서활동으로 2분되고, 다시 창체활동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으로 나뉩니다. 독서활동은 공통독서와 과목별독서로 나뉩니다.

학생부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점은 항목별로 몇 자까지 쓸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교육부가 바로 이 사안에 대한 결정권자입니다. 한글 1음절을 3바이트(byte)로 하고 띄어쓰기를 1바이트로 하여 학생부 기록 란의 최대치를 제한하고 있지요.

이른바 '자동봉진'(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이라고들 부르는 비교과활동은 자율활동에는 3000바이트, 동아리활동에는 1500바이트, 봉사활동에는 1500바이트, 진로활동에는 3000바이트로 제한하고 있어요. 그리고 독서활동 중 공통독서에는 3000바이트, 과목별독서에는 과목당 1500바이트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5학년부터 교육부는 독서활동 기록 글자 수는 크게 늘리고, 동아리활동 기록 글자 수는 크게 줄였습니다. 2014년도까지는 독서활동을 네 영역으로 나누어 영역별 3000바이트 정도 기록하도록 한 것을, 2015학년도부터는 공통독서 3000바이트에 과목별독서를 과목당 1500바이트까지 늘렸습니다.

한 학기에 배워야 할 과목이 10과목이 훌쩍 넘으니 그 양은 2만 바이트 정도로 크게 느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반대로 동아리활동은 3000바이트에서 1500바이트로 절반이나 줄였어요. 더욱이 독서활동은 학기별로 기록하고, 동아리활동은 학년별로 기록한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독서활동 4만 바이트 : 동아리활동 1500 바이트'의 격차는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동아리는 보통 학교에서 정규수업시간으로 편성해서 하는 일반동아리와 상설동아리가 있고,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자율동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연대하여 활동하는 연합동아리가 있지요. 하지만 이런 활동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록할 곳이 없습니다. 더욱이 기록도 동아리별로 나누지 않고 한 군데로 몰아버렸기 때문에, 동아리 지도 선생님들이 글자 수를 서로 조정하여 기록하느라 애를 먹고 있지요.

동아리는 됐고, 앉아서 책만 읽어라?

모의법정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교실에서보다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살아 있는 날것으로요.
▲ 법전문 동아리 모의법정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교실에서보다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살아 있는 날것으로요.
ⓒ 양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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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있는 글자 수가 제한되기 시작한 이유는, 특목고와 일반고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교육부는 그렇게 설명했지요. 하지만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동아리활동의 비중을 낮추고 책상에 앉아서 해야 하는 독서활동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글자 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지요.

- 2015년부터 비교과 활동의 생활기록부 기록 글자 수의 제한이 달라졌지요. 그중에 특히 독서활동이 늘어나고 동아리활동 기록 글자 수가 대폭 줄어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목별로 독서활동이 생긴 것은 우리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생긴 일 같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인문독서, 사회독서, 자연독서, 예체능독서로 총 네 영역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학기별로 공통독서에 과목별로 독서하라니, 1년에 읽어야 할 책이 서른 권이 다 되는데, 이게 가능할까요? 하루 종일 공부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데 거기다가 과목별로 이렇게 독서까지 하라는 것은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우리는 슈퍼맨이 아닙니다." (여수여자고등학교 2년, 이이레)

"독서활동 글자 수를 늘인 건, 괜찮아요. 정말 미친 듯이 책을 보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공간을 마련해 주는 건 나무랄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동아리활동 글자 수를 줄인 걸 보면 화가 나요. 저도 동아리활동을 세 개 하는데, 기록할 수가 없어요. 기록물을 제출하면 선생님들도 짜증을 내고요. 동아리, 진짜 재미있고 보람된 활동인데, 마치 죄라도 지은 것 같아요. 동아리 활동은 동아리별로 3000바이트는 돼야 합니다. 독서도 많이 하는 친구들에게 기록할 공간이 필요하듯이, 동아리도 다양하게 활동하는 친구들에게 기록할 공간은 주어야 할 게 아닙니까?" (여수여자고등학교 2년, 이은송)

"교육부는 우리를 책상에 앉혀 놓으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독서' 좋지요. 하지만 억지로 하는 독서가 즐거움으로 이어지던가요? 과목별로 읽을 책 찾아서 억지로 읽는 것, 그건 독서에 대한 즐거움을 빼앗아 가는 일이에요. 저도 동아리활동 열심히 하는데, 우리는 동아리활동 하면서 독서도 하지요. 하다 보면 잘 몰라서 책 읽고 토론하고 그러면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정말 재미있어요. 이런 문제는 학교에 와서 우리들 말도 좀 들어보고 결정했으면 좋겠어요." (충무고등학교 2년, 김예은)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선생님의 분석은 날카로웠습니다.
▲ 우리들의 선생님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선생님의 분석은 날카로웠습니다.
ⓒ 박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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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마다 선생님이 계시지요. 하지만 찾아가서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아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고, 가까이 다가가면 한바탕 훈계를 듣거나, 우리가 잘못한 것을 들추어 꾸지람을 할 것 같은 분들이 꽤 계시거든요. 그런데 정햇살 선생님(충무고, 영어)은 우리들과 눈높이를 함께하는 분이에요. 그래서 불쑥 찾아갔지요.

-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개인별로 1악기, 1스포츠를 익힌다고 들었어요.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요?
"우리 학생들이 틀에 갇힌 교육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지금 고등학교 학생들은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틀에 갇혀 있고, 사회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요. 이렇게 오직 '하나의 길'만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부족한 것은 창의력인 것 같아요. 시키는 것은 잘하는데, 스스로 문제를 찾고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은 많이 모자라거든요."

