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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주민 한범승씨 가족은 10일 오전 박근혜 정부 노동 정책의 실상을 동네 주민들에게 알리겠다며 서울 신림역 앞에 국민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표참여를 촉구했다.
 신림동 주민 한범승씨 가족은 10일 오전 박근혜 정부 노동 정책의 실상을 동네 주민들에게 알리겠다며 서울 신림역 앞에 국민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표참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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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려 체감 기온이 뚝 떨어진 10일 오전 11시께. 제법 쌀쌀한 날씨 탓에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한 남성이 소리쳤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정책, 개혁인가 재앙인가를 묻는 국민 투표가 진행 중입니다. 잠시 시간 내셔서 투표에 참여해주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민인 한범승(43)씨. 옆에서는 한씨 부인 이원수(36)씨가 세 살배기 아들 한지우군을 품에 안고 사람들에게 설명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비정규직 해고에 반대하는 투표를 진행 중입니다, 함께해주세요." 비를 피해 모자를 뒤집어쓴 한군도 엄마를 따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설명지를 건넸다. 갓 두 돌이 지나, 최근에야 "엄마·아빠"를 말하기 시작한 한군이었다.  

"노동개혁인지, 노동재앙인지 직접 묻자"

이원수(36)씨가 세 살배기 아들 한지우군을 품에 안고 사람들에게 설명지를 나눠줬다. 비를 피해 모자를 뒤집어쓴 한군도 엄마를 따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설명지를 건넸다.
 이원수(36)씨가 세 살배기 아들 한지우군을 품에 안고 사람들에게 설명지를 나눠줬다. 비를 피해 모자를 뒤집어쓴 한군도 엄마를 따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설명지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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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 가족은 10일 오전, 서울 2호선 지하철 신림역 2번 출구 앞에서 거리 투표함을 설치하고 참여를 촉구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정책의 실상을 동네 주민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뜻에서다. 노동·시민단체가 모인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는 앞서 국민 투표를 제안하며 "정부·여당이 강행하는 노동정책이 청년 일자리를 만들 노동개혁인지, 아니면 '평생 비정규직'을 만들 노동재앙인지를 직접 묻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례는 일가족이 직접 지역에 국민 투표함을 설치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한씨는 "아이도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들 한군도 유모차에 태워 함께 나왔다. 한 지방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한씨는 평소 사회 참여가 활발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이슈에 관해 부인 이씨와 자주 얘기한다고 했다. 간호사로 근무하다 아이를 낳고 휴직 중인 이씨에게도 이번 '노동 개혁'은 남의 일이 아니다.    

"며칠 전에 '23개월 계약직' 공고를 보고 보건소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가보니 3개월 근무 후 재계약을 거듭하는 식이더라고요. 결국 포기했어요. 아이 낳고 기혼자다 보니 계약직 외엔 자리가 없어요. 이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정책을 보니 의문이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임금피크제가 과연 최선의 대안일까? 비정규직을 4년으로 더 늘린다고?...', 그런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씨 옆에는 높이 70cm, 가로 60cm 크기 기표소에 두 선택지가 적힌 투표용지가 놓여 있었다. 투표 참가자들은 '일반해고 요건 완화·성과 차등임금제·비정규사용 2년에서 4년·파견대상 확대'라고 쓰인 ▲박근혜 정부·재벌의 추진안과, '해고요건 강화·최저임금 1만원·상시업무 정규직화·파견노동 근절' 등 설명이 딸린 ▲노동자·청년·서민의 요구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옆에는 참가자 인적사항을 적는 명부도 놓여 있었다.

"지금도 비정규직만 늘어나는데, 해고 요건을 더 쉽게 만든다고요?"

신림동 주민 한범승씨 가족(사진)은 10일 오전 박근혜 정부 노동 정책의 실상을 동네 주민들에게 알리겠다며 서울 신림역 앞에 국민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표참여를 촉구했다.
 신림동 주민 한범승씨 가족(사진)은 10일 오전 박근혜 정부 노동 정책의 실상을 동네 주민들에게 알리겠다며 서울 신림역 앞에 국민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표참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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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건 한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구직 중인 처남과 본인 사례를 예로 들며 "요즘 취업이 너무 힘들어졌다, 정부는 늘 '비정규직 해소'를 외치지만 실상은 인건비를 제한해 비정규직을 늘릴 수밖에 없게 만들더라"고 지적했다.

그가 근무하는 공공기관의 경우만 해도 인건비가 높을수록 경영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고 했다. "저 또한 중간관리자로서 일하지만, 정부 지침이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더라"는 설명이다. 한씨는 이어 지난달 나온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합의 중 '쉬운 해고(일반 해고)'가 가장 문제라고 봤다.

