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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무게는 68킬로그램인데, 뇌의 무게가 1.4킬로그램 정도 된다고 하니 몸무게의 약 2퍼센트 정도다. 이 작은 뇌가 하루에 내가 사용하는 새로운 피의 25퍼센트, 칼로리의 20퍼센트를 소비한다고 한다. 화나거나 긴박한 일을 겪을 때 머리에서 열이 난다고들 말하는데 그게 그냥 농담만은 아닌 것 같다.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표지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표지
ⓒ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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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킬로그램의 우주, 뇌>는 카이스트 교수인 세 분의 과학자들이 진행한 강연을 엮은 우리의 뇌에 집중한 책이다. 읽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 수학과 과학시간이 떠올랐다. 그 시절엔 이 두 과목을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꼈다. 그러니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기가 어려웠고 곧 포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세계사 선생님께서 칠판에 아메바 모양처럼 낙서를 하시더니 "수학이나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이것의 면적을 구할 수 있겠니?"라고 물으셨다. 어리둥절해 하던 우리들에게 "지구바깥에 인공위성 띄우고 비행기 만들고 자동차 만드는 일들은 이런 수학이나 과학이 이론적 기초가 된단다" 하시는 게 아닌가.

뇌의 구조와 기능

뇌의 가장 안쪽엔 숨뇌와 뇌와 소뇌를 연결하는 다리뇌, 중간뇌로 구성된 뇌줄기가 있다. 뇌줄기 위엔 감각신호가 모이는 시상과 신진대사와 식욕을 관장하는 시상하부의 2가지로 구성된 사이뇌가 있고,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공포와 분노의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 시상앞핵 그리고 둘레엽으로 구성되는 둘레계(변연계)가 있다.

해마 바깥쪽엔 대뇌가 있는데 대뇌는 안쪽의 백색 겉질과 이를 덮고 있는 회색의 대뇌겉질로 이루어지며 대뇌의 좌우 반구는 뇌들보(뇌량)을 통해 정보를 교환한다.

기계적 설명으로 복잡한 뇌의 구조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다. 그런데 우리는 뇌가 1000억 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신경세포의 축삭돌기와 가시돌기가 주고받는 전기신호를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화학물질로 바꿔주는 구조물인 시냅스가 각 신경세포에 100개에서 1000개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우리 뇌에서는 약 10조개에서 100조개의 시냅스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경이로운 사실을 말이다.

신경세포와 신경세포가 가지고 있는 시냅스의 변화는 이마엽에서는 기민한 판단력, 편도체에서는 분노와 공포, 측좌엽에서는 치사함과 공정함과 같은 우리의 이성과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신경세포의 기능부족은 알츠하이머와 파킨슨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뇌공학과 교수인 정용박사는 현재 쥐의 머리뼈에 구멍을 뚫고 유리창을 끼워 넣은 다음 뇌에서 주고받는 전기신호와 화학신호를 관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조용한 살인자라고 별명되는 알츠하이머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하는 선택은 얼마나 합리적인가

우리는 하루에 만 번 이상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이러한 선택이 항상 공정하고 합리적일까 하는 의문은 당연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우리의 뇌는 최대 100조 개의 시냅스가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하루 우리 몸에 필요한 칼로리를 5분의 1이나 사용하고 있으니 때로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뇌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적절한 행동을 유발하고자 하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데 정재승 박사는 그게 바로 습관이라고 정의한다. 습관은 바로 지난한 노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등장하는 주인공 존 내시(러셀 크로우)는 수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다. "상대방이 이런 선택을 하면 나는 그것에 맞추어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꼼꼼히 계산한 다음 나에게 가장 큰 보상을 주는 전략을 찾는 논리적인 방법을 탐구하는 학문"이 게임 이론인데, 존 내시가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해답은 '내시평형(nash equilibrium)'인데, 이것은 '상대방이 굳이 전략을 바꾸지 않는 한 나 또한 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는 적절한 상태'(p.186)를 말한다. 이 이론은 국제협상이나 무역협정 등에 활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정재승 박사는 실제 경제활동에서는 내시평형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결론이 곧잘 등장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최후통첩게임(ultimate game)'처럼 말이다. 이 게임은 두 명의 피실험자를 두고 한 명(제안자)에게 돈을 준 다음, 그 돈을 다른 한 명(수용자)과 나누게 한다.

