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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충연 대령(X표시) 등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1965년 12월 23일 <동아일보> 기사.
 원충연 대령(X표시) 등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1965년 12월 23일 <동아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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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11시 3분 서울중앙지방법원 423호 법정, 피고인석에 앉은 원동일씨는 자꾸 입술에 침을 적셨다. 긴장으로 입술마저 바짝바짝 마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곧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유남근)가 입장했다. 원씨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이후 약 한 시간 동안 그는 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마다 재판장 유남근 부장판사는 "인정된다, 충분하다, 타당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날의 피고인은 원씨의 아버지, 고 원충연 대령이었다. 원 대령은 한때 '잘 나가는' 군인이었다. 그는 한국전쟁 등에서 공을 세워 여러 차례 훈장을 받았고, 1961년 5·16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을 맡는 등 요직을 거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박정희 대통령과 멀어졌다.

쿠데타 때 박정희 대통령은 "2년 뒤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에 복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약속한 1963년, 그는 마음을 바꿔 군복을 벗고 대통령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원 대령은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동료들과 다시 한 번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모의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발각됐고, 1965년 5월 원 대령과 동료 16명은 국가보안법과 군형법 위반 혐의 등으로 육군 방첩부대에 붙잡혔다.

잘 나가던 군인이 '쿠데타' 꿈꾼 이유

법정에 선 원 대령은 "부정부패하고 사상적으로 불투명한 정치인을 제거할 목적으로 혁명을 생각한 일은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거사 계획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는 원 대령이 동료들과 함께 '반국가단체'를 구성, 정부를 전복 시키는 등 반란을 꾀했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이듬해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지었다. 1967년 무기징역으로, 1969년 징역 15년으로 감형을 받고 1981년 대통령 특사로 풀려난 원 대령은 2004년 세상을 떴다.

그로부터 10년 뒤, 유족들은 조심스레 재심을 청구했다. 2014년 9월부터 열린 재심 공판에서 아들 동일씨와 변호인은 원 대령이 '대한민국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군사정권을 몰아내고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쿠데타를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또 당시 계획은 큰 그림만 있고 세부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군형법상 반란죄의 성립요건인 '실질적 위험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8일 유남근 부장판사는 원충연 대령과 동료들이 계획대로 군 병력을 동원해 국방부 장관, 중앙정보부장 등 정부 요인을 체포하고 박정희 대통령 하야와 국회 해산까지 추진한 점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 계획이 실현될 경우 극도의 혼란과 수습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기본질서가 파괴된다"는 이유였다.

군형법 위반 혐의 역시 유죄라는 판결도 그대로였다. 재판부는 ▲ 원 대령이 동료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계획을 다듬어가고 있었고 ▲ 이들 대부분이 군 요직에 재직 중이었으며 ▲ 혁명일을 1965년 5월 16일로 정한 다음 군 내외부 인사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쿠데타 계획은 실체가 있었다고 봤다. 또 ▲ 당시는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여전히 사회가 불안정했던 만큼 '반란' 계획은 충분히 위험했다고 인정했다.

50년 흘렀어도 유죄... 고개 떨군 유족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있는 법원종합청사(자료사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있는 법원종합청사(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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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원 전 대령 등이 '선한 의도'를 품었다 해도 '쿠데타'라는 방법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헌법이 허용한 민주적 절차가 아니라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병력을 동원하는 방법 등으로 이루고자 했다면, 그 역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반민주적 세력에 의한 쿠데타"라는 얘기였다. 재판부는 다만 원 전 대령이 영장 없이 육군 방첩부대에 끌려가 상당한 기간 동안 구타와 고문을 당한 뒤 이뤄진 진술은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 이 자료들에 기초한 일부 공소사실들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낮 12시, 유남근 부장판사는 형량에 고려한 요소들을 설명한 다음 주문을 낭독하겠다고 했다. 선고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원동일씨는 손으로 눈가를 닦았다.

"주문, 피고인을 징역 17년에 처한다."

유 부장판사는 원씨에게 "심리과정에서 피고인이 불법 구금과 구타·고문을 당한 사실을 확인했고, 이 사건 이후 피고인 가족들이 많은 고통을 입은 점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씨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는 법정 밖에서도 말을 아꼈다. 원씨의 변호인은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너무 과하게 인정해 유죄와 무죄로 판단한 부분이 서로 충돌한다"며 "항소하겠다"고 했다.


태그:#원충연,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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