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량의 율동 지난 2014년 3월 25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와 서울 SK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울산 모비스 치어리더 박기량이 관중의 흥을 돋우며 춤을 추고 있다.

▲ 박기량의 율동 지난 2014년 3월 25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와 서울 SK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 울산 모비스 치어리더 박기량이 관중의 흥을 돋우며 춤을 추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터진 프로야구 유명 선수 A씨의 사생활 폭로 글에 언급되어, 애꿎은 제3자 치어리더 박기량이 논란에 휩싸였다. 박기량은 소속사를 통해, 악성 루머를 처음 퍼뜨린 누리꾼 B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A선수의 전 연인이라고 주장한 한 B씨는 지난 8일, A의 바람기로 최근 결별했다고 고백하며 그의 부정적인 사생활을 개인 SNS를 통해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뜬금없이 박기량의 이름이 언급됐다. B씨는 A선수가 평소부터 소속팀 감독과 야구계 동료 선수들, 팬들을 가리지 않고 비난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선수가 메신저를 통해 치어리더 박기량을 두고 입에 담지 못할 성희롱성 뒷이야기를 올린 내용까지 여과 없이 공개했다.

치어리더를 향한 편견과 색안경

결국 제3자인 박기량이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박기량은 자신을 언어성희롱한 A선수와 그 내용을 유출 시킨 여성 B씨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로 알려졌다. A선수와 박기량과의 공식적인 관계는 같은 팀의 선수와 치어리더였다는 게 전부다. 그나마도 A선수가 올 시즌 트레이드되기 전의 일이다. 그런데 박기량은 단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타인들의 '치정극'에 연루됐다. 자칫 이미지에 큰 오점을 남길 수 있는 피해를 보았다.

이는 박기량이라는 개인의 이미지 손상은 물론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치어리더라는 직업군 전체의 명예까지 훼손하는 일이다. 평범한 일반인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성희롱이나 성추문은 평생토록 남을 상처다. 하물며 박기량처럼 항상 수많은 대중과 직접 마주하고 호흡해야 하는 '감정 노동자'에 가까운 직업을 가진 여성이라면, 그녀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고통이나 후유증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고 송지선 아나운서 명복을 빕니다 지난 2011년 5월 24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1 프로야구 LG-두산의 경기. 관중석에서 LG 한 팬이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명복을 비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고 송지선 아나운서 명복을 빕니다 지난 2011년 5월 24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1 프로야구 LG-두산의 경기. 관중석에서 LG 한 팬이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명복을 비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가장 비극적인 사례가 몇 년 전, 한 선수와의 스캔들에 휩쓸려 자살로 세상을 등진 고 송지선 아나운서였다. '야구여신'으로 통하던 송 아나운서의 비극은, 추문도 추문이지만 그녀가 이미 유명한 여성 방송인이었기 때문에 파장이 더 커졌다.

박기량 역시 이미 야구팬만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을 정도의 유명인이다. 수년째 스포츠계를 대표하는 스타 치어리더로서 해당 직업군의 '아이콘'이라고 할 만한 지명도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악성 루머가 처음 터지고 난 후, 더 화제가 된 것은 A선수나 B씨 간의 관계보다는 '박기량'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고 송 아나운서 때보다 더 심각한 점은, 박기량은 실제 사건의 당사자도 아닌데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부류의 사건일수록 대중과 언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작 진실 자체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저 유명인의 추문이라는 화제성만으로도 선정적인 가십에 더 시선이 끌리는 게 여론의 속성이다. 설사 악성루머가 사실무근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식으로 한동안 색안경을 끼는 낙인은 지워지기 어렵다. 억울한 피해자일지도 모를 당사자가 받을 고통이나 피해에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인격 살인한 A선수, 무차별 유포한 B씨... 누가 책임질 건가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감정 노동자의 가치나 그 고충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특히 치어리더처럼 마초적이고 보수적인 정서가 강한 스포츠계에서 활동해야 하는 여성 인력들은, 직업군 고유의 전문성으로 존중받기보다는 아직도 막연한 선입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미모의 여성들이 혈기왕성한 남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접할 기회가 많으므로, 선수들과도 당연히 친하거나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과 편견이 대표적이다.

악성 루머의 진원지이자 본인이 프로야구 선수이기도 한 A가 '선수와 치어리더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마치 흔한 일처럼 언급한 대목은, 진실 여부를 떠나 일부 선수들조차도 치어리더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를 은연중에 보여준다. 더 큰 부작용은 이런 무책임한 루머들로 인하여 팬들이 야구계나 치어리더라는 직업군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이다. 이는 결국 야구계 종사자들의 품위와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일 뿐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역시 확인되지도 않은 개인의 일방적인 주장이자 루머를 그저 자신의 분풀이 목적으로 퍼뜨려서 제3자에까지 심각한 손해를 끼친 B씨에게 있다. 개인의 인성적 결함도 결함이지만, SNS라는 도구의 폐해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SNS에서 사생활이나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근거 없는 루머나 책임지지 못할 이야기들을 함부로 퍼뜨리는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도 경각심을 느껴야 할 대목이다. 뒤늦은 반성이나 사죄를 한다고 해도 어설픈 용서가 진정한 해결책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B씨보다 더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이 바로 악성 루머의 첫 진원지가 된 A선수다. 개인적 뒷말이고 공개적으로 퍼트릴 의도는 없었다고 하지만, 책임지지 못할 발언으로 타인의 인격과 명예를 짓밟은 A선수의 행태는 사실상 '인격살인'에 가까운 중범죄다. 단지 젊은 혈기나 우발적 실수에 의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인성적 결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B씨의 무책임한 폭로 못지않게 여론은 A선수의 '비겁한 침묵'에도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A선수는 과거에도 사생활 사진 유출 등으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개인의 여성편력이나 B씨와의 치정극 등은 그저 당사자들 간의 사생활 문제로 해명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본인의 경솔하고 무책임한 처신으로 애꿎은 제3의 여성까지 심각한 피해를 당했다. 그런데도 A선수는 아직 최소한의 공식적인 입장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이 또한 어쩐지 과거 고 송지선 아나운서 사건 때와 비슷한 데자뷔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이미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A선수의 실명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대중이 그가 어느 구단 소속의 누구인지 알고 있다. 전 여자친구의 일방적인 폭로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법적 책임'은 최대한 비껴갈 수 있을지 모른다. 본인이 근거 없는 루머를 퍼뜨리고 타인을 비방했다는 '도의적인 책임'은 결코 피할 수 없다. 혹시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고, 사죄할 일이 있으면 사죄해야 한다. 그게 그나마 최소한의 남자다운 처신이다.

그는 결국 대중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프로 선수다. 언제까지 구단이나 누군가의 등 뒤에 숨어 비겁하게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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