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명단공개>의 한 장면

tvn <명단공개>의 한 장면 ⓒ CJ E&M


'엄마 친구 아들' 혹은 '엄마 친구 딸'의 줄임말인 '엄친아', '엄친딸'은 본래 부모님의 푸념 섞인 비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엄마 친구의 자녀들은 하나같이 영리하고 착하며 돈도 잘 버는데 효도까지 한다는 완벽한 스펙을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될 때가 많고, 그에 따라 현실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완벽한 인물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엄친아의 의미가 변해버리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가족의 뛰어난 스펙을 일컫는 말로 변했다. 가령 아버지가 큰 재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형제들이 모두 명문대 출신이라든가 하는 주변인물들의 스펙을 바탕으로 엄친아의 이미지가 형성되고는 한다.

연예인들이 어떤 집안 출신인가가 분명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연예인 본인의 능력이 아닌, 가족의 스펙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유는 하등 없다. 잠깐의 화젯거리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 스스로 이룬 업적이 아닌 것으로 엄친아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한그루 사태, 엘리트 가족 선망하는 사회 분위기 보여줘

한그루,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미소 배우 한그루가 4일 오후 서울 충무로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한 청바지 회사의 팝업스토어 오픈 기념 포토월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한그루 데뷔 당시 엘리트 집안이라는 것이 화제가 된 한그루는 최근 의붓언니가 쓴 글로 인해 가족사 논란을 겪었다. ⓒ 이정민


대표적인 엄친아 강조 프로그램은 tvN의 <명단공개>다. 수차례 '엘리트 집안', '우월 유전자' 등의 설명을 달고 연예인들의 가족들을 파헤쳐왔다. 연예인의 형제들이 어떤 위치에 있고 그들의 부모는 누구인가를 다루며 그들을 엘리트, 엄친아 같은 단어들로 치켜세우는 것이 예사다.

그러나 가족이 부자이건 명문대생이건 그들의 연예 활동과 결부될 일이 하등 없다. 그들이 그런 집안 출신인 것은 사실이라 해도 그 이미지를 연예계 활동에까지 이용하고, 자신마저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처럼 포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것은 본인이 가진 능력에 기반한 성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일종의 거품에 다름 아니다.

최근 불거진 한그루 사태는 이런 분위기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결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그루의 명문대 출신 형제자매들은 사실은 한그루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들에, 현재 한그루와 교류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그루측은 "언론 플레이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그 사실이 수차례 기사화 되고 한그루에게 '엄친딸' 등의 타이틀이 반복된 것은 사실이었다.

이는 집안 스펙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가 없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 형제들이 고졸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지방대생이라면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홍보목적이 없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마케팅이 된다는 사실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가진 열등감의 단면이다.

명문대에 다니면 훌륭하고, 집안에 돈이 많으면 대단하다는 단순한 사고는 위험하다. 좋은 부모, 형제가 그들이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대변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한그루의 일에서도 볼 수 있듯, 그들이 사실은 교류 한 번 없는 사이일 수도 있는 일이다.

공부를 잘했다는 것은 물론 칭찬할만한 일이고 돈을 많이 번 것 또한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일이 될 수는 있지만, 단순히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본인의 스펙이고 능력이라 평가받는 것은 모순적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물론 행운인 일이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운일 뿐이다. 누군가가 가난한 집안 혹은 보통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그들의 실수는 아니다.

그 운에 의해 결정되는 집안 환경으로 엄친아, 엄친딸의 타이틀을 붙이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더불어 스타라고 해서, 그들의 가족이 범법자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 아닌 이상, 대중에게 신상공개가 될 필요도 없다. 굳이 엄친아, 엄친딸 타이틀을 붙이고 싶다면 주변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착하고 영리하며 능력 있고 부모님께 효도도 하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편이 옳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엄친딸 한그루 명단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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