돈을 받게 되는 수용자에게는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수용자는 금액이 얼마가 됐든 주는 대로 받는 편이 이익인데, 절반 이하의 금액을 받는 경우 70퍼센트나 되는 사람들(수용자)이 거절한다는 충격적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이 실험의 요체다.

재미있는 사실은 피험자 중 돈을 나눠주는 권한을 가진 제안자들 중 절반 이상이 5대5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9대1이나 8대2를 제안해도 되는데 말이다. 이것은 우리의 뇌섬(insula)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상한 음식이나 분뇨 같은 실제로 더러운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역겨움 외에도 사회적 불공정함(social unfairness)을 경험할 때 느끼는 역겨움과 유사한 감정을 표상하는 곳이 바로 뇌섬'(p.203)이라는 설명에서 나는 때때로 개인적 이익과 공익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화상을 본다.

우리 인간이 '사실은 아주 가끔만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주장하는 정 박사의 연구과제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것이다. '수 많은 비합리적인 선택 사례가 뇌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분야를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이라고 부르는데 10년도 채 안된 분야라며, 예비 과학도들에게 도전해 볼만한 분야라는 것이다. 30년만 연구하면 선구자가 될 수 있다나.

생존과 번식

하루살이, 실제로는 하루도 못 되는 17시간쯤을 산다고 한다. 가끔 차 앞 유리창에서 사체로 발견된 녀석들은 그 조차도 못 산 거라고 생각하니 새삼 삶의 무상함을 느낀다. 하루살이는 태어나서 몇 시간 만에 알을 낳자마자 삶을 마감하는데, 생이 짧아서일까 하루살이에겐 입도 없다고 한다.

암사마귀는 교미 중 수사마귀의 머리를 먹어 치운다. 교미가 끝나면 나머지도 해치운다고 한다. 머리를 먼저 먹는 잔악함을 보이는 이유는 뇌가 없어야 수사마귀가 도망을 칠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암사마귀의 잔악함은 영악함으로 바뀐다. 동물들에게 생존과 번식이 상충하는 상황에서는 번식이 우선한다고 한다. 자연의 숭고한 섭리에 숙연해지는 면도 있지만 자손의 번창은 곧 내 삶의 연장이라는 면에서 선택은 합리적이다.

"매일 다른 사람과 지지고 볶고, 슬퍼하기도 좌절하기도 하는 이런 삶에 의미를 부여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기관이 뇌인 것입니다"는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김대수 교수의 말이다. 뇌연구의 목적이기도 하고 동기이기도 하다.

"인간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사실 리더십이 아니라 '팔로워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리더십을 고양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입니다. 밴드 웨건 효과(band wagon effect, 편승 효과), 동조 효과 같은 행동이 진화적으로 훨씬 더 안정된 행동이라는 뜻입니다."(p. 210)

정재승 교수의 말이다. 그래서 체제 저항적인 사람들이 많은 조직은 문제가 많은 조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조직의 리더라고 뽐내는 인사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특히, 정치인들 말이다.

참고로 정치와 종교를 함께 관장하는 뇌의 영역이 마루엽이라고 한다. 마루엽의 고장은 정치가 종교가 되거나 종교가 정치가 되는 상황이 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상당수에게 해당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공교롭게도 마루엽은 뇌의 가장 꼭대기 부분이다. 인간사에서 종교와 정치가 차지하는 자리처럼.

세계사 선생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학 과학 포기자가 되고 말았다. 질문만 하면 선생님들의 핀잔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내 질문의 수준이 너무 저 차원적이었으니 당시의 선생님들이 야속하긴 해도 이해한다. <1.4킬로그램의 우주, 뇌>를 읽으면서 수학과 과학이 사실은 재미있는 학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문학적 사유마저 가능하게 하는 재미있는 뇌 이야기가 이 두 가지 기초학문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정용, 정재승, 김대수 지음, 사이언스북 펴냄, 2014년 7월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정재승.정용.김대수 지음, 사이언스북스(2014)


태그:#수학, #과학, #뇌,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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