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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이 시작되었다. 9부 능선을 넘은 줄 알았다. 유령처럼 취급하던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드디어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것조차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쌍용차 경영진은 교섭을 협의로, 때로는 회의로 부르며 정상적인 노사교섭이 아님을 끊임없이 주지 시켰다. 끊임없이 경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반복했고, 법적리스크 때문에 해고자 복직도, 손배가압류 철회도 어렵다고 했다. 유가족 지원 대책에 대한 논의도 하지 못하고 유가족 실태조사도 12명 유가족에 그쳤을 뿐이었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났다. 투쟁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절망을 이기고 희망을 만들자던 지난 7년여의 수없는 다짐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 같은 질식감으로 밀려왔다. 하지만 인내했다. 어금니를 깨물며 참고 또 참았다. 지난 8월 쌍용차 기업노조와 임금협상을 끝낸 쌍용차는 집중교섭을 제안했다. 그리고 해고자복직에 대한 이야기를 8개월 만에 꺼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해고자들을 복직 시킬 것인지에 대해선 약속할 수 없고, 회사를 믿고 기다려 준다면 언젠가는 복직할 수 있을거라며 기약 없는 기다림을 강요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복직 시킬 수 없고, 욕을 먹더라도 이번 기회에 해결하자며 원래 교섭은 주고받는 것 아니냐고 속삭였다. 4대의제라고 확정했으면 논의라도 해야 하는데 손배가압류 문제는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결국 안 된다는 소리뿐이었다. 교섭 때마다 진정성 운운하며 인내를 갖고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회사의 소리는 결국 말장난에 불과했다.

곡기 끊은 김득중... 인도라도 가야 했다

지난 1월 쌍용차 대주주 인도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과 만나 이야기하고 처음으로 교섭의 문을 연 김득중 지부장은, 조합원들에게 회사가 진정성을 보이고 있다며 교섭으로 문제를 풀겠다고 이야기하던 김득중 지부장은, 결국 곡기를 끊었다. 장기가 타들어가는 그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비쩍 말라가고 있다. 해고자들이 지난 7년간 품었던 희망이 사그라지는 것처럼 그의 몸도 그렇게 조금씩 꺼져가고 있다. 8월 31일의 일이니 한 달 가까이 단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공장으로 돌아가는 고개는 9부 능선이 아니었다. 아직 우리는 싸우고 또 싸워야 했다. 또 다시 김득중의 생명을 앞세워서 싸워야 하는 우리가 서글펐다. 서러웠다.

지난 8월 31일부터 단식 중인 김득중 지부장.
 지난 8월 31일부터 단식 중인 김득중 지부장.
ⓒ 쌍용자동차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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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라도 가야 했다. 교섭에서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단순히 쌍용차 경영진들의 태도로 결정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교섭 보고를 받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쌍용차 대주주 마힌드라 그룹이었고 이 교섭의 최종 책임자는 쌍용차 대표이사가 아니라 쌍용차 대주주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었다. 진짜 사장이 책임지라고 요구해야 했다.

쌍용차 경영진들은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도 결국 자신들을 만나 해결해야 한다며 인도원정투쟁을 무의미하다고 단언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인도원정을 가면 교섭이 깨질 거라는 소문이 휘돌았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인도 뭄바이에 가겠다고 보낸 공문에 이틀 만에 이례적으로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도 직접 답을 해왔다. 3자 교섭에서 합의하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측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교섭을 잠정 중단했다. 일방적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지난 23일 새벽, 쌍용차 해고자 5명이 인천공항에서 15시간, 5600km를 날아서 인도 뭄바이에 도착했다. 급하게 준비한 터라 인도 현지의 우호적인 단체도 섭외하지 못했고, 통역을 해줄 사람도 없었다. 뭄바이 공항에는 쌍용차 해고자들의 인도원정투쟁 소식을 전해들은 네팔지진 구호 활동을 하던 한국인 2명과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다 불법 체류자로 쫓겨난 네팔노동자 1명이 있었을 뿐이었다. 힌두어는 물론 영어도 못하는 쌍용차 해고자들은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신기하고 고마웠다.

