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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청소년 특별면 <너, 아니?>에 실렸습니다. <너, 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학생의 유일한 본분으로 일컬어지는 공부. 하지만 "공부만 하라"는 어른들의 질책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드러나거나 숨겨진 다양한 여러 곳에서 두각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있고, 그리고 청소년에게 힘이 되어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같은 고민에 속해 있는, 청소년인 필자가 직접 인터뷰합니다. 또, 청소년들이 모이고, 주최했던 행사나 모임을 취재합니다. 청소년 시민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집필하는 연재기획, [옆동네 1318]입니다. 이번 차례에는 종이철도모형을 만들기 시작해, 어린 나이에 전시전에 참여하는 등 2차원에서 3차원을 꺼내놓는 청소년 두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 기자 말

모형 조립의 막바지 단계. 인쇄된 전개도를 갈라내어 하나하나 붙여야 한다.
 모형 조립의 막바지 단계. 인쇄된 전개도를 갈라내어 하나하나 붙여야 한다.
ⓒ 김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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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로망'에 속한다. 어린 아이의 레고 장난감과 바비인형부터 키덜트(어린이를 뜻하는 키드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의 합성어,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지칭)들이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위해 만드는 디오라마 모형까지. 그야말로 요람부터 무덤까지 이끌고 가는 취미인 셈이다.

청소년들을 주축으로 2000년대 중후반부터 기존의 철도모형이 아닌 내 취미에 맞는 철도모형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3년 연산역 청소년 철도축제를 시작으로 서대전역 종이철도모형축제, 의왕철도축제 등 청소년이 직접 만들어나가는 전시전 등을 통해 많은 10대가 철도 문화의 주축이 되고 있다. 또 이에서 끝나지 않고 여러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매번 모형전이 있을 때마다 전시장의 한쪽 패널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은 모형을 가져오는 이가 있다. 다른 한 명의 철도모형은 전시장의 정중앙에서 관객을 반긴다.

평범해 보이는 모양에 관객이 갸우뚱한 표정으로 속을 들여다보면 창문 안에 노선도, 의자 그리고 정차역을 알려주는 LCD까지 반영한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된다. 모형 전시전마다 관객의 눈길을 빼앗는 열일곱 동갑내기들이다. 10월 25일, 종이철도모형 마니아 김영석씨와 박경모씨를 동대구역에서 만나보았다.

김영석 씨와 박경모 씨가 각자 자기가 직접 만든 모형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영석 씨와 박경모 씨가 각자 자기가 직접 만든 모형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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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서 반갑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김영석(아래 영석) : "대구 수성에 살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지금까지 쭉 종이모형을 직접 만들어 오고 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만류와 주변인들의 무시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학업때문에 당분간은 이미 만든 모형을 제외하고 더 만들거나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박경모(아래 경모) : "부산 해운대에 살고 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주로 내부의 디테일을 재현한 모형을 만들어오고 있다. 최근 들어서 다른 분야에도 손을 대서, 백양리역 모형 등 건물 모형도 만들고 있다."

- 종이철도모형이라는 개념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종이철도모형의 개념이 무엇인지, 언제부터 사람들이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경모 : "간단하다. 종이 위에 기차 도면을 인쇄해서 차량 모양으로 접어 만드는 것이 종이철도모형이다. 가장 간단한 것은 과자곽 위에 기차 모양을 그리는 유치원생의 작품도 종이철도모형이지만, 빠져들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취미이다."

영석 : "국내에 나왔던 철도모형이 일본제 철도모형에 비해 매우 적고 비쌌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형을 갖고 싶었지만 이를 대체할 방법을 찾은 게 종이철도모형이 발달했던 이유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종이철도모형을 다루는 카페가 생겨났고, 이들의 모형을 전시하는 전시회는 2010년대부터 시작했다."

- 어떤 계기로 이 모형들을 접했고, 만들기 시작했는가. '뜯어만들기' 류의 제품 외에는 보통 접하기 어려운 것이 파라곤 모형인데.
경모 :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모형을 접했다. 처음엔 다른 모형 만드는 사람들 모형의 전개도를 받았는데, 처음에 전개도를 손대자니 꽤 어려웠다. 그러다 이런 모형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 결국 지금까지 모형을 만들고 있다."

