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세월호 사건을 겪고 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교육을 일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에 주목하며 '나로부터 행하는 교육, 공적 글쓰기'라는 주제로 2015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엽니다.

나 자신부터 가르쳐지고 길러지지 않으면 누구도 교육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종이 위에 있는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연마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실제로 그렇게 걸어 나가는 우리가 되길 바라며, 2015교육문화연구학교는 10월 9일부터 12월 18회까지 총 10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 말 -

"저는 항상 늦었어요. 한글도 초등학교 2학년 때 깨우쳤어요. 성적을 15등급으로 매겼을 때 14등급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대학교는 재수해서 갔고, 2.55의 평점으로 졸업했죠. 첫 직장은 타워팰리스를 건설하는 노가다 현장이었어요. <오마이뉴스> 입사는 서른 살에 했어요. 제가 남들보다 빠른 건 딱 두 가지예요. 달리기와 노화. 달리기는 지금도 스무 살 친구들보다 빨라요. 노화는 이십 대 후반에 벌써 머리가 훤해지기 시작했어요."

  박상규 기자는 유쾌하고 천진난만했다. 늦어도 괜찮다고, 그러니 비교하지 말라는 그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박상규 기자는 유쾌하고 천진난만했다. 늦어도 괜찮다고, 그러니 비교하지 말라는 그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 강한종

관련사진보기


박상규 기자는 유쾌하고 천진난만했다. 늦어도 괜찮다고, 그러니 비교하지 말라는 그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백수기자라는 말마따나 자기가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껏 쓰면서 살기 때문일까. 지난 10월 30일, 새들생명울배움터가 연 2015교육문화연구학교 '나로부터 행하는 교육, 공적 글쓰기' 네 번째 시간의 강사로 선 박상규 기자는 '진실의 길, 글쓰기의 힘'이라는 주제로 <오마이뉴스> 10년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왜 백수기자가 되었는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더 행복해지려 4대문 밖으로

2004년 <오마이뉴스>에 입사한 박상규 기자는 사회부, 정치부, 편집부 등을 거쳐 일했다. '올해의 인터넷기자상'과 '언론인권상'을 받았다. 2014년 돌연 사직서를 낸다. 그는 10년 동안 일하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사표를 쓴 거였다고 한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규직 기자 생활을 하며 주로 서울 4대문 안에 있었어요. 4대문 안에는 화이트칼라가 수두룩해요. 나 역시 4대문 안에서 일한다는 우월감을 느꼈어요.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될까 싶었어요. 4대문 안에는 블루칼라가 보이지 않잖아요.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가난한 농부 들이 안 보여요.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4대문 안에 분명히 있지만 예민하게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거죠."

사직을 결심했지만 결단하기까지 망설였다. 황우석 사태 최초 내부 고발자인 취재원을 인터뷰하던 중 퇴사 고민을 넌지시 꺼내놓았다. 고발자는 "사람은 때로 벼랑 끝에 서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살길이 열릴 겁니다"라고 격려했다. 그 말대로 박상규 기자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는 4대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오마이뉴스>를 떠나며 긴 사직서를 썼다. (관련 기사 : 더 행복해지려 <오마이뉴스>를 떠납니다) 4대문 밖으로 나왔다. 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오랫동안 취재하고 발품을 팔아 글을 쓰고 싶었다.

  박상규 기자는 4대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오마이뉴스>를 떠났다.
 박상규 기자는 4대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오마이뉴스>를 떠났다.
ⓒ 강한종

관련사진보기


"기자는 소속 매체가 아닌 기사로 말한다. '계급장' 떼고 기사로 말하고 싶다."

박상규 기자는 <다음펀딩뉴스> 프로필에 이렇게 적었다. 경찰, 검찰, 법원이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다뤘고, 당사자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살아왔는지 글을 쓴다. 기가 막힌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살인범으로 누명을 씌우는가 하면, 무고한 여자를 아버지를 살해한 무기수로 만들기도 하고, 진범이 따로 있는 데도 15살 아이를 택시기사 살인범으로 창조해 내기도 한다. 국가는 힘없는 이들을 강압과 날조, 폭력 수사로 감옥에 몰아넣었다. (관련 기사 : <다음펀딩뉴스> 프로젝트)

박상규 기자를 요즘 많이 울리는 이들은 삼례 나라슈퍼 할머니를 사망하게 했다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세 명의 가짜 살인범들이다. (관련 기사 :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 이들에게 누명을 씌운 이들은 떵떵거리며 산다. 사건을 맡았던 검사는 억대 연봉을 받는 변호사이고, 사건에 일부 책임 있는 인사는 현직 국회의원이 됐다. 이들을 두들겨 때려 허위 자백을 하게 한 형사는 승진해 경찰서장급의 위치에 있다.