뭄바이 공항에 도착한 원정단
 뭄바이 공항에 도착한 원정단
ⓒ 송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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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막혔다. 덥고 습했다. 네팔활동가들이 잡아 놓은 숙소로 이동하는 와중에 차안에서 본 거리의 풍경은 더 숨이 막혔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한국의 1960년대 풍경이 거리마다 펼쳐졌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와 사람이 뒤엉킨 도로에서 들려오는 끊임없는 경적소리, 문도 없이 달려가는 기차에서 매달려 있는 사람들, 페인트가 벗겨진 건물과 판잣집이 끊임없이 이어진 거리에서 어떻게 인도 노동자, 시민들과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하고 함께 호소할 것인지 막막했다.

이곳저곳 수소문을 통해 가까스로 뭄바이 지역 노동자들과 만났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왔다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인도 노동자들은 냉담했다. 한국과 인도는 투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충고와 관광비자로 온 주제에 어떻게 투쟁을 이어갈 것인지 의문과 질책을 쏟아냈다.

다만 멀리 타국에서 왔으니 마힌드라와 면담을 주선하겠다며 마힌드라 그룹의 중요인물들에게 면담을 호소하는 편지를 쓰라고 이야기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우리는 인도노동자와 시민들과 연대하고 문제해결을 호소하기 위해 왔지, 면담을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인도에서 만난 기적, 언제까지 계속될까

현지 노조와 간담회 중인 원정단
 현지 노조와 간담회 중인 원정단
ⓒ 고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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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할 시간도 없었고, 인도 노동자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섭섭하고 억울해 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마음 먹었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었다. 지난 7년간 해고노동자로 느낀, 해고될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따가웠던 시선들,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차가운 충고를 견디고 극복했던 우리들이었다. 우리들의 진심을 믿어줄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충고를 하던 노동자들에게 부탁해서 얻은 노동자들의 연락처로 연락을 했다.

"우리는 쌍용차 해고자들이다. 쌍용차의 대주주는 마힌드라 그룹이다.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왔다. 만나고 싶다."

절박한 마음으로 연락하고 이야기를 전했다.

선전물을 읽어보는 현지 노조 관계자
 선전물을 읽어보는 현지 노조 관계자
ⓒ 하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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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이 함께 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인도 뭄바이가 속한 마에스트라주(州) CITU(전인도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 함께 해보자며 나섰다. 위원장은 28일까지 뭄바이 지역 대표자들을 모아 회의를 하고, 대표자들의 명의로 마힌드라 그룹에게 면담요청을 하자고 제안했다. 면담요청을 받지 않으면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투쟁계획을 발표하고 함께 투쟁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뛸 듯이 기뻤다. 이후 가는 곳마다 소식을 들었다며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지역 언론에서도 소식을 듣고 취재를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왔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의례적으로 묻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관심을 나타내주었다. 아직은 관심에 멈춰져 있지만 인도 언론사들은 28일 대표자회의 이후 쌍용차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기사를 쓰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시안 에이지(The Asian Age)> 일간지 기자와 인터뷰
 <아시안 에이지(The Asian Age)> 일간지 기자와 인터뷰
ⓒ 고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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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며칠이지만 이 기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쌍용차 인도원정 투쟁단에 대해 인도 뭄바이 정부, 한국 영사관, 경찰, 마힌드라 그룹간의 핫라인이 구축되어 있다고 했다. 또 누가 왔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동향을 파악하고 있고, 강제 출국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게다가 대표자회의 이후 쌍용차 해고자들의 투쟁에 얼마나 많은 인도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연대해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7년 동안 쌍용차 해고자들이 살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방법을 찾았던 것처럼 우리는 인도 뭄바이, 이곳에서 방법을 찾을 것이다. 김득중 지부장이 자신의 몸을 태워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온 몸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5600km 떨어진 인도 뭄바이에 있는 해고자들도 진심을 담아 만나고 호소할 것이다.

우리는 그냥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쌍용차 투쟁의 9부 능선을 넘을 것이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그곳이 어디라도.

쌍용자동차 인도 원정 투쟁 희망비행기
 쌍용자동차 인도 원정 투쟁 희망비행기
ⓒ 희망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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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쌍용자동차 인도원정투쟁단의 소식입니다.



태그:#쌍용차, #인도원정투쟁, #희망비행기, #마힌드라, #뭄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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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복직자. 현재 쌍용차지부 조합원. 훌륭한 옆지기와 살고 있는 세아이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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