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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 국정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담길까?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이념 편향성이 배제된 최고 품질의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여당 관계자들이 지지했던 뉴라이트 사관의 '대안교과서'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독재 미화 등 우편향 논란을 빚었다. 이들 교과서를 통해 '박근혜 교과서'의 미래를 엿본다. - 기자 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8년 5월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교과서포럼 주최로 열린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8년 5월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교과서포럼 주최로 열린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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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걱정했는데 그 걱정을 덜게 됐다."

누가?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쉽게 예상했는가. 언제? 많은 이가 2015년 10월 '국정 교과서 전환 발표 이후'라고 떠올릴 법하다. 하지만 틀렸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8년 5월 26일 <대안교과서 - 한국 근현대사>(아래 <대안교과서>)라는 이름의 교과서 출판기념회에서 나왔다.

뉴라이트 단체로 꼽히는 '교과서포럼'이 제작한 이 교과서는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과 이인호 KBS 이사장 등 다수의 보수 사학계 인사가 감수한 책이다. <대안교과서>는 머릿말에서 "한마디로 기존의 교과서는 우리 삶의 터전인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하게 태어난 나라인지, 그 나라가 지난 60년간의 건국사에서 무엇을 성취했는지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라고 성토했다.

이는 정부·여당이 국정 교과서 추진을 강조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1일 교육부의 국정화 추진 브리핑에서 "지금 역사 교과서들은 편향성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이 많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특정 이념으로 호도될 수 있다는 국민 우려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국정교과서 전환 발표 전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와 여당에 늘 주문했던 것도 '청소년의 잘못된 역사관 바로 잡기'였다. 국정 교과서의 내용과 집필 참여자에 대한 설왕설래가 나오는 가운데, 박 대통령의 '걱정을 덜게'했다는 이 <대안교과서>로 국정 교과서의 미래를 그려본다. <대안 교과서>가 기존 역사 교과서의 대안을 표방하며 서술한 부분 중 눈에 띄는 부분을 추려 봤다.

진짜 대안일까? '대안교과서' 뜯어보니...


[일제 강점기, 수탈이 아니라 수출?]

"수탈론에는 실증적인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쌀은 일본에 수탈된 것이 아니라 경제 논리에 따라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그에 따라 일본인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소득은 증가하였다." - 98쪽

<대안교과서>는 대단원 '일제의 지배와 민족독립운동의 전개'에서 일제 강점기 수탈론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단원 머릿말에서도 "그 시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였다"라고 학습 내용을 요약한다.

수탈과 억압의 역사로 알고 있는 '일제 강점기'의 일반적 정의와는 다소 다른 이야기다. 일부 역사학자들이 <대안교과서>가 일제 식민의 역사를 '근대화 효과'로 미화한다는 비판을 제기하는 이유다(관련 기사 : 논란의 <한국사> 교과서, 정부의 직무유기).

<대안교과서>는 이어 "전 계층의 생활 수준이 개선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짚으면서도 "주민의 생활 수준에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1970년대 중반의 일"이라며 1970년대 산업화 서술의 '예고편'을 남겨두기도 했다.   

[친일과 항일을 바라보는 이상한 '대안']

<대안교과서>는 역사적 인물의 평가도 사뭇 달랐다. 이 교과서 100쪽에는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를 "1947년 신탁통치 반대 투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약했다"라고 서술하는 등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김성수는 지난 2011년 10월 20일 행정안전부 장관을 대상으로 그 자손들이 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친일 행위를 저질렀음을 법원을 통해 확인받은 바 있다.

다수가 익히 항일 독립 운동가로 알고 있는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서술도 일반적 인식과 크게 달랐다. <대안교과서>는 그 소개 글에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 테러 활동을 조직하였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테러'의 사전적 의미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직적·집단적으로 행하는 폭력 행위'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음을 볼 때, 이 교과서가 백범 김구 선생을 판단하는 기준을 짐작케 한다. 윤봉길·이봉창 열사도 한인애국단의 단원이다.

[남한의 친일파 청산]

대한민국 건국을 서술한 부분도 눈여겨 볼만하다. <대안교과서>는 대한민국 건국 세력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건국 과정에서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친일파는 모두 배제되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승만 정권의 친일파 청산 문제에 대해서도 "이승만 대통령을 위시한 우파 집권 세력은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끊임 없이 체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친일파 청산보다 내부 단결과 반공태세가 더 급하다고 생각하였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전쟁 속 이승만]

"공산주의 국제 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쟁체제로 올바로 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대안교과서>가 158쪽 '이승만의 정치 이념과 정책'에 건국 대통령 이승만으로서의 모습을 강조하며 기술한 부분이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서술 부분에서도 다시 등장한다. 전쟁 초반이 아닌 1950년 9월 29일, 인천상륙작전 이후의 모습에서다. 교과서는 "이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에게 태극 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이 단독으로 38도선을 돌파하라고 지시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교과서 속 '좌파'의 등장]

"좌파 이념의 사회 운동도 기세를 부렸다. 2만여 명의 교사들은 한국교원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그들은 국가체제의 사회주의적 변혁을 지향하였다. 노동운동에도 좌파 이념의 영향이 깊숙이 침투하였다." - 176쪽

중단원 4·19 민주혁명과 민주당 정부의 좌절 중 '급진 통일 세력의 도전'이라는 주제 아래 기술된 부분이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적 움직임 기술엔 대부분 '좌파 세력'이 따라 나왔다. '좌파 세력'에 대한 언급은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설명한 곳에도 등장한다.

"급진 좌파 세력이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 계기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었다" - 225쪽 '시민사회의 성장과 6·29 선언' 중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와 여당의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집회는 서울을 포함해 전국 10개 시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와 여당의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집회는 서울을 포함해 전국 10개 시에서 열릴 예정이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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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충실하다... 박정희 정권]

'본편'을 담은 부분은 180쪽에서 216쪽, 자그마치 37쪽 분량에서 펼쳐진다. 5·16 쿠데타부터 유신, 경제적 성과, 베트남전 파병, 새마을 운동까지.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부분이다. 교과서는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사건에 충실히 그 '배경'과 '결과'를 달았다.

이 교과서는 5·16쿠데타를 두고 "근대화의 지체에 따른 위기, 군부의 팽창에 따른 사회 조직의 불균형, 4·19의 심한 혼란" 때문에 시작됐다고 했다. 베트남전 파병에 대해서도 "파견된 군인과 노동자의 봉급 소득과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사업 수익은 훨씬 더 큰 규모였다"라고 서술했다.

중단원 '유신 체제와 중화학 공업화'에서는 유신 체제의 배경을 서술하며 "유신 헌법이 허용한 대통령의 절대 권력과 종신 집권의 가능성은 박정희가 개인적 권력욕에서 10월 유신을 감행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라면서도 "개인의 권력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커다란 변화를 한국인에게 안겨주었다"라고 마무리했다. 박정희 개인에 대해서도 "측근의 부정부패에 대해 엄격했으며, 스스로 근면하고 검소하였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1960년, 1970년대 산업화는 '근대화 혁명'으로 표현됐다. 교과서는 206쪽에서 "(박정희) 자신에게 집중된 행정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자주국방과 중화학 공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라고 치켜세웠다. 새마을 운동도 "새마을 운동이 정부의 주도로 시작되었지만,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이 같은 경쟁 유발적 추진 방식 덕분"이라고 서술했다.

산업화로 생긴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선 많은 언급을 피했다. 교과서는 202쪽 '성장의 그늘'이라는 주제에서 "빈민촌의 집단행동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국정교과서,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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