누명을 쓴 3인조는 옛날에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기자에게 만 원만 꿔 달라고 밤에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전화기는 옛날에 끊겼다.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다. 박상규 기자가 글을 쓰면서 만난 가장 가슴 아픈 친구들이다. 그는 백수가 되어서야 이들을 만났다.

박상규 기자를 요즘 많이 울리는 이들은 '가짜 살인범 3인조'이다.
 박상규 기자를 요즘 많이 울리는 이들은 '가짜 살인범 3인조'이다.
ⓒ 강한종

관련사진보기


'3인조 가짜 살인범' 사건은 재심을 추진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기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쓰는 기사마다 다행히 후원목표금액보다 더 많이 모금됐다. 무엇보다 취재 당사자들이 기사를 통해 위로를 얻었고 존중을 받았다. 박 기자는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이들을 돕고 마음을 보듬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함께 힘을 뭉치고 있는 변호사들과 같이 아예 언론사를 만들려고 한다. 조만간 언론사 사장이 될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연애편지 쓰듯이

"사람이 언제 가장 벽처럼 느껴지는지 아세요? 저 사람이 내 말을 들을 태도가 아닐 때예요. '당신 말은 안 들어도 돼' 그런 자세로 임할 때 대화하기 싫어지죠. 세상에 원래 그런 사람은 없어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죠. '넌 원래 그렇지' 그러면 대화가 안 돼요."

박상규 기자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안 들으려고 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상대방을 규정한다. 뻔하게 여긴다. 글 쓰는 사람은 그때부터 글을 못 쓰게 된다.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이상해진다. 글 쓰는 사람은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너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식의 무례한 태도를 버리는 게 필요하다.

박상규 기자의 유쾌하고도 진중한 강의에 집중하고 있는 참석자들.
 박상규 기자의 유쾌하고도 진중한 강의에 집중하고 있는 참석자들.
ⓒ 강한종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연애편지 쓰듯이 글을 쓰라고 했다. 박 기자는 열흘 정도 절에 들어가 연애편지를 쓴 적이 있다. 인생을 살면서 그때 제일 열심히 글을 썼다. 책 한 권 분량이 나왔다.

연애편지는 사랑을 담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글이기 때문에 열심히 쓸 수밖에 없다. 새벽에도 쓰고 밤에도 쓴다. 적어도 3~4시간은 걸려서 쓴다. 오래 앉아서 깊이 생각하고 썼다 지웠다를 거듭 반복하면서 쓴다. 그래서 연애편지는 감동적이다. 진심과 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연애편지가 감동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세밀한 팩트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첫눈에 반한 날, 그녀가 무슨 옷을 입었고 어떤 말을 했고 어떤 미소를 지었는지가 적혀 있으면 '어머, 어떻게 이런 걸 기억하지?'하며 마음이 열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적더라도 사실과 벗어나 있으면 연애편지를 쓴 사람은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이다. 거짓이 들어 있으면 그 글을 읽는 독자는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또한 감동은 구체적인 팩트에서 오지만, 팩트만 나열한다고 감동이 오는 게 아니다. 계속 생각해야 한다. 깊이 생각하다 보면 상대방이 내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재해석이 된다. 동시에 내 마음이 자라난다. 내 존재가 성장한다. 글쓰기의 최대 수혜자는 쓰는 사람 자신이다. 나 자신에게 가장 좋다.

  박상규 기자는 글쓰기가 자신을 살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상규 기자는 글쓰기가 자신을 살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 강한종

관련사진보기


박 기자는 글쓰기가 자신을 살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부모의 이혼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은 박 기자가 글쓰기를 하면서 재해석됐다. 자전적 성장 소설 <똥만이>가 그랬다. 기자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아버지 덕이다. 아버지와 겪은 별의별 사건들을 박 기자는 글로 잘 쓰고 싶었다. 밤을 새며 쓴 글을 사람들은 재밌어 했다. '그래? 그럼 글이나 써 볼까' 했고, 그러다가 그는 시민기자가 됐고, <오마이뉴스> 기자가 됐고, 백수기자가 됐다. 글쓰기가 그의 상처를 치유했고, 타인의 상처를 볼 수 있게 인도했다.

박상규 기자는 취재하고 싶은 것도 많고, 쓰고 싶은 것도 많다. 소설을 몇 권 더 쓰고 싶다. 출소자들을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자신의 전 재산을 갈 곳 없는 사람을 위해 내어놓은 한 여선생님의 자서전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장의사도 1~2년 하고 싶다. 누군가의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일을 지근거리에서 보고 사랑하는 이들의 이별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기도 하다.

  강의가 끝나고 <똥만이> 책에 박상규 기자의 사인을 받는 모습.
 강의가 끝나고 <똥만이> 책에 박상규 기자의 사인을 받는 모습.
ⓒ 강한종

관련사진보기




태그:#새들생명울배움터, #교육문화연구학교, #박상규, #백수기자, #글쓰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