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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임흥순 감독
 <위로공단> 임흥순 감독
ⓒ 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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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이 없나요? 있다면 지지율이 얼마나 되나요?"
"지금 삼성의 노동 환경은 어떤가요?"
"그렇다면 노동자들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10월 28일 자정, 독일 라이프치히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예술극장 샤우뷔네 린덴펠스(Schaubühne Lindenfels). 제58회 독일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국제 프로그램으로 초청된 <위로공단>의 첫 상영이 있던 날이었다. 상영 시간도 늦은데다 위치도 외곽이라 관객이 올까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1874년도에 지어진 무도회장 건물을 개조한 예술극장이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상영 이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 GV)에서 임흥순 감독은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밤늦도록 극장을 떠나지 못했다. 통역을 중간에 두고 완벽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관객들은 열정적이었다. 영화관이 순식간에 토론장으로 변했다. 한국 현재의 노동 현실부터,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 이야기를 풀어낸 <위로공단>은 미술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무너뜨린 작품이다. 지난 5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이지만 미술 작품으로 상을 받은 것이다. 임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미술 작품으로 생각한다. 이쯤 되니 경계 짓기는 무의미하다. 동시에 한국 다큐멘터리의 영역이 확장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위로공단>은 이번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되어 3회 상영 모두 매진을 기록, 한국 사회와 한국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첫 상영 이후 임 감독을 만났다.

"우리가 입고 신는 것들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해봤으면 "

<위로공단> 임흥순 감독
 <위로공단> 임흥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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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첫 상영과 GV가 있었다. 어떻게 느꼈는지.
"일단 해외에서 관객과 만나는 건 처음이어서 느낌이 남달랐다. 젊은 분들이 많이 왔는데, 지역 정치나 사회 현실 등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질문을 많이 받았다. 굉장히 진지하고 직접적인 질문들이 인상적이었다. 한 관객의 경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해주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을 하길래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으면 된다, 그리고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좋은 사례를 많이 만들어 주는게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관객이 원하는 답을 하지는 못한 듯하지만, 굉장히 즐거웠다."

- <위로공단>의 시작은 개인의 경험, 어머니나 누이의 희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같은 감정이었다고 밝혔다. 어떻게 보면 한국적인 배경에서 오는 감정들인데, 다른 문화에서 온 외국 관객들도 이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에게 <위로공단>이 각인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머니나, 형수, 여동생과 같은 여성들의 희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시작을 했지만 그런 감정들을 표면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정서나 문화가 다르지만 여성, 노동, 현실, 고통, 불안, 삶 등 누구나 고민하고 부딪히는 보편적인 문제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공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로공단>이 한국과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하지만 두 나라의 문제로만 해석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 요즘 다큐멘터리 제작이 처음부터 해외 상영 등을 생각하고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위로공단>도 제작 및 편집 등 과정에서 해외 상영, 외국 관객을 고려한 부분이 있는가.
"아무래도 제작자(프로듀서)나 해외 배급사의 경우 그런 부분을 염두해 두긴 한다. 극장 개봉을 하게 될 경우 홍보라든가 여러가지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위로공단>의 경우 작품을 만들면서 그런 걸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이 결정되면서 고민을 하긴 했다. 해외 관객들에 맞춰서 편집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해외버전으로도 만들어보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처음부터 느끼고 생각한 대로 만들었다."

- 그렇다면 <위로공단>을 통해 외국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국과 외국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크게 다르지 않다. 생활속에서 우리가 입고 신고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현실에 관심갖는 것이 고민을 만들고 그런 고민들이 각자의 나라, 위치, 환경속에서 실천되길 바란다."

- 공단의 여성 노동자, 캄보디아 그리고 다시 한국의 현대 노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서사 구조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위로공단> 편집을 20개 버전으로 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현재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많은 10대, 20대들이 앞으로 해야 하는 부분과 가깝기도 하다. 그런 것들에 좀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 현대 노동 이야기를 마지막에 넣었다."

- 미술이냐 영화냐, <위로공단>의 경계가 모호하다.
"현대 미술의 광범위하고 다양한 형태가 모두 다 들어가 있다. 비디오로 촬영하는 것도 비디오 드로잉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형식은 영화에 가깝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술의 한계를 넓히는 부분이 있는 거 같다."

- 미술적 요소, 예를 들어 인터뷰와 이미지가 연결되는 편집 방식이 인상 깊었다.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인터뷰 내용을 재현하거나 과거 영상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분들이 이야기한 심정과 고통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창작자로서의 고민이 있었다. 예를 들어 김진숙 지도위원 인터뷰 이후 연결되는 소 도축장 장면은, 살점이 뜯겨져 나간다는 심정을 역설적이고 반어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미지는 그것만 놓고 보면 평범할 수 있지만, 어떤 이야기와 부딪쳤을 때 힘을 가진다. 그 때의 고통이나 심경을 보는 사람들이 더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런 미술 작업이나 영화들은 어떤 사건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업도 물론 필요하지만, 보는 이들이 더 고민하고 찾아보고 능동적으로 생각할 여지를 주고 싶었다."

- 향후 해외 상영일정이 또 있는지.
"11월에는 브라질 한국영화제와 캄보디아 국제영화제에 초대되었고, 12월에는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개인전을 통해 미술관에서도 보여진다. 내년의 경우 캐나다, 독일 등지에서 영화제와 국외 공동체 상영 등을 통해 이어나갈 예정이다."

- 마지막으로 <위로공단>이 어떤 영화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인간의 노동과 삶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성찰한 사유의 영화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태그:#위로공단, #임흥순,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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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베를린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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