영석 : "인터넷을 찾다가 발견한 종이모형 전개도를 이용해 우연히 모형을 만들어보게 되었다. 그 이후 종이철도모형이라는 취미에 매력을 갖게 되었는데, 이때 다른 모형제작자분의 동기부여가 있었다. 또 내 자신이 뭔가 멋진 모형을 만들기보다는 가지고 싶다는 소유욕이 앞섰다. 그리고 한국산의 철도모형이 2000년대 이후 국내 생산된 것이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 더더욱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모형을 조립하는 과정. 내부재현은 끈기와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한다.
 모형을 조립하는 과정. 내부재현은 끈기와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한다.
ⓒ 박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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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만든 모형들을 간략히 소개해달라.
영석 : "주로 광역시에 다니는 지하철 차량을 만들어왔다. 남과 다른 점을 꼽자면 디자인이 공개된 열차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반이 되는 전개도 일러스트의 화질을 높임으로써 실사나 다름없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단점이 있는데, 자료를 많이 얻을 수 없는 열차들은 빠르게 만들어 낼 수가 없고, 모델링도 오래 걸린다. 오래전 다녔던 비둘기호나 통일호같은 기차들은 만들기가 어렵다."

경모 : "주로 내부를 재현시킨 모형을 많이 만들고 있다. 내부의 좌석을 비롯해 노선도, 그리고 LCD까지 종이로 만들어서 재현을 시킨다. 객실 내부를 실제로 사진으로 촬영하는 등 고증에 충실했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은 모형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 종이철도모형을 만드는 과정과 필요한 것을 간단히 소개해 줄 수 있는가.
경모 : "만들고 싶어하는 철도차량의 외부 사진과 내부 사진을 수집하고 그 사진자료를 토대로 전개도를 만든다. 전개도를 만드는 데는 2주가 걸린다. 그 전개도를 인쇄소에서 인쇄해서 잘라 만들기 시작하는데, 좌석 하나하나를 따로 잘라서 붙여야 하는 '노가다 작업'이라 집중력이 큰 관건이다.

다행히도 전개도를 만드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아서... 꼬박 한나절이 걸린다. 창문같이 투명한 재료는 OHP 필름을 이용해 제작한다. 종이는 아트지를 사용하고 있다. 전개도를 만들 때는 그림판을 사용한다. 그림판을 써서 오래 걸리는지도 모르겠다.(웃음) 필요할 때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쓴다."

영석 : "실차 정보를 얻어서 사면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실차 정보를 토대로 양 옆, 위의 사면도를 따온다. 미리 만들어서 상황에 맞게 큰 사이즈, 작은 사이즈 등 여러가지 크기로 만든 사면도를 전개도로 변환시키고 인쇄 전문점에서 인쇄해서 집에서 조립한다. 조립이 쉬워서 여러 사이즈로 다양하게 만들 수 있고, 짧게는 3일밖에 모형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이 들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차량이 인터넷에 공개되면 빠르게 만들어서 공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쇄할 때는 중량지에 인쇄해서 쓰고 있다. 전개도 그릴 때는 역시 그림판을 쓰고 있다. 포토샵도 병행해서 쓰고 있다."

- 모형을 만들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영석 : "우선 어려운 점은 자료수집이다. 그리고 복잡한 디자인의 전동차나 광고, 캐릭터 등의 랩핑이 되어 있는 열차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 모형의 결과물을 인터넷 블로그나 철도 애호인들의 카페에 공개를 하는데, 간혹 가다가 모형의 전개도를 구걸하거나, 전개도의 스캔본을 복사하여 자신의 것처럼 이름을 붙여 놓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노력이 다른 사람의 덧칠에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바뀌기 때문에 가장 기분이 나쁘다."

경모 : "내부를 만들기 때문에 자료수집이 굉장히 어렵다. 작업 중에 원본이 통째로 날아갈 때가 있는데, 간혹 가다가 전개도 이미지를 만드는 프로그램이 그대로 뻗어서 원본이 몇 시간 전, 심하게는 며칠 전으로 되돌려질 때가 굉장히 많다. 이때는 하던 것도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짜증난다."

매 년 8월에 열리는 종이철도모형축제는 종이철도모형에 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의 산물이다.
▲ 제 3회 서대전역 종이철도모형축제의 전경 매 년 8월에 열리는 종이철도모형축제는 종이철도모형에 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의 산물이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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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는데, 이로 인해 모형전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김영석 씨가 서대전역 종이철도모형축제에 전시한 모형들 가장 많은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는데, 이로 인해 모형전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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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전시회에 참여한 것으로 안다. 지금까지 어떤 전시에 참여했고, 어떤 모형을 전시하였었는지 알고 싶다.
영석 :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이 개통하여 대봉교역과 대구백화점 대백프라자가 연결되어서 접근성이 향상된 것을 기념하여 3호선 개통 한 달 전부터 기념으로 모형 전시를 11층 갤러리에서 진행했다. 내가 만든 3호선 모노레일 모형이 주로 전시되었고, 경모의 모형이나 김진광 형의 모형도 같이 전시되었었다.

