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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0월 15일 이른 아침, 그날이 주중인데도 시간을 내어 경남 함안에 있는 시댁에 갔습니다. 며칠전부터 어머니께서 그날 읍내 병원에 들러 무릎에 주사도 맞아야 하고,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이기에 이것 저것 장도 보려면 작은 며느리인 제가 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쳤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계획했던 일을 마치고 차에서 짐들을 내리는데, 마침 시댁 앞집에 살고 있는 집안의 윗동서가 대문을 나서면서  "동서 왔나? 오늘은 강의하러 안 갔나?" 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아~ 네~ 형님. 그런데 제가 강의를 하러 다니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여쭈었더니, "지난번에 동네 동장이 나한테 그러던데? 작은집 작은 며느리가 어디 강의를 하러 다니냐고..." 하십니다.

그간의 사연을 알아보니 지난 6월, 시아버님과 시어머니의 부부싸움을 화해시키기 위해서 두분 앞에서 강의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시어머니께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동네 동장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우리 둘째 며느리가 강의를 하러 다닌다고.

얼마전에 강사들이 동네 마을 회관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강의를 했는데, 다음에도 강사를 불러 올 일이 있으면 우리 작은 며느리에게 부탁하라고 했답니다. 그 이후에 동장님은 우연히 집안의 윗동서를 만나자 그 사실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집안의 형님에게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요. 마을 동장에게 며느리를 홍보하러 다니셨을 어머니의 마음이 와 닿았고, 지난 8월 15일에도 저의 친정집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시도 넘은 깊은 밤,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가족들입니다.
 10시도 넘은 깊은 밤,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가족들입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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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친정은 열두 남매입니다. 지난 8월 초, 친정식구들만이 회원으로 가입한 가족 카페에 넷째오빠가 가족 모임을 위한 공지사항을 올렸습니다

더운 여름 날씨에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비워진 채로 있는 친정집에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8월 15일과 16일 1박2일의 하계 단합회를 갖자고 했습니다.

많이들 참석해서 서로 안부도 전하고 어렸을 적 추억도 나누면 좋겠다는 이야기에 저희집에서는 저 혼자만 친정집 단합회에 참석했습니다. 5남 7녀 열두 남매 중 3남 3녀가 기꺼이 참석을 했고, 넷째 올케언니와 외사촌 오빠와 큰집 오빠도 아들과 함께 가족 단합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친정집 주위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모닥불을 피우고 삼겹살을 굽고,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커다란 상을 폈습니다. 그리고 전깃줄을 길게 내어 조명불도 밝혔습니다.

카톡을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강의내용을 전달하는 동생..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가족들도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카톡을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강의내용을 전달하는 동생..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가족들도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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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다 된 큰집오빠는 가족 카페에 올려진 친정어머니의 동영상을 보면서 연신 눈물을 훔쳤습니다. 오늘날 지금까지 큰집 오빠가 존재하는 이유가 오로지 작은 어머니께서 자신을 자식처럼 돌봐 주시고 거두어 주신 까닭이라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친정어머니께서 우리들 곁을 떠난 지도 2년이 넘었는데도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듣는, 제가 채 알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도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즐거웠던 저녁식사를 마치고, 여러가지 과일을 후식으로 나누어 먹은 후 친척들은 자리를 털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친정집 마당에는 오롯이 우리 3남 3녀 6남매와
넷째 올케언니만 남았습니다.

과일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의 근황으로 화제가 옮겨 왔습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 대상, 노인복지관 그리고 기업체에 강의를 나가고 있는 저의 강의 내용을 궁금해 했고, 마침 노트북을 지참하고 온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강의를 해도 되겠나고 물었더니,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강의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여름밤, 마당에 모깃불 피워 놓고 몸빼바지와 맨발로 강의를 시작한 시간은 오후 10시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강의 주제는 '후회없는 행복한 삶과 웰다잉'이었습니다. 그동안 노인복지관과 기업체에서 이 강의를 할 때 마다 많은 분들에게 반응도 좋았고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강의 말미에 10분 정도 전해 주는 친정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좋아했기에 저는 그 강의를 할 때 마다 우리 친정식구들에게도 꼭 들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 형제도 모르는 친정어머니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형제들이 더 오랫동안 어머니를  기억했으면 좋겠고, 자신들에게 남겨진 삶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는 친정어머니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우리 형제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저의 동생은 저의 강의 모습과 강의 내용을 부지런히 카톡으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형제들과 조카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강의를 마무리할 즈음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큰오빠와 둘째오빠, 그리고 넷째오빠는 처음에는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장난스럽게 저의 강의를 듣고 있다가, 시간이 흐를 수록 진지한 자세와 표정으로 경청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빠들이 다 알지 못하는 친정어머니의 남겨진 이야기를 듣고 보여 주었던 표정은
지금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넷째 오빠는 강의가 끝난 후, 이번 단합대회는 네 강의로 인해서 더 빛이 났다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다음  모임은 더 많은 형제들과 조카들도 참석하도록 하겠으니, 그때 더 좋은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강의비도 주겠다면서 오빠의 지갑을 열었습니다. 둘째 오빠 또한 저의 강의가 끝난 이후에 제 주변을 맴돌면서 여러가지 조언과 더불어 칭찬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강의를 하기 위해서 초등학생에서부터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저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마주 보면서 강의를 하다보면, 어느 강의도 소중하지 않고 가슴 설레지 않았던 강의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친정집 마당에서  일바지와 맨발로 형제들 앞에서 펼쳤던 강의는 오래도록 저의 마음에 남을 강의였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날 친정에서 저의 강의를 들었던 동생은 평소 자신이 다니고 있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원교사'의 주지스님에게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친정모임에 갔는데 친정언니의 '행복과 웰다잉' 강의도 들으면서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 왔다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주지스님은 '원교사'에서 신도들을 대상으로 언니가 '웰다잉' 강의를 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동생은 저에게 강의 요청을 했습니다.

그렇게 일이 진행이 되어, 일요일이었던 9월 6일 오전 10시, 서울 '원교사'에서 '후회없는 행복한 삶과 웰다잉'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습니다. 그날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부부들과 대학생 신도들이었습니다. 저의 강의가 끝나고 주지스님이신 '계환 큰스님'께서는 다음에는 일반인 신도를 대상으로 강의를 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참 알 수 없습니다. 시부모님을 화해시키고자 시부모님 두분만을 위한 저의 강의가 시댁 동네에서 쫘하게 소문이 날 줄 어찌 알았겠는지요? 늦은 밤 일바지에 맨발로 친정식구들 앞에서 강의를 했다가 감히 '계환 큰스님'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될 줄 꿈이나 꾸었겠는지요?

이처럼 저의 시어머니께서, 또 친정 동생이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 저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강사라는 직업을 너무나 사랑하는 까닭이 첫 번째일 것입니다. 그리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강의라는 저만의 방법으로 그분들께 작은 즐거움을 선물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저의 강의는 지금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저는 확실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러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웰다잉, #행복한 삶, #친정어머니,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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