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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29일 오후 6시 2분]

엄마 : 줄리아나, 만약 또 아프면 병원에 갈래, 아니면 집에 있을래?
줄리아나 : 병원 안 갈래.
엄마 : 병원 안 가고 집에 있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도 있는데?
줄리아나 : 응.
엄마 : 엄마, 아빠는 함께 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 하늘나라에 너 혼자 먼저 가야 해.
줄리아나 : 걱정하지 마. 하느님이 돌봐주실 거야.
엄마 : 엄마는 네가 이 상황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병원에 가면 네가 우리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줄리아나 : 응, 알고 있어.
엄마 : (울음) 미안해. 네가 엄마 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엄마는 네가 너무 그리울 거야. 
줄리아나 : 괜찮아. 하느님이 돌봐주실거야. 하느님은 내 마음속에 있어.

(2015년 2월 9일, 미셸 문의 블로그)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5살 소녀 줄리아나 스노우는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줄리아나는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다. 고통스러운 치료 대신, 따뜻한 집에서 조금이나마 평온한 시간을 보내다가 엄마, 아빠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CNN은 28일(한국시각) 불치병을 앓고 있지만 병원 치료를 거부한 줄리아나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5살 딸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한 부모의 안타까운 결정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전했다.

희귀 불치병을 앓고 있으나 병원 치료를 거부한 5세 소녀 줄리아나 스노우의 사연을 소개하는 CNN 뉴스 갈무리.
 희귀 불치병을 앓고 있으나 병원 치료를 거부한 5세 소녀 줄리아나 스노우의 사연을 소개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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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소녀 줄리아나의 한국 이름은 '유리'다. 재미교포로서 미국에서 신경과 의사로 성장한 어머니 미셸 문은 경기도 오산 미군기지에서 의무장교로 복무했다.

미셸은 2004년 같은 부대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고 있던 스티브 스노우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2년 후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는 2008년 아들 알렉스를 낳았고, 다시 2년 뒤 줄리아나를 낳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그러나 줄리아나는 첫 돌이 지나서도 제대로 서지 못했다. 의사로서 불길한 예감에 미셸은 딸을 병원으로 데려갔다. 정밀진단 결과는 상상했던 것보다 청천벽력 같았다. '샤리코-마리-투스병'(Charcot Marie Tooth disease, CMT)이라는 희귀병이었다.

부모의 유전자 질환을 물려받아 생기는 병으로, 발과 손의 근육들이 점차 위축되며, 대부분 2살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무서운 불치병이다. 더구나 줄리아나는 부모의 유전 질환이 변종되어 더욱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당시 남편의 복무 기간이 끝나지 않은 탓에 미셸은 이 모든 과정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결국 스티브는 딸을 돌보기 위해 천직이라 여겼던 전투기 조종사를 그만두고 2013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가족 품에서 세상을떠날 준비를 하는 아이

병원이 아닌 집에서 줄리아나를 돌보는 엄마 미셸과 아빠 스티브의 사진. 미셸 문 블로그 갈무리.
 병원이 아닌 집에서 줄리아나를 돌보는 엄마 미셸과 아빠 스티브의 사진. 미셸 문 블로그 갈무리.
ⓒ 미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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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의 병세는 빠르게 악화됐다. 팔과 다리를 넘어 호흡기 근육까지 약해지면서 혼자 숨을 쉴 수 없게 됐고, 산소마스크로도 부족해 물리적으로 코에 산소를 밀어 넣는 가압식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한다.

지난해에는 중환자실을 세 차례나 드나들었고, 아직 어린아이라 마취도 위험해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로 고통스러운 치료를 견뎌내야 했다. 더 이상 고통스러워할 힘도 없는 줄리아나의 안타까운 모습에 주치의는 미셸과 스티브 부부를 불러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줄리아나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보다 상태가 더 나빠지면 줄리아나는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고 가족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조금이라도 고통의 순간에서 벗어나 가족 품에서 편안히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했다.

부모로서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했지만, 같은 의사이기도 한 미셸은 주치의를 이해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너무 혼란스러웠다. 미셸은 결국 1년 전 줄리아나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딸과 가족의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지난 5월 블로그를 만들었다. 줄리아나가 퇴원한 지 1년째가 되는 지난 24일, 미셸은 딸과 보낸 일상과 함께 "더 이상 딸이 아프지 않도록,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달라"라고 썼다.

"오늘 우리는 이상한 기념일을 보냈다. 줄리아나가 병원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1년 전, 나는 지금까지도 줄리아나가 우리 옆에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줄리아나의 사연이 소개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미셸의 블로그를 찾아왔다.

"미셸이 용기를 내어 말해줘서, 우리는 그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YLK)

"나는 부모로서, 미셸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미셸과 줄리아나의 결정을 판단하지 않거나, 마음속으로만 판단하되 표현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Deb)

"글을 읽고 눈물이 가득 찼습니다. 내 아들도 같은 병을 앓고 있습니다. 매일 병과 싸우고 있지만, 믿음을 잃지 않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강합니다. 줄리아나의 결정을 따르세요. 저도 그럴 겁니다. 당신과 줄리아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Patricia)

딸 줄리아나와 엄마 미셸의 사진. 미셸 문 블로그 갈무리.
 딸 줄리아나와 엄마 미셸의 사진. 미셸 문 블로그 갈무리.
ⓒ 미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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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은 "줄리아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며 "줄리아나가 다시 아프면 우리는 물어볼 것이고, 그때도 딸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줄리아나는 홀로 앉거나 걷는 것은 물론, 책이나 장난감을 들어 올릴 수도 없다. 음식물은 배에 연결된 호스로 섭취한다. 주치의는 줄리아나의 현재 상태가 작은 감기 바이러스에 걸려도 죽음에 이를 수 있을 만큼 심각하다고 전했다. 미셸 문은 말했다.

"나는 질병이나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이야기를 나눈다면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이유입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줄리아나 스노우, #미셸 문 , #안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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