"보통 좋은 일자리라고 하면 정규직을 뜻하는 거잖아요. 지금 기업들이 정규직 자리도 없다면서 비정규직만 늘리고 있는데, 거기서 또 해고 요건을 쉽게 완화하겠다고요? 국가가 책임지고 마련해야 할 사회보장제도도 없이, 서구에 있는 해고 요건들만 쏙 가져다가 적용하겠다는 건데 이건 말이 안 돼요."

이는 실제 노사정위가 도출한 합의안 중 가장 크게 비판받는 부분 중 하나다. 지난달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노사정위 합의안에 따라) 일반해고가 가능해지면 재벌·대기업은 해고에 돈이 안 든다"며 "이는 돈 드는 해고를 돈 안 드는 해고로 바꾸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관련기사: '돈 안 드는 해고'가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나아가 부인 이씨는 정부의 노동 정책이 강행될 경우, 아들 한군에게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거라고 봤다. 자신과 남편이 겪고 있는 '고용 불안'을 미래 세대인 아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국민 투표에 직접 팔을 걷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다.

"비정규직·계약직과 정규직의 차이는 단순히 돈뿐만이 아니에요. 비정규직의 삶을 요약하면 '불안'이거든요. 지우도 남자다 보니 커서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20년 후 고용 불안이 해결될까요? 저희는 아이가 대기업 취직해서 혼자 바쁘게 살길 바라지 않아요. 살아보니 식구들과 저녁밥 한 끼 같이 먹는 거, 그게 제일 큰 행복이더라고요. 지우도 불안 없이, 그런 평범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길 바라요."

분홍색 점퍼를 입고 엄마 손을 잡은 한군은 인터뷰 중에도 계속 길가 버스를 보고 "라니, 라니(애니메이션 <꼬마버스 타요> 캐릭터 중 하나)"라며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등학교 학생들, 노동정책 관심 없어요"... 국민 투표, 다음달 12일까지 진행

박근혜 정부 노동 정책의 실상을 알리고 싶다며 직접 국민투표함을 설치한 신림동 주민 이원수(36)씨와 아들 한지우(3)군.
 박근혜 정부 노동 정책의 실상을 알리고 싶다며 직접 국민투표함을 설치한 신림동 주민 이원수(36)씨와 아들 한지우(3)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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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는 투표 시작 1시간여가 지나서야 그쳤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며 한씨 가족을 지나치던 사람들도 시시각각 투표함에 모여들어 투표했다. 손을 잡은 남녀 커플이 지나가다 발길을 돌리거나, 무리 지은 10대 청소년들이 함께 투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궂은 날씨 탓에 투표는 약 2시간 동안만 진행됐다.

특성화고 재학 중인 김태훈(17, 서울 구로구 궁동)군은 "저같은 경우 취업을 앞두다보니 내용을 잘 알지만, 일반 고등학교 친구들은 여기(노동 정책)에 관심도 없고 잘 모르더라"고 말했다. 김군과 함께 투표에 참여한 나아무개씨(20, 인천 남동구)는 "제가 아르바이트생인데 올해 시급(최저임금)인 5580원은 너무 적다, 이걸로는 제대로 된 밥 한끼도 못 먹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7일 시작돼 다음 달 12일까지 진행되는 국민 투표는, 현재 청와대가 보이는 광화문과 콜트콜텍 해고자들이 단식농성 중인 새누리당 당사 앞 등에 오프라인 투표소가 설치돼있다. 온라인 투표(링크)도 가능하다. 주최 측은 향후 카페·도서관·대학교 등 생활 현장 중심으로 1만여 개소 투표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날 진행을 도운 황철우(국민투표제안위원회)씨는 "투표함 설치는 원하는 누구나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투표에 참여하고 있는 10대 청소년들. 특성화고 재학 중인 김태훈(17, 서울 구로구 궁동)군은 "저같은 경우 취업을 앞두다보니 내용을 잘 알지만, 일반 고등학교 친구들은 여기(노동 정책)에 관심도 없고 잘 모르더라"고 말했다.
 국민 투표에 참여하고 있는 10대 청소년들. 특성화고 재학 중인 김태훈(17, 서울 구로구 궁동)군은 "저같은 경우 취업을 앞두다보니 내용을 잘 알지만, 일반 고등학교 친구들은 여기(노동 정책)에 관심도 없고 잘 모르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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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동 개혁, #장그래운동본부, #노동 국민투표, #노동개혁 저지, #노동개악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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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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