청소년이 주최했던 연산역 철도문화전에도 전시를 했고, 제1회 종이철도모형전에는 올해까지 개근하고 있다. 연산역에서 시작해 2회부터 서대전역으로 옮겨와 2013년부터 매 해 전시중이다. 의왕철도축제에도 모형을 제출했었다."

경모 : "마산역에서 소화물차 6량을 개조해서 그 중 한 량을 휴게실로 만드는데, 이 곳에 모형을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여기에 종이모형을 영석이와 함께 제출했다. 10월 30일에 전시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공사가 늦어져서 11월 중반으로 늦춰졌다. 대부분 영석이와 같은 행사에서 모형을 출품한다.

종이철도모형전은 2회부터 참여했다. 의왕철도축제, 어린이날 철도박물관에서 두어번 모형을 전시한 적도 있다. 지난 5월에는 득량역 추억의 마을 개장때는 사람이 직접 쓰고 다닐 수 있는 옛날 기차 모형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서 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코레일 최연혜 사장이 내 옆을 지나다가 "여기 우리 직원인가봐요"라는 농담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 철도모형을 직접 만들다보면 자신에게 오는 '성장'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진로나, 미래설계, 성격같은 것을 예시로 들 만한데, 어떤 면에서 성장했는가.
영석 : "한때는 여러 꿈을 꾸었는데, 모형전을 통해서 철도 관련 직종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 되었다. 디자인에 대한 안목도 생겨서 여러 분야의 디자인도 해 보고,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보고 있다. 하지만 모형을 만들면서 가족이나 인터넷 상의 사람들과 마찰을 자주 빚다보니 성격은 예민해졌다. 소심한 성격은 그나마 전시회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어필할 기회가 주어지다보니 점점 외향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경모 : "진로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기차를 몰고 싶었다는 것, 이것 하나는 단단히 자리잡혀서 바뀌지 않는 것 같다. 2년 전부터 모형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일러스트를 다루는 실력이 늘었다. 모형을 처음 만들 때는 조금 소인배같은 면모가 있었는데, 모형을 자주 만들다보니 다른 사람과의 마찰에서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웬만한 일에는 편하게 넘어가는 성격이 된 것 같다."

실제 차량을 보는 듯한 퀄리티는 많은 노력의 산물이다.
▲ 박경모 씨가 만든 모형의 내부 실제 차량을 보는 듯한 퀄리티는 많은 노력의 산물이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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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모형이 신기하게 여겨져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사람이나, 또는 종이모형제작이라는 분야 자체에 입문한 초보들에게 그리고 행사때마다 모형을 같이 만들고 전시하는 동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경모 : "앞서 말했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전개도를 이용해 자신의 전개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의 만족을 위해 다른 제작자의 제작의지를 꺾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이 때문에 큰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안다. 모형의 전개도 같은 것을 퍼갈 때 최소한 제작자가 누군지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영석 : "이런 모형은 끈기있게 만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형을 처음 전개도만 받아서 만들기 시작하면 쉬워보이나, 직접 전개도를 만들기 시작하면 어려운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게임을 하듯이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전개도를 따라하려고 도전하기보다는 쉬운 전개도부터 만들어가면서 행사에 출품도 해보고 실력을 키우다보면 실력이 성장해 있을 것이다."

철도모형을 가지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종이철도모형. 특히 이 모형전시의 시작은 호남선 연산역에서 있었던 청소년 철도축제가 시작이었다고 한다.

청소년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청소년이 주가 되는 몇 안 되는 문화임이 돋보인다. 앞으로도 종이철도모형이 청소년의 주도로 이어지는 하나의 문화로 남았으면 한다. '순수한 제작욕'과 '시간'은 청소년기에 소비할 수 있는 가장 큰 재력이기 때문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본인이 직접 '뛰어나다고 느끼는' 청소년이라면 얼마든지 이 연재기획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태그:#종이철도모형, #철도 애호, #철도매니아, #철도모형,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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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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