- 학생부에 독서활동 기록 글자 수는 4만 바이트가 넘는데, 동아리활동 기록 글자 수는 1500바이트밖에 안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청소년기에 독서는 대단히 의미 있는 활동이지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학업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받거든요. 하지만 '책만 읽는 학생'이 갖는 문제점 또한 만만치 않아요. 친구들과 어울릴 줄 모르고, 뭔가 외골수인 학생을 보면 너무 학업에만 몰두해서 인생의 다른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이 걱정되죠.

그래서인데 동아리활동 기록 글자 수가 1년에 고작 1500바이트밖에 안 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들은 혼자 앉아 공부도 하고 책도 읽어야지만, 친구들과 함께 몸으로 부대끼며 활동하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하거든요. 더욱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요즘 학생들에게 동아리는 정말 의미 있는 활동이지요."

- 학생부에서 무엇을 얼마나 기록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인간상과 관련이 깊다고 보는데요. 선생님이 만약 회사 사장님이라면 전교 1등으로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뽑겠어요? 아니면 성적은 중상위권이지만 교우관계가 좋은 학생을 뽑겠어요?
"정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네요.(웃음) 저야 당연히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을 뽑죠. 회사도 하나의 사회인데 나눔, 배려, 존중, 소통 같은 덕목이 없어서는 안 되거든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볼 때 공부는 뛰어나지만 교우 관계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기의 방식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문제도 일으키고요.

그런데 '인간상'이라? 그 문제는 제가 대답하기 벅차네요. 하지만 이건 확실해요. 봉사활동이 학생부에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문제 제기도 참 많았지만, 요즘은 잘 정착되었잖아요. 동아리활동도 이것저것 기록하면, 교육부가 우려하는 대로 문제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하나씩 모자란 점을 보완하면서, 교육부가 앞장서서 동아리활동을 장려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옳은 방향이거든요. 그게 21세기를 살아갈 제대로 된 인간상이기도 하고요."

교육부 장관님, 동아리 활동 마음껏 하고 싶습니다

인사드립니다. 양현경, 박해지, 정시은, 김연지 기자입니다.
▲ 동아리 활동을 신나게 하고 있는, 사랑해여수 6기! 인사드립니다. 양현경, 박해지, 정시은, 김연지 기자입니다.
ⓒ 박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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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쓰면서 우리는 책을 읽었어요. 책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돌아보았고, 책을 통해 우리는 고단한 현실에서 꿈을 꿀 수 있었지요. 하지만 입시전문가 최영석씨의 <99% 학부모가 헛고생을 하고 있다>(꿈결, 2012)라는 책에 나온 구절이 우리를 슬프게 했습니다. 아래 말이 우리의 불안함을 파고들더라고요.

"우리 사회는 누가 뭐라 해도 학벌 사회다. 우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를 몸소 체험했고, 딱히 증거는 없지만 이 사회가 당분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심증도 있다. 그래서 불안한 거다."

그런데 핀란드 초등학교 교사인 리카 파카라의 <핀란드 교육 현장보고서>(담푸스, 2013)라는 책을 읽으며, 우리는 꿈을 꾸었어요. 무거운 가방에 축 처진 어깨로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도 집이 아닌 학원 심야반으로 향하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비교하면 핀란드 학생들은 정말 별천지에 살고 있었어요. 어떻게 저런 나라가 가능하지? 우리가 품은 이 생각이 우리에게 그대로 꿈이 되었지요.

"핀란드의 교육 시스템이 다른 나라와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핀란드 국민은 이런 교육 현실에 대체로 만족한다. 교육은 가치 있는 것인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것이며, 누구나 자신의 기량을 높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학창시절뿐 아니라 평생 배울 수 있다.

핀란드 사람에게는 인생 자체가 배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더 좋은 쪽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누구나 배우고,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늘 생각한다. 핀란드 사람은 마음속에 그리는 삶을 살기 위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고대 사회에서 이상적인 인간은 '생각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 바뀌었고요. 하지만 21세기에는 어떤 인간상이 요구될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에 왠지 끌리네요. 정말 요즘 아이들은 '제대로 놀 줄' 모르거든요. 어떤 의미에서 동아리활동은, 제대로 노는 법을 스스로 익히는 활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교육부 장관님, 동아리활동 열심히 하는 청소년들에게 힘 좀 보태 주시면 안 될까요? 동아리활동 기록 글자 수 좀 늘려 주세요.

(기사 작성 : <사랑해여수 6기> 양현경, 박해지, 정시은, 김연지 기자)

○ 편집ㅣ손지은 기자

덧붙이는 글 | 봉사활동을 학생부에 기록하면 그 의미가 퇴색할 것이라고 우려한 어른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친구들 중에는 봉사활동 정말 알차게 하는 이들이 꽤 돼요. 학생부에 적겠다고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느덧 그 친구를 변화시커다라고요.

동아리활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처음에는 부작용도 있겠지만, 그건 교육의 힘으로 바로잡아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글자 수 늘리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올해부터 좀 바꿔 주시면 좋겠어요. 이제 학생부 기록하는 계절이 다가오거든요. 기말고사가 끝나면 학교는 학생부 기록하는라 정신이 없는데, 걱정입니다.



태그:#사랑해여수, #동아리활동, #학생부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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