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인턴>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배우 김상중이 최근 출연 중인 예능 프로그램 이름은 <어쩌다 어른>이다. 마음만은 청춘인데 어느새 책임을 잔뜩 짊어졌다는 게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이 제목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는 아직 스스로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이 '어쩌다' 어른이 된, 하지만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철딱서니들의 세상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인턴>은 신선한 인상을 준다. 어쩌면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인턴>은 기꺼이 어른이 되고자 하는 어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어른'이 된 세상에 등장한 어른의 이야기

 낸시 마이어스

영화 <인턴>의 감독 낸시 마이어스 ⓒ 인턴


<왓 위민 원트>(2000), <사랑할 때 버려야 하는 아까운 것들>(2003)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만든 <인턴>은 그의 전작들에서 연상되는 그 분위기를 이어간다. 영화는 아내와 사별하고 직장에서 은퇴한 채 노년의 나날을 무료하게 보내던 70세의 벤(로버트 드 니로 분)이 우연히 시니어 인턴 모집 광고를 보고 창업 1년 만에 220여 명의 직원을 둔 CEO 줄스(앤 해서웨이 분)의 회사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벤은 줄스의 회사가 있기 전 자리했던 전화번호부 회사에서 40년간 근속하며 부사장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늘 정갈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이젠 골동품 취급을 받는 가방이나 손수건 등을 챙기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벤은 갑작스레 찾아든 경제 위기, 그리고 은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는 미국의 전형적 중산층을 상징한다.

반면 줄스는 아이디어만으로 성공한 21세기의 전형적 CEO다. <인턴>은 이렇게 미국의 과거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과 지금의 미국을 이끌어가는 신흥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서로 갈등하며 이해해 가는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암묵적으로 세대 간 화해를 모색한다. 때문에 <인턴>은 이른바 그간 할리우드 영화가 전형적으로 그려왔던 해피엔딩의 공식을 답습한다.

하지만 답습이라고 해도, 주체가 낸시 마이어스가 되면서 그 질감과 깊이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기업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벤을 받아들인 줄스의 속내와는 달리 벤은 어느새 직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존재가 된다. 그가 어른임에도 이를 내세우지 않고, 그러면서도 어른의 몫을 다하기 때문이다.

줄스의 직장 내 사람들은 처음 벤을 보고 지레 그를 꼰대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벤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다. 처음엔 컴퓨터를 켜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벤은 곧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는 그의 말대로 새로운 회사에 적응한다. 여기에 오랜 연륜을 바탕으로 그가 헤아려 알려주는 직장 생활의 지혜는 그를 인기인으로 등극하게 만든다.

반대로 줄스는 내내 위기에 시달린다. 단 1년 만에 회사를 키워냈다고 하지만, 빠른 시간 안에 부피만 커진 회사는 많은 문제들을 보이고 만다. 투자자들은 이 문제가 줄스의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고 전문 CEO를 들일 것을 종용한다. 그런가 하면 가정 내에서는 남편의 불평불만에 이은 외도까지 감당해야 한다.

거기에 늘 일에 쫓기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눈 한번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줄스의 이 같은 스트레스는 끊임없이 손 세척제로 손을 닦아대는 강박증과 자신이 말한 것조차 금세 잊어버리는 건망증으로 표출된다.

이를 돕는 건 벤의 존재다. 벤이 늘 지니고 다니는 손수건의 가장 적절한 용도가 우는 여자들에게 건네주기 위해서라는 말은 고리타분하게 들리지만, 반대로 이 고리타분함은 줄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처음 줄스는 자신을 먼저 헤아려주는 벤이 부담스러웠지만, 어느새 아픈 자신에게 치킨 스프를 챙겨주는 그의 세심함에 여느 직원들처럼 무장해제되고 만다.

"모처럼 어른과 어른으로서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영화 <인턴> 스틸컷

영화 <인턴>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부모와 자식 세대가 조우한 영화가 그렇듯, <인턴> 역시 경험이 많은 부모 세대와 위기의 자식 세대의 만남을 그린다. 하지만 <인턴>은 지금까지 많은 영화에서 보수적인 관점을 견지하며 부모 세대의 손을 들어준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자신의 집에까지 쳐들어온 회사 직원들에게 자신이 산타클로스냐며 푸념하면서도, 벤은 섣부르게 줄스를 비롯한 그들의 삶에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벤은 지켜보고 알고 있되, 결코 간섭하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 더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적절한 도움을 주려고 할 뿐이다.

무엇보다 경영권을 잃을 위기에 빠진 줄스에게 벤이 충고를 건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40년을 근속해도 부사장밖에 되지 못했던 자신과 달리, 1년 만에 CEO가 된 줄스를 존중하는 모습을 충고에 앞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낸시 마이어스의 세대관과도 맥을 같이 한다.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부모 세대가 이룬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취를 이뤄낸 젊은 세대. 그 세대의 성취를 인정하는 자세를 드러내는 것이다.

벤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것을 깨달은 줄스는 마음을 연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투정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줄스 또한 많은 문제를 일으켰지만, 벤과는 또 다른 '어른'이다. 영화 속 줄스는 "모처럼 어른과 어른으로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른은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어른이 되기 싫다'고 부정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어른과 어른인 벤과 줄스의 만남은 그래서 신선하고 희귀해 보인다.

경험과 연륜을 지닌 어른이, 또 다른 성취를 이뤄내고 있는 젊은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여준 영화 <인턴>. '아저씨'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스스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나잇값'이라 여기는 지금의 한국에서, <인턴>은 한 번쯤 생각해 볼 거리를 주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인턴 앤 해서웨이 로버트 드 니로 낸시 마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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